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린 김선미 Oct 30. 2022

매일이 마지막 같지만

별일 없던 그 하루

    오늘 나에게 주어진 하루가 부모님을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면 무엇을 할 것인가?     


    매일 밤이 되면 오늘이 꼭 마지막일 것 같은 나날들의 연속이다. 아빠와 밤을 보내고 아침이 되었다. 아빠의 상태를 확인하느라 밤 동안 30분 간격으로 깼더니 피곤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EKG 모니터부터 확인했다. 밤사이에 보았던 수치와 비슷했다. 아빠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아침이다.   

   

    9시가 안 되어 엄마와 동생이 왔다. 엄마가 건네준 입원확인서를 들고 바로 차를 타고 보건소로 향했다. 입원확인서를 보여준 후 코로나 검사를 했다. 몇 분의 대기 후 검사를 하고, 친정집으로 갔다. 대충 끼니를 때우고 후다닥 씻었다. 누가 빨리 오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괜스레 마음이 급하다. A4용지도 몇 장 챙겼다. 아빠의 장례식 때 쓸 종이였다. 또 챙길 것이 없나 둘러본 후 병원으로 향했다. 주차하고 병실로 올라가려다가 발길을 돌려 바깥으로 나왔다. 장례식 때 쓸 노트를 사기 위해서였다. 길 건너 문구점에서 노트를 고르고 검정 사인펜, 파란 사인펜을 두어 개씩 집어 계산을 하고 다시 주차장으로 갔다. 장례식 가방 한 편에는 내가 쓴 책이 있었고, 그 옆에 A4용지와 노트를 가지런히 두었다. 가방이 치우치지 않게 세워둔 후 가방 바깥 주머니에 사인펜을 넣었다. 트렁크 문을 닫고 병실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 아빠를 위한 노트를 미리 사두었다 >


    잠시 뒤 작은 아빠가 병원에 도착했다고 전화가 와서 데스크 직원에게 음성 확인 문자를 보여주라 했다. 1층 로비를 지나 호스피스 병동으로 올라온 작은 아빠는 병실로 들어오기 위해 벨을 누른 후 내게 전화를 했고, 나는 간호사에게 작은 아빠라 말했다. 로비에서 기다렸던 고모네도 뒤이어 올라왔다. 감사하게도 간호사들은 고모네의 면회를 한 번 더 허용해주었다. 햇살방으로 들어온 작은 아빠 역시 고모처럼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막상 아빠를 보니 믿고 싶지 않은 듯했다. 온 가족이 햇살방에 모였다. 고모가 아빠를 부른다.     

“큰오빠, 들려? 큰오빠, 들리냐고.”

“형!”

“김인연씨. 들리는 거야? 작은오빠 왔잖아. 큰오빠. 응~ 들려?”     


    작은 아빠는 아빠의 왼손이 부었다며 손을 주무른다.     


“형! 내 얘기 들려? 엉?”     


    목청 좋은 작은 아빠가 쩌렁쩌렁하게 아빠를 부르자 고모가 어제 그렇게 말하다가 눈살찌푸림을 당했다며 어제의 얘기를 한다. 다 들리니 그냥 얘기하라며 웃으며 말해주었다.     


하이고. 성질만 나네.    


    작은 아빠는 성질이 난다고 표현했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의미들이 표정으로 하나하나 꺼내졌다. 아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면회 시간이 끝나감을 느낀 고모가 아빠에게 말했다.     



“오빠. 오빠 가족이나 잘 봐줘. 나머진 다 알아서 살아. 애들이나 잘 봐주면 돼. 언니랑...”

“편안히 가 편안히. 걱정하지 말고. 오래 살고 잘 살았어, 그 정도면. 난 형만큼 살 자신 없으니까. 형 장수하는 거야 나보다. 괜찮아.”

“듣고는 있는 거지? 오빠, 들리긴 하는 거지?”     



    잔잔한 웃음소리가 나던 햇살방은 이내 훌쩍이는 소리로 가득했다. 면회 시간이 끝나고 작은 아빠와 고모네는 우리 집으로 갔다. 




