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문득.

by 승민

아침의 배우 훈련을 마치고 오늘의 일정을 확인하기 위해 스케줄 북을 펼쳐 놓고 자세를 고쳐 앉는다. 오늘의 일정을 확인해야지 했지만 맨 뒤 페이지로 넘겨 훈련했을 때 느꼈던 점과 발음 연습할 때 읽었던 책의 감명 깊은 구절을 적어 놓는다. 때마침 울리는 핸드폰 메시지의 알림. 확인해 보니 오늘 오후 2시까지 점심 약속을 잊지 말아 달라는 내용과 함께 여러 일정이 보인다. 아차. 난 오늘의 일정을 확인하기 위해 스케줄 북을 펼친 것이 아니었던가. 서둘러 다시 앞 장의 이번 달 스케줄 페이지로 넘어간다. 그러고 보니 약속은 오리역에서 진행하는데 우리 집에서 거리는 얼마나 걸릴까? 핸드폰을 꺼내어 지하철 앱으로 대강의 거리를 확인한다. ‘아. 한 20분 정도 걸리는구나.’ 그러면 50분 전에 씻고 나가면 괜찮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잠시 동안 편하다. 그러고 보니 아침식사 후 커피를 깜박했다. 방에서 나가 커피포트에 물을 끓인다. 그 사이 원두를 프렌치 프레스에 담아 준비시켜 놓은 다음 물이 끓자마자 담아 방으로 가져온다. 원두를 불리는 동안 책상 옆의 기타를 만지작거리며 요새 연습하는 U2의 'With or Without you'를 흥얼거리며 연주해본다. 아직 코드 체인지가 미숙함에 답답함이 밀려온다. 그 사이 불린 원두를 내려 맛있는 커피를 한 모금. 그러고 보니 요새 메일 확인을 못한 것 같아 노트북의 전원을 켠다. 컴퓨터가 부팅되는 동안 얼굴이 건조한 것 같아 미스트를 뿌린다. 그러다 문득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이 보인다. 왼쪽 뺨의 트러블이 묘하게 심리를 건든다. ‘저걸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쯤 부팅이 완료된 알림음에 시선은 다시 컴퓨터로 향한다. 메일을 보기 위해 들어간 포털 사이트의 메인 페이지. 그러고 보니 엊그제 주문한 신발이 어디쯤 오고 있는지 궁금하여 해당 사이트로 접속하여 택배의 위치 추적을 해본다. 물건의 위치로 보아 아직 하루 정도 더 있어야 할 듯싶다. 다시 포털 사이트의 메인 페이지. 여러 자극적인 기사들의 문구가 눈에 띄어 몇 차례의 클릭으로 확인해본다. 역시나 시시껄렁한 알맹이는 없는 공허한 기사들. 매번 알면서도 속는 나 자신이 참으로 한심하다. 다시 커피 한 모금. 갑자기 담배 생각이 나 담배와 라이터를 집어 들고 현관으로 나가 복도에서 한 모금 머금는다. 눈앞에 펼쳐진 녹색의 공원의 싱그러움에 마음이 따사롭다. 날씨 한번 화창하구나. 별생각 없이 다시 또 한 모금. 불현듯 어제 보았던 영화 ‘헤드윅’에서 주인공이 나체로 세상을 향해 걸어가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가 겪었던 시련들과 세상의 편견들을 향해 의연히 나아가는 모습이 인상 깊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사이 짧아진 담배를 비벼 끄고 계단을 내려온다. 눈앞에 보이는 몇 달 동안 움직이지 않았던 자전거. 바퀴의 바람을 채워 넣고 브레이크를 손봐야 하는데 선뜻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 출입문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다시 집으로.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방 안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는다. 컴퓨터 모니터에 띄워진 여러 창들과 반쯤 남겨진 커피, 조용한 방안에 왱왱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 미동 없는 핸드폰. 그러다 문득.

난 대체 뭘 하려 했던가...


서둘러 처음의 스케줄 북을 펼쳐 오늘의 일정을 확인하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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