화재경보기가 왱~하고 울린다. 오작동인지 진짜 불이 난 건지 애매한 마음이 먼저 올라왔지만 일단 옆집에 사는 엄마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오작동이라고 했다.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다시 화재경보기가 울린다. 이번에는 앵~하는 소리도 작게 들려 멀리서 나는 소리겠거니 하고 집에 있었다. 잠시 후 아파트 관리실에서 인터폰이 온다. 우리 집 아니면 옆집에서 시작된 소리라고. 놀란 마음에 급하게 옆집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불이 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집은 우리 집과는 달리 화재경보기 소리가 귀를 찢을 정도로 강하게 울리고 있었다. 그 속에서 멀뚱히 앉아 있는 엄마.
'"엄마. 이렇게 시끄러운데 빨리 밖으로 나가야지, 거기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어떡해"
엄마의 행동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화재경보기는 한 번 더 울렸다. 내가 밖에 나가 있을 때였다. 관리실에서 전화가 왔는데 또 우리 집과 옆집, 둘 중 한 곳에서 울린 거라 했다.
'혹시 엄마가 가스불에 냄비를 올려놓고 잠든 건 아니겠지?'
엄마 혼자 집에 있는터라 마음이 불안했다. 다행히 불이 난 건 아니고 엄마집 화재경보기가 노후(?)등의 이유로 문제가 생긴 것으로 밝혀졌다.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점검 후 새것으로 교체하고 나서야 난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그 뒤는 밥통이었다. 여름의 더위가 가시고 이제 좀 선선해지려나 하는 어느 날,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고 있는데 엄마가 우리 집 문을 열고 슬그머니 들어오셨다. 그러고는 '밥통이 안 잠긴다'라는 이상한 말을 하셨다. 옆집으로 가보니 이번에는 압력밥솥이 말썽이다. 멀쩡하게 잘 쓰고 있던 압력밥솥 뚜껑이 잠기지 않는 것이었다. 새 밥솥 사준지 얼마 된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 고장이라니 우리 엄마 손은 똥손(?)인가 보다 하고 A/s 를 맡겼다. 그렇게 밥통 사건의 소란은 간단하게 해결되었지만 여기서부터 엄마의 불안은 시작되었다. 우리 엄마는 간이 참 작으신 분이다. 사소한 일에도 깜짝깜짝 잘 놀라고 걱정이 많아 잠을 잘 못 이루신다. 누구에겐 밥통 고장건이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일지 몰라도 엄마에겐 화재경보기 사건 이후 다시 찾아오는 간이 쿵 떨어지는 일이었나 보다. 밥통 걱정을 어찌나 하시는지. 어쩌면 밥줄(?)이 달린 일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냉장고가 이상하다' 하시며 우리 집으로 오시는 엄마. 냉장고로 말하자면 언니가 이번에 바꿔 준 엄마집의 최신형 가전이다. 그게 벌써 고장 날 리는 없다. 냉동실의 음식이 다 녹아 있다는 엄마의 말에 난 대뜸 "엄마가 냉장고 문을 제대로 안 닫아서 그런 거 아냐?" 하며 넘겨짚었다. 엄마는 그게 아니라 냉장고에 아예 불이 안 들어온다 했다. 남편이 옆집으로 건너가 확인한 결과, 이번에는 대형사고였다. 무슨 일인지 부엌 전열 쪽 누전 차단기가 내려가 있다고 했다. 다시 누전 차단기를 올리고 문제는 해결되나 싶었는데 얼마 후 누전 차단기는 또 내려갔다. 도무지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관리 사무소 아저씨도 이유를 모르겠다며 다음날 다른 사람을 불러오겠다고 했고, 다음 날 온 다른 분도 이유와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시간만 흘러갔다. 그 사이 부엌 쪽 전기 제품은 하나도 쓸 수가 없어 엄마의 모든 부엌 생활은 멈췄고, 겨우 냉장고만 거실 쪽에서 멀티탭 몇 개를 연결해서 전원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엄마는 이 사건으로 간이 콩알만 해졌다. 이번에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으니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불편함을 떠나 불안했다. 불안이 점점 커져 안절부절로 넘어가기 직전 마침내 원인을 찾았다는 희소식이 들려왔다. 문제는 냉장고가 아니었다. 엉뚱하게 정수기가 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정수기의 호스가 살짝 찢어져서 계속 누수가 있었고, 그 때문에 싱크대 안쪽에 숨겨져 있던 콘센트가 젖어서 발생한 일이었다. 다행히 젖은 부위를 선풍기로 하루쯤 말리고 나니 누전 차단기가 더는 내려가지 않았다. 엄마는 이 참에 오래된 정수기를 버리고 반짝반짝한 새 정수기를 가지게 되었다.
