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림, 시해의 밤

칼날의 끝

by 조아

밤은 유난히 조용했다.


계림의 공기는 눅눅했고, 촛불은 바람이 없는데도 흔들렸다.


의종은 혼자 앉아 있었다.


왕이라 불렸던 자의 자리치고는 지나치게 좁고 낮은 방이었다.


유배는 끝났고, 복위는 없었다.


이 밤은
누군가의 결단을 기다리는 밤이었다.


멀리서 발소리가 들렸다.


한 사람.
두 사람.
셋.


의종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드이어 왔구나.”


그는 중얼거렸다.


문이 열렸다.


망설임은 없었다.

무신들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분노도, 흥분도 없었다.


오로지 정리해야 할 일이라는 태도만 있었다.



“전하.”


가장 앞에 선 자가 말했다.


그 호칭에는 존경이 없었다.


습관만 남아 있었다.


“이 밤을 넘기긴 어렵겠습니다.”


의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다.”


짧은 대답이었다.


칼이 뽑혔다.

금속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방 안을 가늘게 울렸다.


의종은 도망치지 않았다.

저항하지도 않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숨을 고르며 자신의 목을 스스로 곧게 세웠다.

칼이 다가왔다.


차가운 기운이 피부를 스쳤다.


그 순간—

시야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방이 겹쳐 보였다.

성벽이 보였다.


안개.
돌계단.
검은 입을 벌린 구덩이.

그리고 낯선 남자.

검은 코트를 입은.


의종의 심장이 한 박자 어긋났다.


‘이 장면은…’


그러나 생각은 이어지지 않았다.


칼이 닿았다.


짧고, 정확한 감각.


뜨거운 통증이 번졌다.


피가 터졌다.


촛불이 크게 흔들렸다.


무신의 눈이 순간 좁아졌다.

의종의 무릎이 꺾였다.

바닥이 가까워졌다.


그는 쓰러지며 생각했다.


‘왕은 여기까지다.’


바닥이 이마에 닿았다.


피가 흘렀다.


숨이 얕아졌다.


방 안의 소리가 멀어졌다.

누군가가 말했다.


“끝났다.”


다른 목소리가 대답했다.


“확인하라.”


잠시 정적.

그리고 짧은 대답.


“죽었다.”


의종은 그 말을 들었다.


완전히 끊어지지 않은 의식 속에서.

어둠이 밀려왔다.

촛불이 흐려졌다.


시야 끝에 다시 한 번
돌계단이 스쳤다.

구덩이의 입구.


그러나 이번에는
그곳으로 이동하지 않았다.

그저 겹쳐 보였을 뿐이었다.


시간이 잠시 늘어졌다가
다시 좁아졌다.

피의 냄새가 진해졌다.


그리고—

완전한 어둠.


그 밤, 진주에서는 왕이 죽었다.


기록은 다음 날 완성되었다.


“진주에서 시해되었다.”


문장은 단정했고 이의는 없었다.


그러나 방 안에는


아직 식지 않은 온기가 남아 있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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