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리배 Dec 26. 2022

본인 생각만 하세요. 자신이 가장 중요해요.

난임상담 선생님의 말

5번째 시험관 시술이 실패했던 2017년 여름, 엄마를 보기 위해 친정집에 다녀왔다. 

회사 다닐 때는 아침 출근길에 1분이라도 엄마와 통화하는 것이 나만의 루틴이었다. 그러나 시험관시술을 시작한 이후론 전화를 그전처럼 자주 하지 않았다. 


"힘들어서 어떡하니"

"그렇게 해도 괜찮겠니?"



언제나 내 몸과 마음 걱정이 우선인 엄마는 시험관시술이 무엇인지, 어떻게 진행하는 것인지 잘 모르셨다. 그저 주위에서 들은 이야기로 시술을 하다 보면 몸이 많이 상한다더라, 나라에서 지원을 해줘도 돈이 많이 든다더라 등의 이야기를 듣고 안타까워하실 뿐이었다.


엄마의 마음을 잘 알면서도 그저 감사만 해야 하는데 괜찮다는 말을 더는 할 수가 없어서, 나도 나의 미래가 어찌 될지 몰라서, 이식이 실패로 끝날 때면 그 결과를 알려드리는 게 참으로 곤혹이라 점점 엄마와의 거리를 두게 되었다. 


그러나 5번째 이식이 실패하고 나니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일을 쉬고 있으니 뭐 스케줄 조정할 필요도 없는 것인데 왜 이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것인지. 시험관 시술을 하며 어느 순간 10KG 이상 찐 모습으로 엄마 앞에 나타났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야 엄마는 말씀하셨다. 


"아니 역에서 널 봤는데 너무 살이 쪄서... 그게 다 너무 힘들고 약 때문인 거 같아서... 내색은 못했지만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


엄마가 차려주신 밥은 맛있었고 의미 없이 주고받던 대화도 재미있었다. 또 올게 라며 다시 기차를 타고 창밖을 바라보는데 그저 아득하고 막막한 느낌이 나를 휘감았다. 





이 기차는 도착지도, 도착시간도 정해져 있는데 내가 가고 있는 난임의 길은 어디로 도착할지, 언제 도착할지도 알 수 없구나. 그런데 내가 타고 있는 난임기차는 어디서 내려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그 순간 전화가 왔다. 

난임상담센터 상담선생님이셨다. 이쯤이면 이식결과가 나왔을 것 같아 안부차 전화를 하신 모양이다.


"네... 선생님... 잘 안 됐어요. 지금 엄마 만나고 다시 올라가는 길이에요"

"아... 그렇군요... 숨비소리님, 자기만 생각하세요. 본인 마음만 생각하세요. 다른 사람 걱정하지 말고 본인 마음만요. 자기 자신이 제일 중요해요. 알았죠?"



꽁꽁 싸매고 있던 마음의 끈이 끊어졌다. 


그렇다. 지금 가장 슬프고 속상한 사람은 나다. 계속되는 실패에 좌절한 사람은 나다. 앞길이 무섭고 막막한 사람은 나다. 내가 가장 아프다. 나는 지금 힘들다. 엄마가 속상할까 봐 씩씩하게 웃고 떠들며 엄마의 안색을 살폈던 내 안의 작은 아이가 그제야 참았던 숨을 천천히 쉬기 시작했다.


난임기간을 지나다 보면 지나치게 지금 나에게 집중해서 내가 가장 불쌍하고 슬픈 상황인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다른 사람들이 내 맘처럼 나를 봐주지 않는 것 같아 야속하고 그 어떤 세상의 아픔보다도 내 상황이 가장 잔인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주위를 돌아보라고, 너무 자기 연민에 빠져선 안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반대로 스스로 상처받는 게 두려워서 인정하고 나면 정말 주저앉게 될까 봐 쿨한 척 씩씩한 척 가면을 쓰고 난임기간을 지나는 이들도 있다. 그 시기의 내가 그랬다. '너처럼 건강하게 난임을 헤쳐가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솔직하지 못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칭찬받고 싶었고 내 마음은 내버려 둔 채 우리 엄마가, 남편이, 시부모님이 어떤 마음일지에 더 신경 쓰곤 했다. 정작 나 스스로 내 마음을 돌보지 않으면서 왜 나는 힘을 내지 못할까 자책했다. 


선생님과의 통화를 마친 후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지금 난임의 시간에 가장 중요한 건 나다. 


내 마음이 어떤지 살피고 돌보는 것이 1번이다. 주위 사람들이 아무리 신경을 쓰고 배려해준다고 한들 내 마음은 내가 가장 잘 알고 다독여줄 수 있다. 그렇게 내 마음을 돌봐서 힘이 나야 나와 함께 이 시간을 견디고 있는 가족들과 주위사람들에게 나 역시 힘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난임'이라는 단어를 검색해서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


당신이 가장 중요해요.

내 마음이 지금 속상하고 상처 입었음을 외면하지 마세요.

스스로 괜찮아, 잘하고 있어 격려해줄 때 내 마음은 가장 큰 힘을 내는 것 같아요.

이전 09화 어떤 말도 당신을 위로할 수 없어서 음악을 내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