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난임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던 이유
결혼한 친구들도 있지만 주변엔 결혼하지 않은 미혼의 친구들도 많다. 연애하지 않을 때는 편하게 연락해서 만나던 친구들도 연애를 시작하면 만나는 날을 잡기가 조금은 어려워지고 결혼을 한 이후엔 특별한 날이 아니면 만날 기회가 더 줄어들었다. 시댁 이야기나 남편 흉을 보는 건 결혼한 친구들과 나누기 좋은 이야기일 뿐 아직 결혼 전인 친구들에겐 괜한 투정처럼 느껴지거나 지루한 이야기가 될까 싶어 말을 고르게 되었다.
아직 좋은 소식 없냐는 질문은 나도 난임이 되기 전엔 주변의 신혼인 친구들에게 곧잘 했던 질문이었다. 그 질문이 누군가를 당황시키거나 슬프게 할 거라는 생각을 나는 하지 못했다. 결혼 후 시간이 꽤 흐르자 자녀계획을 묻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아이를 가지기 어려운 상황이라 난임 병원에 다니고 있다고 말했고 근데 쉽지 않네 하고 어색하게 웃곤 했다. 그럴 때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같이 안타까워하고 힘내라고 말해주었다. 때로 아이가 생기지 않는 상황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친구의 태도가 위로가 되기도 하였다. 내 문제에 골몰하다 보면 나의 상황이 가장 어둡고 처연하고 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때 가볍게 대답해주는 친구를 만나면 한없이 아래로 떨어지는 나의 웅덩이에서 올라올 힘이 생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도 다 알 수 없는 나의 마음은 비슷한 어떤 말엔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하였다. 어느 날 난임시술받는 이야기를 친구에게 털어놓았을 때 친구는 '넌 그래도 결혼은 했잖아'라고 답했다. 친구와의 대화는 어색하게 끝나버렸다. 결혼문제로 고민하고 있던 친구에게 이미 결혼을 한 내가 꺼내는 고민은 덜 무거운 것이었을 수도 혹은 더 많은 걸 욕심내는 걸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친구 역시 고르고 골라 건넨 한마디였을 것이다. 친구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더는 나의 어려움을 나눌 수가 없었다.
반대로 내가 친구의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나 역시 친구처럼 대답했을지 모른다. 너의 어려움이 별거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는 각자 삶에서 각자 그만한 크기의 어려움을 만나고 헤쳐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 나의 상황이 실은 다른 누군가에겐 아직 닿지 못한 곳일 수 있고 그렇게 내게 없는 하나에 골몰해서 내 삶 전체를 다 평가절하할 것이 아님을 잊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감사할 것, 소중하게 여길 것들을 까먹은 채 아직 내가 갖지 못한 하나만을 뚫어지게 쳐다보느라 오늘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날 친구의 말은 참 아팠다. 그러나 동시에 나를 깨운 말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