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놓아주던 밤

붙잡지 않으니 찾아오는 것들에 대하여

by 새벽의숲

요즘 들어 매일 밤 침대에 누워서도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며칠째 잠을 제대로 못 자서인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이라도 빨리 잠들고 싶었다.


이른 저녁, 평소보다 일찍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캄캄한 방 안에서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창밖 실외기 소리만이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 소리에 맞춰 긴장을 풀어보려 했지만, 생각은 오히려 더 분주해졌다.


초등학교 쉬는 시간에 있었던 일, 몇 해 전 나눈 대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장면들까지. 한 장면이 다른 장면을 불러오듯 끝없이 이어졌다. 정신은 점점 또렷해졌고, '빨리 잠들어야 한다'는 조급함은 잠을 더 멀리 밀어냈다.


시곗바늘이 열한 시, 열두 시를 지났다. 시끄럽던 매미 소리마저 사라진 밤, 나만 이 고요 속을 헤매는 듯했다. 해결되지 않은 일들과 내일의 막연한 불안감이 계속 떠올랐다. 혼자 이런저런 걱정을 하며 어둠 속에서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언제부터 잠을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게 되었을까? 어릴 적엔 그저 피곤하면 자고, 눈이 떠지면 일어났는데 말이다.


그때 낮잠이 떠올랐다. 낮잠은 부르지 않아도 찾아왔다. 침대에 누워 책을 읽다가, 혹은 따뜻한 햇살 아래서 그냥 눈을 감고 있으면 어느새 곁에 와 있었다. '잠들어야지'라는 마음 없이 그저 몸을 맡기면, 자연스럽게 찾아온 것이었다.


어쩌면 잠은 내가 억지로 불러와야 하는 게 아니라, 조건만 갖춰지면 저절로 찾아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과 함께, 오늘 밤은 잠을 놓아주기로 했다. 대신 내 몸이 편안해질 수 있는 환경만 만들어주기로 했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었다. 떠오르는 생각을 억누르지도, 붙잡으려 하지도 않았다. 구름이 하늘을 흘러가듯, 그저 흘려보냈다.


초조함이 조금씩 가라앉았고, 어깨에 들어갔던 힘이 풀렸다. 어제의 일, 내일의 일들이 여전히 머릿속을 스쳤지만, 그 모든 것과 거리를 둘 수 있었다. 마치 영화를 보는 관객이 된 것처럼, 내 생각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몸이 서서히 가벼워졌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의식이 희미해졌다.


아침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밤이 나를 놓아준 건지, 내가 잠든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생각보다 조용한 마무리였다.


커피를 마시며 어젯밤을 되돌아봤다. 결국 내가 다시 확인한 건 '잠들기 위한 새로운 기술'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미 알고 있던 '놓아주는 방법'을 다시 한번 상기한 것이었다.


우리 삶의 많은 것들이 그런 것 같다. 너무 강하게 붙잡으려 하면 오히려 멀어지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기다리면 저절로 찾아온다. 사람과의 관계도, 원하는 결과도, 그리고 잠도 말이다.


오늘도 어제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두려 한다. 준비할 건 하되, 결과는 그 순간에 몸을 맡기면 되지 않을까. 마치 잠처럼 말이다. 이미 알고 있던 이 간단한 원리를 다시 한번 떠올리며, 오늘도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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