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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 Jul 12. 2023

[브랜딩log] 영혼의 설계자요..?

fleeting notes

<영혼의 설계자>(2023), 그레그 호프먼


..?


일본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이 책, 영혼의 설계자를 읽었다. 무려 나이키의 글로벌 CMO(Chief Marketing Officer)가 쓴 것으로, 나이키 창립자 필 나이트가 쓴 자서전 <슈독>(2016)을 제외하고 나이키 내부자가 쓴 첫 책으로 알려져 있다. 요란한 추천사들이 어쩐지 의심스러워 보였지만 이번에 처음 참석하는 브랜딩 스터디(?)에서 독후감을 내라고 한 책인지라 속는 셈 치고 읽었다.


빠르게 한 줄 요약하자면 읽는 것이 고역이었다. 저자 그레그 호프먼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인물이지만 분명 대단히 겸손한 태도를 가진 사람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자신을 높이는 데 그다지 큰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거나, 혹은 그런 방법에 대단히 서투른 사람일 테니 말이다.


보통 이런 브랜딩, 마케팅에 관한 책들은 저자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밑바닥에서 길어올린 자신만의 특별한 노하우나 통찰이 담겨있기 마련인데, 이 책에는 그런 '탁' 하는 포인트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어떤 깨달음이 아니라 '역시 나이키, 역시 대단한 회사군!' 하는 인상만 남는다. 저자는 분명 오랜 회사 생활로 인해 자신보다 회사를 앞에 세우는 애티튜드가 몸에 배인 사람임에 틀림 없다.(사실 그러지 않고선 C레벨로 올라갈 수 없다)


찾아보니 저자는 나이키 퇴사 후 '나이키 CMO 출신'이라는 간판을 내세워 많은 기업들에 조언을 하고(돈을 벌고) 있는 듯 하다. 일종의 컨설턴트이자 인플루언서, 그루(Guru)로 활동하고 있는 셈. 하지만 이 책으로 보건 데 호프먼은 작가로서 글을 써본 경험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독자들이 모든 종류의 글을 함부로, 그리고 심드렁하게 읽는다는 것은 작가들 세계에서는 주지의 사실. 이 때문에 많은 작가들이 하루 종일 독자들이 조금이라도 더 내 글을 읽도록, 뒷문장으로 더 끌어들일 궁리를 하는 것인데, 이 책에서는 그런 노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저기.. 나 나이키 C레벨인데?" 하는 다소 느슨하고 안일한 태도만 느껴진달까.


저자가 강조하는 혁신과 상상력, 디테일, 정체성..등등은 물론 100% 맞는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누우면 졸리다', '밥을 안 먹으면 배가 고프다'라는 얘기 같달까?


예컨대 '좋은 사람이 되는 법'에 대해 말할 때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 화술, 긍정적인 태도 따위를 이야기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다. 만약 '나이키'를 지우고 이 책을 읽었다면 조금이나마 생긴 감흥마저 모두 없어졌을 테다. '이 사람이 없었다면 정말 나이키가 지금의 나이키가 되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는 점에서 요즘 서점가에 많이 보이는 '네카라쿠배 개발자가 쓴...', '네카라쿠배 기획자가 알려주는...' 책 같다는 느낌도 든다. 브랜딩 전문가의 실전 노하우가 담긴 책이라기보다는, 대기업 임원이 수십년 회사 생활 동안 겪은 일들을 늘어놓는 에세이 정도로 읽는 것이 맞는 듯 하다.


굳이 의미를 찾자면 '스토리'의 중요성에 대한 환기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스토리, 내러티브는 브랜드 업계의 화두다. 이 책 첫 머리에 실린 추천사를 쓴 홍성태 교수(대학 시절 은사이시다)는 인지심리학을 토대로 마케팅 전략, 브랜딩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학자다. 그에 따르면 브랜딩은 곧 '소비자들의 기억(인상)', '소비자들이 떠올리는 스토리'의 다른 말이며, 이 책의 저자 역시 "나이키는 상품이 아닌 스토리를 판매하는 기업"이라고 강조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브랜딩 전략은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탁월한 인내심 없이는 페이지를 넘기기 어렵고, 이런 경험은 절대 긍정적으로 기억될 수 없기 때문이다.



+) 다시 생각해보니 '영혼의 설계자'라는 제목이 기대감을 키우는 바람에 부정적인 시선이 더 커진 것 같기도 하다.


관련문서(브런치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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