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리배 Dec 15. 2022

어떤 말도 당신을 위로할 수 없어서 음악을 내민다

‘세상의 모든 음악’ 들어볼래요?

"'세상의 모든 음악'을 한번 들어볼래요?"


상담시간이 다 되어 마무리를 하던 중 상담 선생님은 내게 '세상의 모든 음악'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어보라고 말씀하셨다. '세상의 모든 음악'은 KBS 1FM에서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방송되는 프로그램인데 흔히 말하는 월드 뮤직을 들려주는 프로그램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화 OST나 올드 팝, 게임음악이나 애니음악을 들려주기도 한다. 낯설게 느껴지는 라틴음악이나 아시아 음악도 들려준다. 그동안 만나지 못한 음악들이지만 묘하게 듣다 보면 편안함을 선물해 준다. 예전에는 라디오가 꼭 필요했지만 이제는 핸드폰 앱으로 언제나 어디서든 편하게 들을 수 있다.



시작할 때 진행자가 "여러분 오늘 하루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인사를 하는데 지친 퇴근길, 하루가 고단했던 이들에게 이보다 더 따뜻한 말이 있을까. 당시 선생님이 바라본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에야 그때 내 모습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괜한 투정 같아서, 사람들을 더 이상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아무렇지 않은 척, 씩씩한 척하며 스스로도 몰라주던 아픈 마음을 선생님 앞에서 내어놓고 한참을 울었다. 어떤 말보다 따뜻한 음악이 위로가 되고 치료제가 될 거라고 선생님은 생각하셨던 것 같다.


아무리 가까운 이라도, 난임의 산을 함께 걸어가는 남편도 내가 먹는 약과 주사를 안쓰러워하는 엄마도 그 누구도 만져줄 수 없는 부분이 난임 환자에게는 존재한다. 말할수록 공감하지 못하는 상대방이 답답해서, 이런 상황을 만든 게 모두 나의 탓 같아서, 누구를 탓하고 원망해야 할지 몰라 답답해서 입을 닫고 사람들과의 대화를 거부할 때 음악은 내 이야기 좀 들어볼래? 하고 다가온다.




가사도 잘 모르겠고 그저 음과 리듬만으로 이해되는 월드뮤직을 듣다 보면 음악의 리듬이 꼭 발걸음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자신의 속도대로 내 귀에 들리는 그 리듬에 맞춰 걸어가다 보면 깊게 파인 상처가 조금은 아물지도, 마음속 너무나 간절한 그 소원이 성큼 다가와 해맑은 얼굴을 보여줄지도 모른다.


나는 '세상의 모든 음악' 말고도 사람들과 말하기 싫을 때는 스트리밍 사이트에 들어가서 '연애시대 OST'나 '마커스 워십 음반'에 들어있는 기도 트랙만 모아서 듣기도 했다. 음악은 한없이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는 내 기분을 더 잡아당기는 듯도 하지만 어느새 한참 울고 난 맑간 얼굴을 내게 선물해주곤 했다.



난임은 어떤 비법도 어떤 유능한 선생님도 결코 다 해결해줄 수 없는 벅찬 문제다. 어떤 말도 그저 뻔하고 다 지나갔기에 할 수 있는 그저 그런 말이 될 것 같아서 말을 더 아끼게 된다.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될 수 없을 것 같아서 오늘 하루 고단했을 당신에게 그저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들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음악을 따라 걸어가며 그 걸음에 힘이 생기길.



이전 08화 임신을 안 하는 거예요, 못 하는 거예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