이쯤부터 내게 새로운 증세가 하나 생겼다. 엄마가 우리 집에 와서 말에 뜸을 들일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며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지하는 조건 반사가 생긴 것이다. 엄마는 이후로도 수시로 우리 집에 와서는 '이게 이상하다 저게 이상하다'라며 자잘한 이상 혹은 불편들을 말했고, 나는 엄마가 그럴 때마다 한숨부터 쉬는 나쁜 버릇을 가지게 되었다.
어제저녁에는 엄마가 또 잔뜩 긴장을 한 채 우리 집으로 오셨다. 이번에는 뭘까? 아직 고장 날 게 남았나 싶었는데 보일러에 전원이 안 들어온다고 하신다. "아, 그거 낮에 아파트에 몇 시간 정전이 됐을 때 그때 꺼진 걸 거야. 다시 켜면 돼." 하고 내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데 남편이 뭔가 걸리는 게 있는지 옆집에 얼른 갔다 온다. 그러더니 정전 문제가 아니라 아예 보일러 콘센트 코드가 빠져 있었다고, 전에 누전 차단기 내려갔을 때 코드 뽑아 놓은 채 그대로라고 했다.
"그때가 언젠데! 그럼 그 이후로 엄마는 보일러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단 말이야?"
사실이었다. 엄마를 추궁(?) 하니 엄마가 실토했다. 여태껏 찬물로 샤워했는데 어제는 너무 추워서 보일러를 틀려고 하니 전원이 안 들어왔다고 했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누전 차단기가 내려가서 소동을 벌인 지 적어도 한 달은 넘었는데 그동안 왜 계속 찬물로 씻고 계셨던 건지. 여태껏 자잘한 이상이 있으면 다 말하시는 듯하더니 뜨거운 물 안 나오는 건 왜 말을 안 하신 걸까? 속상해서 어쩔 줄 모르는 나를 보고 엄마가 한 마디 하셨다. "찬물로도 씻을 만했어."
엄마 때문에 속상하다. 자꾸 엄마 집이 이상을 일으키는 게 꼭 나이 들어 삐걱대는 엄마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우리가 자꾸 신경 쓰는 게 신경 쓰여 문제가 생길 때마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엄마를 보면 마음이 아린다. 가끔은 말도 꺼내지 못하고 혼자 참는 엄마를 보면 마음이 아리다 못해 쓰린다.
아침에 또 엄마가 오셨다. 고양이 보러 온 거라고 말씀하셨지만 이번엔 티브이가 안 나온다고 중간에 말을 슬~ 흘리신다. 티브이쯤이야 자주 고장(?) 나고 금방 고쳐지는 착한 가전이다. 하지만 몇 발짝 안 되는 옆집까지 가기 너무 귀찮아진 난 티브이 없이는 심심하다 하는 엄마에게 우리 집에서 놀다 나중에 가라고 했다.
우리 집 거실에 누워 계시던 엄마의 입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당연히 엄마의 '라테는'이 또 시작되겠지 하고 각오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이모부가 심근 경색으로 입원했다는 소식을 전하신다. 이모가 며칠 전에 넘어져 무릎 수술을 하고 입원 중인데 이모부까지 수술하고 입원이라니... 엄마는 이모부가 엄마랑 동갑이라며 나이 팔십이 되니까 이런저런 병이 안 생길 수가 없다며 또 다른 동갑인 외숙모가 아픈 이야기며, 초등 동창 친구가 암으로 두 번째 수술하고 기운이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를 하신다. 모두 나이가 80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듣다 보니 우리 엄마는 허리 아픈 거 외에는 큰 병이 없어서 참 다행이다 싶다.
"엄마, 엄마가 그중에 제일 건강하네."
우스갯소리로 말했지만 나 역시 엄마가 아플까 다칠까 늘 염려스럽다. 엄마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아무리 엄마 집의 물건들이 고장 나고 삐걱거려도 상관없다. 우리 엄마만 안 아프다면, 우리 엄마만 건강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