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바야르
댕그랑, 책방 문을 열고 들어온 셜록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서 카운터 의자에 털썩 앉았다. 모자를 벗어서 힘없이 카운터에 던졌다. 평소에는 반듯이 접어서 놓아두고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던 셜록이었다. 오늘은 영 딴판이다.
“셜록, 왜 그렇게 힘이 없어? 어디 아파?” 나는 셜록에서 손 소독을 하라고 기계를 가리켰다. 셜록은 하기 싫은 표정을 짓고 마지못해 손 소독을 했다. “정상입니다.” 나는 안심했다.
“초록, 난 이제 끝났어.”
“그게 무슨 말이야?”
“아무래도 내가 범인을 놓친 것 같아.”
“범인을 놓치다니? 무슨 소리야?”
“사실 난 탐정을 그만 둘 계획이었어.” 셜록은 머리 세수를 하듯 양손으로 머리를 싹싹 씻었다. “다시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고. 통영에 정착해서 매년 음악회도 즐기고 바이올린 레슨도 하고 북클럽에도 참석하고 싶었어. 그런데 그놈이, 빌어먹을 그놈이 날 죽이려 한다는 걸 알고 나서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어. 배후가 그놈인줄은 몰랐어. 그래서 실수를 한 거야. 그래서 진범을 놓친 거라고.”
“배후라면 모리아티는 죽었잖아. 혹시 그 잔당 때문에 그래?” 나는 셜록을 보면서 물었다. 셜록의 눈빛에는 연민과 슬픔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아니, 나를 죽이려는 진짜 배후는 코난 도일이야.”
“뭐? 코난 도일이 널 죽이려 한다고?” 나는 귀를 의심했다.
“그래, 난 무서워. 모리아티 열 명이 붙어도 그보다 더한 놈과도 싸울 수 있지만 코난은 힘들어. 그의 펜은 칼보다 날카롭거든.”
그래서 어떤 범인을 놓쳤단 말이야?
“제보가 들어왔어. 바스커빌 사건의 진범이 따로 있대.”
“뭐? 누가 그래?”
“피에르 바야르라고 추리비평을 쓰는 프랑스인이래.”
“그 사람 나도 알아.”
“어떻게 알아?”
“어제 덴마크에서 수사관들이 왔어. 햄릿 왕 살인범을 찾고 있는데 피에르가 수사에 혼선을 준다고 불만이던데.”
햄릿 왕 살인범은 동생으로 판명 났잖아. 그 사건 종결된 게 아니래?
그 사람들이 조금 웃긴 게 마치 진범이 햄릿 왕자인데 왕자가 범인이 되면 안 되니까 사건을 은폐하려고 하려는데 피에르가 그걸 폭로한 것처럼 굴었어. 이상했다니까. 그런데 내 생각은 달라.
넌 누가 범인이라고 생각하는데?
호레이쇼.
뭐? 호레이쇼는 햄릿의 절친이잖아.
어허, 명탐정께서 왜 이러실까. 등잔 밑이 어둡다는 거 몰라? 범인은 항상 뜻밖의 인물인 법이야.
이 사람아, 그건 소설에서나 그렇지 현실은 달라.
셜록, 잘 생각해봐. 결국 덴마크를 누가 접수했지?“
“포틴브라스.” 셜록은 조금 놀라는 표정이었다. “햄릿이 나라를 왜 포틴브라스에게 넘겼지?”
“그럴 리가 없지. 어느 나라 왕자가 나라를 다른 나라 왕자에게 넘기겠어.” 내가 말했다. “햄릿은 나라를 노르웨이 왕자에게 넘기지 않았어. 셰익스피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어. 사실 우리는 덴마크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햄릿에 관한 이야기는 호레이쇼의 증언 외에는 아무도 입증할 수 없으니까. 폴로니어스, 레어티즈, 오필리아, 클로디어스, 거트루드, 로젠크란츠, 길든스턴까지 핵심 증인은 다 죽었어.”
“호레이쇼가 이 모든 사건의 배후였다?” 셜록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혼자서 벌인 일은 아닐 거고 내 생각에는 포틴브라스 왕자와 졸린 마법사와 호레이쇼가 꾸민 일일거야.”
“포틴브라스 왕자가 아버지의 복수를 했단 말이야?”
“그렇지. 포틴브라스는 호레이쇼를 일찌감치 독일로 보내서 햄릿의 친구로 만들고, 왕자의 친구라는 신분으로 덴마크의 왕에게 접근해서 살해한 거지.”
“햄릿 왕이 죽으면 형수와 불륜관계였던 클로디어스가 햄릿을 무시하고 왕이 될 거란 것도 그들이 예상했단 말인가?” 셜록은 눈을 가늘게 뜨고 뭔가를 떠올린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그 유령은 마법사 짓이군. 그렇지. 햄릿한테 유령 얘기를 꺼낸 것도 호레이쇼잖아.”
“오늘 저녁에 북클럽 모임이 있는데 올래?” 나는 셜록에게 물었다. “그 덴마크정보국 요원들도 참석할 거야. 다 같이 햄릿 왕 살인범을 추리할 건데 네가 있으면 더 좋겠어.”
“그래, 좋아.” 셜록은 재미있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셜록, 그리고 통영에 정착할 생각이라면 책방에서 일 해보는 건 어때? 그래, 이참에 탐정 그만 두고 책방에서 일하는 거야. 책을 아무거나 추천해달라는 손님들이 왕왕 있어. 나는 너처럼 그 사람을 잘 관찰해서 좋아할 만한 책을 추천해주고 싶은데 잘 안 되더라고.”
“흠, 그거 재밌겠는걸. 상대가 무슨 책을 좋아할지 추리해본 적은 없는데 한번 실력 발휘를 해볼까.”
댕그랑, 마침 책방 문이 열리고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들어왔다.
“흠, 저 손님은...”
“아이고, 아저씨, 나도 알아. 당연히 동화책이지. 저리 비켜봐.” 나는 셜록의 어깨를 툭 치면서 앞으로 나갔다.
“어서 오세요.”
셜록은 카운터에서 일어나 머리를 쓰다듬고 모자를 제대로 쓰고 옷매무새를 고쳤다. 그리고 엄마에게 말했다.
“어머님, 이리 오시죠. 여기에 찾으시는 책이 있습니다.” 셜록은 나에게 윙크를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