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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시 Oct 18. 2021

고시원에서의 한 달

<<착취도시, 서울>>

서울에 있는 출판사에 합격했지만 봐둔 집은 두 달 뒤에나 들어갈 수 있었다. 처음 한 달은 지방 본가에 머물며 KTX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KTX를 타고 다닌다고 하면 다른 직원들이 어떻게 지방에서 출근을 하냐고, 힘들지 않냐고 묻곤 했다. 어떻게? 서울에 집이 없는 사람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KTX 이용 시간만 따지면 서울까지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지만 서울과 지방의 심리적인 거리는 그것보다 멀었다. 1월의 찬 공기를 떨치고 일어나, 발을 굴러 추위를 쫓으며 역내 기차 시간표를 확인하는 수십 명의 사람들을 매일 만나다 보면 모두가 다 비슷하게 산다는 데서 안도감을 느끼기 보다 이렇게 해야만 서울에, 회사에 도달할 수 있다는 현실을 실감하게 된다. 나는 다음 달에는 고시원이라도 들어가려 한다고 대답했다. 당장 서울에 머물 수 있는 방법은 그것 뿐이었다.


그 다음 달에는 회사에서 지하철로 30분 정도 떨어진 역 근처 고시원에 들어갔다. 햇빛을 포기하는 대가로 창문 없는 방을 5만 원 더 싸게 얻었다. 어차피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회사에만 있을 테니 아쉬울 일도 아니었다. 입실 당일에 엄마와 고시원에 가서 짐을 풀고 근처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고구마 피자랑 파스타를 먹을 때 엄마가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길어봐야 한두 달만 머물 거니 괜찮다고 했다. 방은 정말 작았다. 싱글도 안 될 것 같은 침대와 침대 맞은편 벽에 붙은 책상, 사람 한 명도 겨우 들어갈 법한 사이즈의 옷장과 옷장 아래 위치한 작은 냉장고가 전부였다. 이상하게도 개별 화장실이었는지까지는 생각나지 않는데, 그 정도로 각박하게 돈을 절약했을 거라고는 믿고 싶지 않다. 


내게 고시원은 잠만 자는 곳이었다. 열 개가 넘는 방이 붙어있었지만 사람과 마주치는 날은 거의 없었다. 불을 끄고 누워 새 집에 들어가는 날만 기다렸다. 이사가게 될 집 역시 세 명이 한 집을 사는 ‘쉐어하우스’ 형태로 ‘새 집’이라 말하긴 힘들었지만, 그래도 고시원보다는 번듯한 집 형태를 갖춘 곳이었다. 한 달 뒤면 나갈 수 있다, 그게 당시 내가 품고 있던 희망의 전부였다. 

그래도 그곳은 적어도 숨을 돌리기에 나쁜 곳은 아니었다. 몇천 만원이라는 보증금을 당장 구하기 어려운 시점에 들어갈 수 있는 몇 가지 안 되는 선택지였다. ‘지옥고’라고 불리는 지하방, 옥탑방, 고시원은 그나마 선택할 수라도 있어 다행인 곳일까? 모든 선택지가 동일한 크기로 주어지지 않아서, 다른 걸 선택할 수 없어서 떠밀리듯 결정한 일도 내 의지로 택한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언젠가 인터넷에서 봤던 붕어빵 장수와의 대화가 생각났다. 1개 300원, 3개에 천 원이라는 붕어빵 가격을 보고 한 개만 사면 더 비싸야 하는 거 아니냐고 손님이 묻는다. 붕어빵 장수는 붕어빵을 한 개만 사는 사람들은 금전적인 사정으로 3개, 6개씩 사먹을 수 없는 사람들일 테니 한 개 가격을 낮게 적었다고 대답한다. 생리대도 생각났다. 인터넷으로 열 개, 스무 개 들이 생리대를 한번에 구입하면 개당 가격이 100원 대이지만 그런 식으로 몇만 원을 한번에 쓸 수 없어서 개당 삼사백 원꼴인 생리대를 조금씩 살 수 밖에 없는 이야기. 고시원도 다를 게 없었다. 절대적인 가격으로만 치면 보증금과 관리비 걱정 없이 한 달에 30만 원, 40만 원 주고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저렴하고 거의 유일한 거주지겠지만, 평당 가격으로 계산하면 어느 집과 비교해도 터무니 없이 비싼 곳이었다. 돈을 한번에 많이 쓰면 더 싸게, 더 많이 가질 수 있단 걸 알면서도 당장 싼 물건들을 비싸게 살 수밖에 없는 것도 선택이라면 선택일까. 미래에서 빌려올 게 없어서 오늘을 견디는 게 목표라면 목표일까.



