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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대 Mar 19. 2023

음복(飮福):
그가 제사를 도울 수  없었던 이유

강화길 작가님의 <음복>

 음복이 뭐지?


 음복(飮福)이란, 제사를 마친 후 술이나 음식 등을 나누어 먹는 것을 뜻한다. 음복을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복을 마신다.'는 뜻으로, '조상이 내리는 복을 받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출처: 한국인의 밥상

 근데 이상하다. 이 소설 속의 주인공들도 분명 음복 절차를 거쳤는데, 복은 오지 않고 오히려 소외와 부담만을 가져왔다.


 토마토 김치찜이 제사상에


 소설은 화자와 남편이 제사에 참석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복경>에 등장하는 제사상에는 이상한 요리가 하나 눈에 띄는데, 바로 '토마토 고기찜'이다. 

굳이 찾자면 이런 느낌의 요리려나 (출처: SBS 맛남의 광장)

 대충 '토마토 김치찜'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요리는 베트남 전쟁 참전 이후 입맛이 바뀐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요리 대신 택한 요리이다. 화자의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그저 맛있게 고기를 먹어치울 뿐이었다.


 걔는 아무것도 몰랐으면 좋겠어


 소설 속 '남편'은 아무것도 모른다. 토마토 고기찜이 제사상에 으레 올라가는 음식이 아닌 것도 모르고, 다른 등장인물의 진학에 대해서도 모른다. 소설의 말미에는, 할머니가 화자와 며느리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낸다.



  화자의 남편은 그 장문의 문자에 대해서도 모른다. 그 장문 속에 있는 제사 규칙과 집안을 위해 시행해야 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를 것이다. 장문의 마지막 문장이 충격의 종지부를 찍었다.


걔는 아무것도 몰랐으면 좋겠어, 아무것도


  남편은 모르고 싶었을까


  위에 언급된, 마지막 문장을 바라보았다. 검색을 통해 알아본 바, <음복>은 가부장적인 가정과 남성의 권력 독점 등의 남녀차등 문제를 비판한다고 한다. 작가의 인터뷰에도 그것이 드러나 있다. 그러나 나는 다른 시선으로도 이 작품을 분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읽는 눈은 다 다른 거고, 그렇기에 독서라는 게 재밌는 거니까.

강화길 작가님 (출처: 채널예스)
남편을 탓할 수 있을까


 과연 남편은 정말 모르고 싶었을까? 남편의 귀와 입을 닫게 한 것은, 오히려 가부장적이었던 옛 사회가 몸에 배어버린 할머니가 아니었을까? 남편은 처음부터 모든 집안일에 대한 개입을 할 수 없었다. '남자가 주방에 몸을 들이면 안된다.'는 구시대적인 발상에 갇힌, 일부 어른들에 의해서. 집안이 남편의 개입을, 남편의 앎을 막은 것이다. 그것이 편함이고, 그것이 자유라고 일러두면서 말이다.



 자유는 무지를 부를 수도 있다


 과거부터 남성이 집안일에서 빠진 것, 남성의 자유가 최우선이었던 그 과거에 묻혀있던 집안은 그 시절의 악습을 유지하며 현시대의 남성을 배제해버린 것이다. 소설에서 남편은 '정원이의 이야기'를 궁금해하지만,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알려주지 않는다.

<꽃보다 남자>에서, 재벌인 구준표는 멸치볶음을 처음 보고 '이건 무슨 벌레에요?'라는 반응을 보인다.

 남편도 집안일에 대해 알고 싶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집안은 그에게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은 채 그를 길러왔다. 집안의 우환이나 슬픔, 큰 문제들을 알지 못한 채로 그는 항상 누군가의 연기로 점철된 가정에 묻혔던 것이다. 그는 자유라는 이름 아래, 무지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이다. 다시 묻는다.


남편을 탓할 수 있을까

 자유는 상대적이다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이다, 저서 <자유론>에서 발췌. (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자유 속에 갇혀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 자유라는 이름조차 얻지 못한 사람이 많다고 해서, 본인만의 자유로부터 생겨나는 아픔을 무시하지 마라.


'어느 나라의 아이들은 매일 배를 곯고, 어느 나라의 아이들은 물을 길으러 천 리를 가야한다. 그러니까 나는 복 받은 거다. 그러니까 슬퍼하지 말아야한다.' -는 바보같은 생각은 갖다 버리라는 말이다.


 **자유는 상대적인 것이기에, 남들에게 비춰지는 본인의 자유는 객관적일 수 없다


남들은 나의 자유에 대해 어떠한 말도 할 수 없다. 

그러니까 본인들의 자유를 제대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자유가 정말 가벼운지 고민해볼 가치가 있다. 

만약, 그 자유가 무거워서 아프다면, 마음놓고 아파해도 된다. 

아니, 제발 마음 놓고 아파해달라.


***자유에 대한 위 문장들은 '존 스튜어트 밀'의 입장이 아닌, '작은대'의 독자적인 입장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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