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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치아 May 20. 2021

가족의 죽음이 성큼 다가왔을 때

심장 개복 수술에 중환자실 비용까지 몇천만 원아니, 억대!?

내가 기억하는 첫 죽음은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이다.


내가 초2 때, 87년도엔 아직도 집에서 장례를 치렀다.

마당에 천막을 치고,

안방에선 외할아버지의 시체를 외삼촌들이 염하고,

엄마와 이모들은 외할머니를 돌보고, 음식을 나르고, 손님을 치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죽음은 일종의 잔치 같았고,

 마을 사람들과 음식을 나눠먹으며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술을 마시며 죽음을 즐기는 것 같아 보이기까지 했다.

외할아버지를 다시 보지 못한다는 생각에 슬펐지만, 죽음이 나빠 보이진 않았다.


두 번째 죽음은 집에서 키우던 개가 차에 치여 안락사를 시켜야 했을 때이다.

외할아버지 돌아가실 땐 눈물이 안 났지만,

'돌돌이'의 죽음에 난 개처럼 기어 다니며 울부짖고 일주일 간을 앓아누울 정도로 힘들어했다.

아마 돌돌이의 고통을 지켜봤기 때문이고,

그 죽음은 빨리 잊어야 하는 나쁜 사건으로만 치부되었기 때문이어서 더 괴로웠던 듯하다.


그리고 내가 나이 들수록 마주하는 죽음은 다양하고 더 안타까워졌지만

 난 흔들렸다가도 금세 마음을 추스르게 되었다.

고등학교 동기의 자살로 인한 흉상,

 외삼촌들의 재산 싸움 속에서 홀로 요양원에서 돌아가셔야 했던 외할머니,

친구 오빠의 사고사,

지인들의 가족장, 등등

하지만 대부분 내가 책임지고 치러야 하는 장례식이 없었기에 한걸음 떨어져 죽음을 그저 관망했었지만

이제 맏며느리로서 시아버지의 장례식을 준비해야 할 때가 다가오니 더럭 겁이 나고, 혼란스럽고, 어떻게 해야 하나 몸도 마음도 바쁘다.


시아버지께서 한 두어 달 전부터 숨이 자꾸 가쁘다고 하시고 잠도 설치시고 식사도 거르시더니

며칠 전 아침 숨이 안 쉬어져서 신랑을 불러 동네 병원에 가니까

바로 대학병원 가라 해서 입원 수속 밟고

심장 스텐트 시술을 담당해오시던 교수님께 스텐트를 하나 더 넣을 수 있는지 검사를 받았는데

(시아버진 이미 몇 년 전부터 심장 스텐트 시술이라고 혈관 확장해주는 스프링을 끼고 있었다. 한 시간가량의 수술 후 하루 입원 정도 하면 퇴원하는 '수술'이 아닌 간단한 '시술'이다.)

혈전이 자꾸 엉겨 붙어 스텐트 시술은 실패하고 응급 수술로 개복 수술을 받았다.


8시간 수술하는 동안 혹시나 보호자 부를 일이 있을까 봐 시어머니도 대기실에서 힘들게 자릴 지켰고,

신랑은 대기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요즘 대학병원은 코로나 확산이 될까 봐 코로나 검사를 받은 보호자 한 명만 건물에 입장시킨다.)

차 속에서 기다리며 새벽까지 병원 근처에 있다가 수술 후 어머님 모시고 집에 오는데

어머님이 "느이 아부지 제삿날 잊지 말라고 부처님 오신날 돌아가시려나보다..."하고 힘없이 중얼거릴 만큼 위독하셨다.


하지만 다음날 면회 때 뵈니  '에크모'란 기계에 의존해 연명치료 중이긴 하지만, 수면제를 끊고 대화를 해보려니, 고통 때문에 수면제를 다시 넣어달라는 식으로 의사표현을 하실 만큼 의식이 또렷하셔서 희망을 가졌다.

그날 저녁 시댁 삼 남매가 모두 모여 홍삼 스틱 나눠먹으며 힘내자고, 장기전을 준비했더랬다.


그러나 그다음 날은 시아버지는 코마 상태에 빠졌고,

수술을 집도했던 흉부외과 의사는 시어머니와 남편을 불러

"산 사람은 살아야지 않겠냐"라고 이식 수술 포기를 암시했다.

시어머니와 남편, 시동생, 시누 모두 기운이 쏙 빠져 마음의 준비를 할 때


또 다음날 면회엔 담당의가 심장외과로 바뀌어 뇌기능도 살아있고, 의식이 돌아올 때도 있으니 충분히 심장 이식 수술이 가능하니 대상자 명단에 올려놓으라 했다.

심장 이식을 받기 위해선 혈액형만 맞아야 하는 게 아니라, 조직, 체형 등등이 맞아야 하므로 조직검사를 해야 하는데,

그 와중에 시아버지의 신장 기능이 저하돼서 몸에 구멍을 하나 더 뚫어야 했다.


이 난리 중에 시아버지의 살아계신 형제분들은

"왜 심장 수술을 이렇게 늦게 했냐"

"하는 데까진 해봐야 한다."

라며 가뜩이나 힘든 시어머니와 남편을 꾸짖고, 죄인으로 치부해서 더 힘들게 만들었다.


지금도 시아버지는  심장 기증자를 기다리며 중환자실에서

팔다리가 묶인 채

목에는 삽관해서 말도 못 하고

수면제와 진통제를 함께 맞아서 의식을 잃은 채로,

그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수술의 고통이 느껴지는지 가끔 몸부림을 치고 신음하고 울부짖기도 하시며

기저귀를 차고

배에 뚫은 구멍으로 변을 빼내고 있다.


연명치료를 어디까지 해야 옳은 건지 나로선 판단하기 힘들다.

시아버지가 건강히 살아 돌아오시길 바라는 사람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맞는 심장이 시아버지께 온다 하더라도

그 아픈 수술을 70에 가까운 시아버지가 또 견뎌낼 체력이 있으신지

심장 이식 수술이 성공한다 해서 오랜 재활을 거치면 걸으실 수는 있을는지

그 병시중을 하는 70에 가까운 시어머니께선 또 얼마나 버티실 수 있을는지


죽음 앞에서는 이렇게나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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