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하루가 또 익숙해질 때

9년 전, 나에게서 온 쪽지 한 장

by 새벽의숲

서랍을 정리하다 오래된 쪽지를 발견했다.

작은 메모지 위에 유독 진하게 눌러쓴 글씨.

"일상이 바뀌어도 적응하면 또 일상입니다."

9년 전 날짜가 적혀 있었다.


기억은 흐릿했지만, 그날의 풍경은 또렷하게 떠올랐다.

첫 파견을 마치고 낯선 골목을 걷던 저녁이었다.

불빛이 희미한 편의점 앞을 지나던 순간, 갑자기 숨이 턱 막히듯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아침까지 익숙했던 리듬은 온데간데없었고,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했다.

낯선 언어를 마주한 느낌이었다.


회의실에 앉아 처음 듣는 단어들 속에서 혼자 긴장하던 순간,

누군가 던진 질문에 당황해 얼굴이 붉어졌던 기억.

긴장한 채 마신 커피. 그 뜨거운 감각은 지금도 선명하다.


"이건 나랑 안 맞는 것 같아."

엘리베이터 거울 속의 낯선 나를 보며 몇 번이나 중얼거렸다.

그럼에도 다음 날이면 다시 가방을 메고 현관을 나섰다.

버티는 것과 살아내는 것, 체념과 다짐 사이에서 조용히 흔들리던 나날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일상은 몇 번이나 바뀌었다.

이직을 했고, 좋아하는 것도 조금씩 달라졌다.

처음엔 어색했던 일들이 어느새 익숙해졌고,

마치 처음부터 내 자리였던 것처럼 자연스러워졌다.


익숙해진다는 건, 언제나 조용히 다가왔다.

아무 일도 아닌 듯 천천히, 속에서부터 조금씩 바뀌는 일이었다.

겉보기엔 똑같아 보여도, 그 안에서는 내가 달라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런 과정을 체념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것이 살아가겠다는 조용한 다짐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냥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마음.

아마도 그 시절의 나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저 문장을 적었던 거겠지.


물론 그런 다짐조차 흐릿해지는 순간도 있었다.

“어쩔 수 없잖아.”라는 말을 하며 하루를 넘긴 날들.

그 말이 위로였는지, 포기였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순간에도 아주 작은 변화들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메모지를 바라본다.

"일상이 바뀌어도 적응하면 또 일상입니다."


문득, 이 문장이 오래 전의 나에게서 도착한 위로처럼 느껴진다.

하루가 다시 낯설게 느껴지는 어느 날,

이 문장이 다시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속으로 되뇌겠지.


"이번에도 괜찮을 거야."


어느새 또다시 익숙해져 버린 일상 속에서,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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