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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미소 Sep 03. 2021

크리스마스에 내린 눈

'요즘 시대에도 저런 모습을 볼 수 있구나.' 내 앞에서 느리게 걷고 있는 서너 살과 예닐곱 살 되어 보이는 두 아이가 보였다. 그 아이들의 손을 잡고 허름한 옷차림의 여자가 함께 을 걷고 있다. 등에는 백팩을 메고 있었는데 얼마나 오래 썼는지 모서리마다 푸슬하게 보풀이 일어 너덜너덜하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조금 독특한 면이 있는 여자는 계절에 맞지 않게 얇은 옷을 입었고 아이들은 보풀이 일고 소매 끝이 너덜한 옷을 입고 있다. 요즘에는 보기 드문 모습이라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보니 마음이 많이 쓰렸다.

몇 년 전의 일이었다. 여자의 집은 친정 엄마가 살고 있는 상가 주택의 맨 끄트머리 집이었다. 10평이나 될까? 방 하나에 거실 겸 주방, 그리고 화장실과 뒤에 달아낸 창고, 이 집에 두 아이와 한 여자가 살았다. 바로 인도 옆 집이라 창문 옆으로는 사람들이 다녔고, 대문도 없어 문을 열면 바로 거실인 집이었다. 친정엄마가 옛날에 았던 그 집에  그 여자는 살고 있었다.

엄마의 집에 갈 때마다 가끔 그 여자를 보는데 사연은 알 수가 없었다. 남편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그 가족은 내내 내 마음속에 덜 익은 여드름처럼 가끔 내 마음을 쓰리게 만들었다.


어느 해 12월 크리스마스 날이었다. 그날 엄마의 집에 가는 길에 내 발끝에 반으로 접힌 만 원권 지폐 몇 장이  눈에 들어왔다. 3만 원이었다. 허리를 굽혀 그 돈을 줍는데 마치 도둑질을 하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면서도 불로소득의 짜릿함, 내 눈에도 이렇게 돈이 보이는구나 하는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잃어버린 사람의 속상함이 문득 스쳐 지나갔지만 내가 주은 기쁨에 비하면 아주 작았다.

엄마 집에서 돌아오는 길 오늘 운 이 돈으로 뭘 사갈까? 생각하는데 문득 그 여자와 두 아이가 생각났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두 아이가 생각났다. 집을 나서기 전 아이들은 치킨이 먹고 싶다고 했다.

친구가 하는 치킨집에서 치킨 두 마리를 주문했다. 집에 치킨 한 마리를 두고 남은 한 마리를 들고 여자와 두 아이가 있는 집으로 향했다. 불이 켜진 창문 안에서 칭얼거리는 아이의 소리가 들렸다. 어린이 방송을 틀어놓았는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낯익은 만화 소리도 들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창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나는 조금 더 크게 창문을 두드렸다. "엄마, 누가 왔어!" 큰 아이의 목소리에 이어 "엄마, 누가와쪄!"라며 울음을 뚝 그친 작은 아이의 혀 짧은 발음이 앵무새처럼 따라 했다.

잠시 후 여자가 창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저 108호 할머니 딸이에요. 아시죠? 우리 애들 거 사면서 한 마리 더 샀어요"라며 창문 너머로 치킨을 내밀었다.

"와! 치킨이다!" 치킨 상자를 보고 알았는지 큰 아이가 펄쩍펄쩍 뛰자 작은 아이도 덩달아 "치키, 치킨"하면서 풀짝폴짝 뛰었다.

간간이 얼굴을 보던 사이라 경계심이 없었던 여자가 엉거주춤 치킨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궁금한 눈으로 물었다.

"아, 우리 애들 거 사면서요,  엄마 잘 부탁드린다고요."

어색하게 치킨을 받아 든 여자가  "고마워요." 불완전한 발음이었다.


여자가 창문을 닫은 후 나는 잠시 창문 너머로 귀를 기울였다.

"엄마, 이게 치킨이지? 정말 맛있는 거지?"

큰아이가 신이 나서 껑충거리며 뛰듯이 말했고 "신난다!"라며 작은 아이도 덩달아 소리를 질렀다.

듣는 내 귀도 즐거웠고 어느새 내 입시울은 실룩거리고 있었다.


'하나님, 저 오늘 착한 일 했지요? 이런 날은 눈이라도 펑펑 내려주세요!'

하늘을 캄캄한 밤하늘을 쳐다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어두운 하늘에서 커다란 눈송이가 성글게 내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펑펑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행복한 크리스마스에 맞는 지금 이 순간 가장 반가운 눈이다.


나는 눈을 맞으며 우리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을 향해 노래를 부르며 빠르게 걸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들었다.

"얘들아 창밖 좀 내봐봐 눈이 와, 산타할아버지 선물인가 봐! 엄마 지금 가는 중이니까 밖으로 나와, 우리 눈 맞자!"


오늘따라 집이 더 멀리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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