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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김선미 Oct 30. 2022

마지막 기다림

누구보다 외로웠을

    30년이 넘도록 묵묵히 나를 기다려 준 사람이 있다. 아빠는 내가 뭘 하든 늘 기다려 주었다. 어릴 때 놀고 있을 때면 공부하란 말 대신 스스로 공부를 할 때까지 기다려 주었고, 대학생 때 친구들과 노느라 집에 늦게 들어가는 날이면 아빠는 그제야 깜깜한 방에 틀어져 있던 TV를 끄고 잠을 청했다. 인도에서 프로그래밍을 배워 온 딸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인도 화장품 회사에 들어가고 싶다며 인도에 1년을 더 있겠다고 할 때도, 1년 뒤 화장품 회사 취업에 실패하여 모든 짐을 싸서 다시 한국으로 들어올 때도 아빠는 나를 믿고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며칠 전, 아빠가 1인실로 옮길 수도 있다는 전화를 받고 순천에서 인천으로 올라가는 그 시간에도 숨이 차오름을 느끼며 기다려 주었다. 세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니 아이를 기다려 주는 상황에선 재촉하며 서두를 때가 많았는데, 아빠의 기다림에는 서두름이 없었다. 그날도 그랬다.     




    병원을 나와 집에 도착한 엄마와 나는 고모가 시켜둔 저녁을 먹고, 짐 정리를 해둔 후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오전 6시쯤 일어났는데, 새벽 2시 14분에 동생에게 EKG 모니터 사진과 함께 메시지가 와 있었다.    

 

현재 혈압 떨어지고 맥박 상태도 안 좋음,
맥박 변동 폭이 심함.    


    

    세상에, 이런 메시지가 와 있는 것도 모르고 잠이 들었다니. 바로 동생에게 전화해서 아빠가 어떤지 물었다. 새벽 상태랑 비슷하다고 하기에 얼른 준비했다. 장지고 뭐고 일단 아빠가 우선이었기에 엄마와 나는 병원으로 간다고 했다. 집을 나서려는데 동생에게 전화가 온다. 순간 ‘올 것이 왔다.’라는 느낌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바로 받았다. 어디냐는 동생의 물음에 또 한 번 가슴이 철렁인다. 아빠의 맥박이 갑자기 떨어지고 있어서 바로 와야겠다고 말한다.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가는 내리 아빠에게 기다려 달라고 기도했다.      


    그렇게 달려갔던 햇살방에 들어서자마자 아빠를 먼저 보고, EKG 모니터를 보았다. 아빠는 여전히 평온해 보였다. 모니터로 보이는 맥박수는 어제에 비해 많이 낮아졌지만, 그 상태에서 유지하고 있었다. 더이상 내려가지 않아 다행이었다. 방 안의 모든 상태를 확인하고 나서야 아빠 귀에 대고 크게 말했다.   

  

아빠, 나 왔어! 


    그러자 유지하고 있던 맥박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모니터 위쪽에 주황색 불이 깜빡깜빡 들어왔다. 아빠의 마지막 신호가 깜빡이고 있었다.    

 

기다렸구나...


    아빠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쌌다. 엄마 역시 아빠의 몸을 부둥켜안았고, 동생 역시 아빠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동생은 우리가 병원으로 가는 동안 ‘엄마와 누나가 오고 있으니, 좀만 기다려달라. 좀만 더 버텨달라.’고 수없이 말했단다. 아빠가 살아있다고 알려주는 EKG 모니터의 모든 수치가 0으로 내려가는 것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눈물이 자꾸 흘러 눈을 질끈 감고, 이도 꽉 다물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두었기에 급하게 간호사를 부르지 않았다. 우리가 도착한 지 10분이 채 안 되었는데, 모든 수치가 0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본 아빠의 모습은 가족을 봤으니 이제 괜찮다고 말하는 듯 평온해 보였지만, 그 안에는 마지막까지 가족을 기다리기 위해 수천 번 몸부림을 쳤을 아빠의 모습이 숨겨져 있었다. 보이지 않았지만, 보였다. 아빠의 손을 잡았다. 그동안 감사했다고 손끝을 통해 말했다. 내 손위에 커다란 아빠 손을 포개어 보았다. 혈색이 없고 차가웠다. 사람 손이 이렇게 하얘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혈색이 없었다. 마지막이란 게 실감이 나면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조용히 간호사가 들어와서 산소마스크를 떼어내고, 팔에 꽂혀 있던 굵은 바늘을 제거했다. 이어 폐에서 물을 빼내던 관을 제거하기 위해 우리를 잠시 햇살방 밖으로 보냈다. 들어가도 된다는 간호사 말에 다시 햇살방에 들어섰다. 아빠와 연결된 모든 것이 제거되었다. 아빠의 마지막 숨이 정말로 떼어진 것 같았다. 산소마스크를 한 채 숨을 쉬느라 아빠의 입이 살짝 벌어져 있었다. 간호사는 수건을 말아 조심스레 아빠의 턱과 목 사이에 두었고, 아빠의 팔과 다리를 가지런히 놓았다. 그리곤 따뜻한 이불을 덮어주었다. 아빠의 입은 굳게 다물어졌고, 조용히 감긴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있었다. 아빠는 마지막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연락을 받고 의사가 들어왔고, 이내 사망선고를 한다.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을 다시 듣자 나의 고개가 떨궈졌다. 믿고 싶지 않아 숨겨놨던 나의 마음이 눈물이 되어 몸 밖으로 밀려 나왔다. 아빠는 그동안 몇 번이고 입 퇴원을 반복했지만, 이번엔 퇴원이 없다는 것도 이제는 집에 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 눈물이 계속 흐를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아빠 곁에서 눈물을 흘리며 식어가는 몸을 감싸는 것밖에 없다니. 하염없는 미안함이 몰려왔다.      


    30년이 넘도록 묵묵히 나를 기다려 준 사람이 있다. 나에게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강인했던 아빠가 제일 약한 상태에서 우리를 기다렸다. 아내와 딸이 임종을 못 지켜 평생 한이 될까 봐 마지막 숨을 아껴가며 묵묵히 기다려 주었다. 참 많이도 힘들었을 아빠의 마지막 기다림은 어쩌면 가족을 위한 마지막 선물이 아니었을까. 2022년 5월 29일 07시 40분.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도 무거운 선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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