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잔재미양 Oct 24. 2021

샌드위치 작업실

집에서 15분 정도 걸어가면 샌드위치 작업실이 있다. 한적한 장소를 찾아 흘러 흘러 걸어가다 보니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초록과 노랑이 대표색인 이곳은 앉아서 식사를 하는 이보다 포장이 많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안심하고 작업하는 편이다.  코로나라는 이변이 생긴 이후 기나 긴 눈치게임을 하던 차였다. 9시 반부터 12시 반까지. 아이 둘 등원을 마친 내게 주어진 시간이다. 샌드위치로 아점을 먹고 친구와 통화를 나누거나 한 장에서 두장, 많으면 세장의 그림을 완성한다. 잠들기 전 가방을 싸놓지 않으면 마이너스 15분, 전날 미룬 샤워를 마치면 20분, 양치를 하거나 얼굴에 선크림을 발라도 마이너스 5분, 마이너스 10분, 이렇게 나의 세 시간이 깎여 나간다. 원인 모를 등원 거부가 있는 날엔 1시간이 날아가기도 한다. 세 시간은 월급날의 통장잔고처럼 스치듯 지나가 버린다. 그걸 알기에 '작업실'에 도착하면 주문하자마자 먹고, 먹자마자 연필을 든다.


등원을 마치면 자동반사처럼 이곳으로 발을 옮긴다. 어떨 땐 중간에 볼일이 있음에도 까먹어버리고 그대로 들어와 주문을 한적도 있다. 습관이라는 건 무서운 것이다. 가끔가다 통화를 하다 말고 '15센티로 주세요.'라고 주문하면 수화기 너머 지인이 웃음을 터뜨린다. '또 거기야? 그러다 직원 되겠다.' 질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6개월간 150개의 샌드위치를 먹은 셈이니까. 이곳 특유의 냄새도 달갑지 않다. 맛있게 먹던 샌드위치도 조금씩 남긴다. 얼큰한 김치찌개나 구릿한 청국장이 저절로 떠오른다. 그래도 온다. 이제 이곳은 내 감정이나 취향과는 무관하게 나를 작업하게 만드는 곳이 되어버린 걸까.


 슬슬 다른 곳으로 작업실을 옮겨볼까 마음이 들썩이던 5개월 즈음, 주문한 샌드위치와 커피 옆에 손바닥만  쿠키올려져 있었다. 주문하지 않았다고 카운터에 말하자 점장님인듯한 분이 '서비스예요. 항상 여기서 작업하시나 봐요.'라며 웃었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직원들이 그림  그린다고 엄청 궁금해하더라고요.'라고 덧붙인다. 예상 못한 관심이었다. 항상 무언가를 바라보고 담는 입장이어서 정작 내가  대상이  거라곤 생각 못했다. 이웃 없는 광활한 SNS 계정에 좋아요 알람이 울린 듯했다. 작업 중간 잠시 쉬는 텀에 미지근한 커피와 쿠키를 함께 먹었다. 조금씩 베어 먹는 응원의 맛은 달콤했다.


달콤함의 여운으로 몇 달은 이곳으로 출근도장을 찍었다. 변심하지 않을 자신은 없었지만 쿠키의 응원이 떠올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문을 열었다. 그러다 탄수화물 섭취로 이루어진 아침이 건강에 좋지 않다고 판단, 그 옆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은 음료나 음식을 주문하지 않아도 되기에 잠깐 동안만 작업하고 점심 즈음 염원하던 얼큰하고 구릿한 점심을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기프티콘이 도착했다. 웬일인가 싶어 뒤늦게 확인하곤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다름 아닌 샌드위치 작업실 모바일 금액권! 이런 것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무심한 듯 보이지만 언제나 챙겨주는 마음 씀씀이에 작은 감동이 일었다. 게다가 나의 일거수일투족 중 일부를 누군가가 알아준다는 생각이 들자 혼자가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 친한 동료들은 다른 지역에 멀리 있어 작업으로 오는 외로움을 달래기 어려웠다. 여럿과 나누는 직업이 아닌 오롯하고 철저하게 혼자여야만 가능한 나의 작업. 마음을 누르고, 세상을 등지고, 곱씹고 배출하길 반복하던 나날이었다. 알지만 가끔은 마주앉아 작업하던 시절을 그리워할 수 밖에 없다.


청국장과 김치찌개로 체력을 보충한 일주일 후, 친구의 이용권을 들고 호기롭게 샌드위치 작업실 문을 연다. 주문을 마치고 앉자 친구의 톡이 도착해있다. Jessica Benko의 A Soulmate who wasn't meant to be. 잔잔한 기타음과 촉촉한 여성의 음이 귓가를 채우자 공간이 활기찬 신선 가게에서 낮은 무드등이 켜진 리스닝 바로 바뀐다. 음을 따라 손이 움직인다. 토도독 막혔던 글이 써진다. ‘샌드위치 작업실’이란 제목도 붙인다. 감정이 막혀도, 날이 궂어도 샌드위치 작업실에 오면, 내겐 좋은 일이 생기기에, 쿠키와 샌드위치라는 작은 응원을 먹으며 오늘도 쓰고, 그린다.




작가의 이전글 살림산과 바다파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