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자음과 모음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유영민 작가의 <오즈의 의류수거함>이 바로 그 책이다.
평소 무심히 지나치던 의류수거함이었는데
소설을 읽은 후 일상 속에서 소재를 발견하는
작가의 눈에 감탄했다.
그러나 작중 인물들은 뭔가 생생하기보다 작가가 어떤 메세지를 전해주기 위해 취사 선택한 인물로 느껴진다. 특히 대화에서 그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호주가 낙원이라 생각하던 여고생은
의류수거함을 털면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교훈을 얻고 사회복지과로 진학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이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이
장광설을 늘어놓거나 폐지 줍는 할머니의 보일러를 고쳐주는 일부 장면 등에서는 교훈을 너무 강조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어떤 상처를 지닌 각계 계층(여고생, 자살기도자, 탈북자, 노숙자(사실은 구제역 파동의 아픔을 지닌 수의사) 사람들이모여 친목을 도모하면서 '나눔'이란 주제를 깨닫는 과정에서
작가의 뚝심도 느껴졌다.
다양한 등장인물이 나오는데도 의도적으로 갈등이 배제된 듯한 아쉬움도 들었지만
등단작에서부터 일상 속 평범한 소재인 의류수거함을 통해 빈부격차와 계급이라는 사회적인 문제를 작품 속에 녹여낸 작가의 노고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다음은 인상 깊었던 대목이다.
- 두번째 이야기 수거함
마녀s 수거함 중에서
“너 말이야, 요즘 공부는 제대로 하고 있는 거야? 밤에 의류수거함 터느냐고 잠도 못 잘 거 아냐.”
나는 토토의 앙증맞은 발을 만지작거리면서 건성으로 대답했다.
“뭐, 괜찮아요.”
“모평도 얼마 안 남았다며?”
“아, 몰라. 배째라고 해요.”
마녀님은 조금 뜸을 들였다가 느리게 말을 뱉어냈다.
“정말로 고등학교 졸업하면 호주로 갈 거야?”
“물론이죠. 내가 왜 지금 이 고생을 하는데.”
“왜 하필 호주지?”
“옛날에 호주의 교육제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어요. 다큐멘터리 중간에 푸른 바다에서 서핑 보드를 타는 호주 아이들의 모습이 미춰졌는데,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더라고요. 그 아이들이 행복하다는 걸. 그들에겐 행복이 일상적인 거고, 당연한 것이라는 걸. 그때 저곳이 낙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간이 사는 곳이면 낙원이란 없어. 낙원처럼 보일 뿐이지.”
“알아요. 그렇지만 적어도 그곳에는 남을 깔아뭉개야 살아남는 경쟁은 없겠죠. 한국에 계속 있다 보면 계속 경쟁에 시달려야 할 거예요. 대학에 가서는 학점 경쟁과 스펙 경쟁, 졸업해서는 입사 경쟁, 승진 경쟁.... 이젠 경쟁이라면 지긋지긋해요.”
마녀님은 잠시 지그시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만약 단순히 경쟁이 싫어서 이민 결심을 하고 있다면 그건 현실 도피가 아닐까?”
“도피라고요? 저는 능동적으로 제 행복을 찾아 떠나는 거예요.”
“시간은 많이 남아 있으니까 차분히 네 마음을 들여다보도록 해.”
내 꿈이 모욕당한 것 같아 나는 기분이 약간 상했다.
“그만 갈게요.”
가게 밖으로 나와보니 어느새 거리에 어스름이 깔려 있고 상점의 간판에는 불이 들어와 있었다. 손수레를 끌고 길을 가는 내내 마녀님이 한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도리질을 치며 마음 속으로 크게 외쳤다. 현실 도피라니, 말도 안 돼..
며칠 뒤 나는 낮 시간에 혼자 조용히 에메랄드 빌리지를 찾아가 보았다. 고급스런 외관은 그대로였지만 이번에는 그 속이 들여다보였다.
때 낀 방충망, 빨래 건조대에 널린 속옷과 양말, 마루에 깔려 있는 유아 매트……다른 지역의 평범한 주택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나는 거리에 우뚝 선 채로 의문에 빠져들었다.
‘어째서 예전과 다르게 보이는 걸까.’
어쩌면 색안경을 쓰기는 이곳 주민들도 마찬가지인지 모른다.
색안경을 쓰고 서로를 바라보며 시기하고 부러워하고 질투하다가 자신도 다른 이들과 비슷해지거나 더 우월해 보이기 위해 이미테이션으로나마 자신을 포장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