<<착취도시, 서울>>에는 응당 누려야 할 기본적인 거주 환경의 끝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기자이기도 한 저자는 무허가로 만들어진 건물과 쪽방을 누가 소유하고 있는지 조사하며 ‘지옥고’ 뒤에 숨어 돈을 버는 자본가들을 파헤친다. 책에서 밝힌 쪽방의 평균 평당 임대료는 18만 2,550원, 서울 전체 아파트의 평균 평당 월세는 3만 9,400원이다. 쪽방의 진짜 주인은 개인 화장실이 없고 난방도 되지 않는, 심지어는 일부 벽이 허물어져 슬레이트나 비닐로 씌워둔 방을 빌려주며 수천 만원의 이익을 얻어 다른 건물을 산다. 무허가로 집을 개조해 최대한으로 이익을 얻어낼 수 있는 ‘방’을 만들어 냈기에 가능한 수익이다. 자본가들은 기업을 운영하듯 쪽방촌을 운영하고 자신들과 세입자 사이에 중개인을 두고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가족에게 쪽방촌을 물려주며 사업을 번창시킨다. 밖으로 밀려날 수 없는 사람들은 고시원을, 옥탑방을, 쪽방을 선택한다. 


중국 베이징에는 따뜻한 맨홀 아래 사는 맨홀족이, 영국 런던에는 보트에서 생활하는 하우스보트houseboat족이 많다는 책의 구절을 읽으며 내가 목격한 호주의 ‘쉐어족’을 떠올렸다. 집값을 아끼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많은 유학생들이 쉐어를 선택한다. 쉐어는 집 대신 방을 빌리고 화장실과 주방은 하우스 메이트들과 공유하는, 호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거 방식 중 하나다. 집주인은 한정된 공간에 최대한 많은 사람을 들여 수익을 내기 위해 방을 ‘쪼갠다’. 공유 공간이어야 할 거실과 베란다에 커튼을 달거나 가벽을 세워 ‘방’을 만든다. 집의 복도hall를 방으로 지칭하며 세입자를 구하는 광고가 한때 이야깃거리가 되기도 했다. 집주인은 그 공간마저 저렴하지 않은 금액을 매긴다. 시드니는 겨울에도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으니 베란다에 사람이 살 수 없다고는 말하긴 어렵다, 집 안 어디라도 밖보다는 살기가 낫다. 수요 없이는 공급도 없으니 싫으면 안 들어가면 그만이라고도 말할 수도 있다. 누구도 베란다에서 살라고 사람을 떠밀지 않는다. 그렇게 모든 것을 선택하고 말고의 문제로 덮어둔 채, 모든 걸 내 뜻대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나라에서 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 더 이상 방이 생기지 않을 때까지 집을 쪼개고 또 쪼갠 다음 한 집에 스무 명을 몰아 넣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에게 벌금만 물리면 더 할 일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서울시에서 만든 ‘5평 임대주택’을 둘러싸고 작아도 너무 작은 원룸형 집을 지방자치단체에서 제공한다는 문제제기와 그런 집도 없어서 못 들어간다는 반론이 첨예하게 부딪쳤다. 법에 따르면 ‘14제곱미터의 면적, 부엌, 전용 화장실과 목욕 시설’을 갖춘 곳이 1인 가구의 최저 주거 기준이라고 한다. 16제곱미터의 5평 임대주택은 그 기준보다 아주 조금 나은 정도다. 임대주택은 낭떠러지에 몰린 청년들을 구제하는 수단이 될 수는 있지만 최악을 면한 상황에 주저 앉히게 만든다는 우려도 낳는다. 노력하면 집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은 꺼진지 오래고 방 한 칸 얻기도 힘들게 구겨진 현실은 다시 펴도 무수한 주름과 패인 상처를 남긴다.


고시원에서 지낸 한 달 동안, 늘 그곳에서 나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제와 지난 10년을 돌아보니 내가 타인과 공유하지 않는 나만의 방, 나만의 공간을 가졌던 기간은 그 고시원에서의 한 달이 유일했다. 본가를 제외하고 내가 살았던 집에는 늘 두 명 이상의 하우스메이트가 있었다. 친구 한 명 초대할 수 없었고 둘이 누울 자리도 없었던 고시원과, 집 자체는 커졌지만 오롯이 내 공간이라고 말할 만한 자리가 없는 쉐어살이. 불행하다 말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무엇이 더 낫다고 말할 수도 없는 현실이었다. 2평도 안 돼보이던 고시원와 일곱 명이 거주했던 방 두 개짜리 집 모두 내가 골라 들어간 곳이었지만, 그 어느 것도 내가 진정으로 원한 삶의 방식은 아니었다. 한 번도 선택이라고 말할 만한 순간이 없었다. 


어디에서든 살 수는 있지만, 사는 것만으로는 삶이 지속될 수 없다. 세상에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 없다는 말을 들을 때면 도리어 묻고 싶어진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느냐고. 하고 싶지 않은 것들로 생을 채우며 사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나의 집, 나의 가족, 나의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상태에서 현재의 무엇을 붙잡고 살아야 하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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