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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대 Mar 24. 2023

고두(叩頭): 범죄자의 자기변호

임현 작가님의 고두를 읽으면서 해본, 범죄자에 대한 프로파일링

*아래부터는 소설 속 상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미성년자와의 관계로 인해 생긴 아들에게 본인의 과거를 고백하는 내용이다.


아니,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어, 그런데...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의 한 장면 [출처: SBS]

 텔레비전에서 종종 나오는 범인, 용의자들은 보통 억울함을 표현할 때 '그럴 생각이 없었다.'고 이야기 한다. 매번 그 광경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근데, 음, 그러니까 그런 눈으로 나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아버지와는 다른 인간이니까. 매번 뻑하면 국가유공자증을 들이밀면서, 그 지위로 상황을 벗어나는 그런 사람과는 본성부터가 다른 인간이란 말이다.


 왜 그렇게 묻냐고


 그러니까, 나는! 우연히 네 엄마인 연주가 일하는 식당에 들어갔고 종종 같이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어! 근데 너, 왜 그런 눈으로 나를 보는 거냐? 


 잤냐고?
 
그렇게 묻는다면 나도 그렇게 대답할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단다. 

 그래서, 잔 거냐고?
 
너는 왜 자꾸 그렇게만 묻는 것이냐?


 참고로 그의 말 중 일부는 거짓말일 것이다. '나'는 소문을 통해 연주가 일하는 식당을 알고 있었을 것이며, 다분히 의도적으로 연주가 일을 마치기만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후 그들은 모텔이 많은 거리를 걸으며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입을 맞추었다고 했다.


 또한 그는 자꾸 되묻는다. 왜 자꾸 잔 거라고만 묻느냐고. 

 어쩔 수 없었다고 일관하던 화자는 여기서 왜 그렇게만 묻느냐고 말한다.

 자신이 위선자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럴 목적이 아니었고......와 같은 변명을 모두 함축해놓은 표현이었다.

  

 화자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현재 처한 상황에 대한 판단을 하는 기준과 그 기준이 형성된 배경이나 이유가 이 한 문장으로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범죄자가 자신의 형을 완전하고 떳떳하게 부인할 때 사용하는 표현과 몹시 유사하다. 자신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자신이 이러한 환경에 처해서 그랬다는 같잖은 변명과 같은 표현이라는 것이다.


 연주는, 그러니까 네 엄마는


 네 엄마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고, 아무것도 모르는 여학생이며 되바라진 기색도 없었어.

월화드라마 '펀치'의 한 장면 [출처: SBS]

 이 문장은 거짓말이라기보다 '그의 착각'에 가깝다. 우선, 그에 대한 증거로는 연주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복한 가정인데 아르바이트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도 백화점 같은 고풍스런 일자리가 아닌 동태탕집에서 말이다. 또한, 유복한 가정의 자녀가 집에 가는 길 도중에, 모텔이 가득한 유흥가가 있다는 점에서도 의문을 제기할 만하다.


 그가 연주를 판단할 때 사용한 것은 그러한 진실이 아닌 자신의 선호였을 것이다. ‘이런 아이였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에 근거했을 것이다.


관점, 논리, 그리고 일화


 이 소설이 인상 깊은 부분은 수많은 관점과 논리, 일화를 내세워 본인을 변호하고자 하는 화자의 행태이다. 화자는 아버지의 예시, 다른 교직원들의 태도, 인간의 본질적 성질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부분만 골라 따와 서사를 진행시켜 나간다. 하지만 그런다고 한들 그의 행동이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화자 본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사람은 의외로 잘 선동된다

 그러나 그를 통해 화자 본인의 행동을 축소하고 조금이나마 감출 수 있다는 것도 화자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독자에게 화자는 물음을 던지고 독자와 화자를 동일시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도 본인과 독자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내세워 당신이었어도 똑같이 했을 것이라는 논리를 적용시킨다.


 소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고두>는 우리를 혼란시킨다. 화자의 주장에서 모순을 좀처럼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화자는 사과를 하긴 하지만, 논리적으로 완연한 것 같은 주장을 편다. 독자는 무뎌진 채로, 논리적인 것 같은 주장을 듣게 된다. 그러다 아차하는 사이에, 그의 주장에 동요하게 되는 것이다.


*소설의 제목은 <고두>. 머리를 조아린다, 머리를 땅에 박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제목만 보면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는 화자가 등장할 것 같다. 그러나 화자는 자기변호만 급급하다. 

 또한 화자는 초반부서 아버지처럼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남의 불행을 지나치는 이기적인 인간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하지만 결국 화자는 부끄러움을 방패로, 이타심을 방패로 엄청난 사건을 저지른 사람이 되어버리고 만다. 작가는 인간의 신념이 형성되는 과정과 그릇된 신념으로 인해 변하는 인간상을 그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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