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저주하는 내가 무서웠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내가 궁금해서 그러는 건데. 임신을 안 하는 거예요? 못하는 거예요?”
저 말을 들었던 때가 벌써 5년 전이다. 그 사이 아이를 낳았고 아이는 5살이 되었다. 시간도 흘렀고 아이도 낳았으니 잊을 법도 한 저 말은 그러나 마음 한편 남아 아물지 않는 상처가 되었다.
고3 때는 어느 대학 갈 거냐, 대학 가면 취업은 어떻게 할 거냐, 취업하면 결혼은 어떻게 할 거냐, 결혼하고 나면 아이는 어떻게 할 거냐. 사람들은 궁금한 게 참 많다. 사실 나도 다른 사람에게 저런 질문을 한 적이 꽤 있던 것 같다. 할 말이 없어서 그냥 문득 생각나서 물었던 나의 질문에 또 다른 사람들도 상처를 받았겠지.
임신을 못하는 거냐고 물었던 어떤 이는 내가 난임 병원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이후 어디선가 나의 시험관 시술 소식을 듣고 난 뒤론 시술 결과를 묻고 했다. 나와 개인적인 삶을 나눠본 적 없는 친분이 없는 이가 불쑥불쑥 나의 임신 여부를 물을 때마다 나는 칼에 찔리는 듯 아팠다. 정확히 그때의 감정을 정의하긴 어렵지만 창피하기도 했고 분하기도 했고 서럽기도 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는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무례한 질문을 하지 말라고 왜 바로 말하지 못했을까. 상대는 나보다 나이가 꽤 많은 사람이었고 번번이 나는 바보 같은 웃음으로 그 상황을 넘겼다. 그러나 문득 이렇게 계속할 순 없다는 생각이 들어 용기를 내었다.
상대는 당황한 표정을 짓고 그다음부터는 내 앞에 나타나지도 그런 말을 하지도 않았다. 진작 용기를 낼걸. 기분이 나쁘면 나쁘다고 그런 말 하지 말라고 말할걸. 내가 용기 냈던 이유는 어느 순간 그 사람을 저주하는, 아무 잘못 없는 그 사람의 딸이 나처럼 되라고 혼자 중얼거리는 스스로를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당신 딸도 나 같은 시간을 지나간다면 지금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어?'
스스로 품고 있는 이 생각이 너무 무서워서 나를 스스로 독으로 해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하라고 용기 내 말했다. 어떤 이는 우리가 용기를 내서 표현을 해도 우리에게 상처주기를 멈추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먼저 상처받지 않기로 결단하는 것, 나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은 상대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꼭 필요한 것 같다. 그건 나쁜 태도도 아니고 싹수없는 행동도 아니고 우리가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 꼭 해야 하는 행동인 것이다.
혹시라도 오늘 누군가의 무심한 한 마디에, 작정하고 하는 한 마디에 마음이 또 쿵 하고 내려앉았다면
괜찮아요, 우리 다음엔 용기 내서 우리 스스로를 지켜내요.
충분히 너무 잘하고 있어요.
지금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