    조용해진 햇살방. 나는 아빠의 손을 물끄러미 보았다. 어린이날 즈음에 다듬었던 손톱이 자라있었다. 사실 어제 다듬을까 하다가 요양보호사 여사님이 그 정도면 괜찮다 하셔서 다듬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자꾸 눈이 갔다. 집에서 챙겨온 손톱깎이를 꺼내 아빠의 손톱을 다듬었다. 아빠의 손은 많이 건조했다. 손이 많이 부어 있었지만, 손 마디마디의 크고 선명한 세월의 주름까지 펴지는 못했다. 내 손위에 커다란 아빠 손을 포개어 보았다. 혈색이 돌고 따뜻했다. 


이 손으로 아빠는 평생을 가족을 위해 일했다.  
    



    이번엔 아빠의 발톱을 다듬었다. 발톱을 깎다가 바짝 깎은듯하면 얼른 아빠를 쳐다보고 아프냐 묻곤 했다. 아빠는 그저 평온하게 눈을 감고 있을 뿐, 조금의 찌푸림도 없었다. 아빠의 발 역시 퉁퉁 부어 있었고, 건조했다. 이 발로 암환자가 되어서도 자신의 몸보다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며 추운 날도, 더운 날도 일을 다녔던 아빠다. 쉴 틈 없이 고생만 했던 아빠의 발을 이제야 본다.     


    늦은 점심을 하러 나왔다. 분식집에서 간단히 먹고 병원으로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커피를 열두 개 샀다. 햇살방에 들어서기 전, 간호사에게 사 온 커피를 건넸다. 어제도 주셨는데, 또 이렇게 많이 주냐며 미안해한다. 비록 아빠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지만, 아빠가 이곳에서만큼은 마음 편히 계셨다는 걸 알고 있었다. 딸로서는 너무 감사했기에 작게나마 할 수 있는 표현이었다.  

   

    그 시간, 친정집으로 간 고모네와 작은 아빠는 아빠의 장지를 알아보고 있었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산소에 아빠의 장지를 마련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에 대해 엄마와 동생, 내 의견을 물었고, 다음 날 이른 아침에 내 차로 엄마와 함께 장지를 보고 오자 하였다. 오늘 밤은 동생이 아빠 곁을 지키고, 나와 엄마는 아침 일찍 움직이기 위해 집으로 가기로 했다. 저녁은 집에 가서 천천히 먹어도 되니 아빠의 곁을 좀 더 지키기로 하고, 동생이 저녁을 먹고 간단한 세안을 하고 올 때까지 햇살방에 있었다.      




    동생이 오고 일어나려 하는데, 아빠의 숨 쉬는 패턴이 미세하게 다름을 느꼈다. 손을 잡고 있어도 힘이 없던 아빠의 손이 조금씩 움찔움찔했다. 마치 집에 가려는 우리를 붙잡고 싶어 하는듯했다. 동생이 오고도 1시간을 넘게 못 일어나고 옆에 있었다. 엄마도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은 듯했다.      


“여보, 내 말 들려요? 여보, 애들 이름 좀 불러봐. 아들보고 손 좀 잡으라 할까?”     


    엄마가 말을 건넬 때 아빠는 소리 내어 숨을 쉬었다. 아빠의 눈에 눈물이 맺혔는지 엄마는 아빠의 눈가를 손수건으로 조심스레 닦았다.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도 연신 아빠에게 말을 건넸다. 시간은 우리의 마음과 상관없이 계속 지나가고 있었다. 일어나는 게 영 마음에 걸렸지만, 장지를 보고 결정을 해야 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었다. 아빠에게 ‘다녀오겠다.’ 하고, 동생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전화 달라 말하고 나서야 겨우 발걸음을 떼었다.      


    알 수 없는 기분에 발걸음을 떼고도 다시 돌아가야 하나 싶었다. 차를 타기 직전까지 계속 병원에 있어야 하나 생각이 들었지만, 설마 내일 아침까지 무슨 일이 있겠나 싶었다. ‘당연히 내일 아침에도 아빠를 만나겠지.’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그렇게 믿고 싶은 나의 바람이었겠지만. 다음 날 어른들과 함께 차를 타야 했기에 병원에서 출발하기 전, 뒷좌석의 카시트를 미리 떼어내고 엄마와 차에 올랐다.     


    친정집으로 향하는 길. 거리 위를 걷는 사람들도,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도 각자의 길을 향해 가고 있었다. 참으로 평온해 보였다. 엄마와 나는 잠시 말이 없었다. 우리 가족은 어느 길로 향하고 있을까. 오늘 하루는 병원에서의 여느 날처럼 별일 없이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그게 마지막 하루인 건지도 모른 채.

이전 09화 호스피스에서 밤을 지새우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