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다른 노선의 버스를 탔던 날.
창밖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문득 낯익은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어릴 적 살았던 동네였다.
작은 문방구, 골목길 모퉁이의 가로등, 놀이터의 미끄럼틀까지.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그 순간 가슴 한편이 먹먹해지며 오래된 그리움이 조용히 피어올랐다.
아무 걱정 없이 친구들과 뛰어다니던 그 자유로운 순간들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평소엔 감정이 시간과 함께 깔끔하게 정리될 거라고 생각한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것이라고, 이제는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살아간다.
하지만 어느 날 불쑥, 꽃처럼 피어나는 감정 앞에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모든 감정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마치 잊었던 추억이 담긴 노래를 듣는 순간처럼,
낯선 길모퉁이에서 익숙한 향기를 맡는 순간처럼.
감정은 예고 없이 찾아와 마음을 가득 채운다.
때로는 반갑기도 하고, 때로는 당황스럽기도 하다.
다 지난 일인데 왜 자꾸 흔들리는 건지,
왜 아직도 이런 감정에 휘둘리는 건지 스스로를 탓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렇게 피어난 감정에 사로잡혀도 괜찮다는 것을.
그 감정도 시간이 지나면 천천히 시들어 조용히 흩어질 테니까.
어쩌면 감정이란 계절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봄에 꽃이 피고 가을에 잎이 지듯.
감정도 때가 되면 피어나고 때가 되면 스러진다.
영원히 머물지도,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은 채
순환을 반복하며 삶을 채워나간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감정을 억누르거나 빨리 털어내려 애쓰는 게 아니라,
그 자연스러운 흐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기쁨도, 슬픔도, 그리움도 모두 삶의 일부로 인정하고 함께 걸어가는 것.
마치 계절이 바뀌어도 나무가 뿌리를 굳건히 하고 서 있듯이.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그 흐름을 거부하지 않는,
유연한 강인함을 배워간다.
때때로 찾아오는 예상치 못한 감정들도,
언젠가는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맞이할 수 있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