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브랜딩 관련 독서모임에서도 느꼈지만 브랜드를 만들려는 사람으로서 나는 꽤나 운이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를 경영 컨설턴트로 소개한 한 참가자분은 추후 계획 중인 자기 사업 론칭에 있어 가장 큰 고민이자 문제가 브랜드의 이름을 어떻게 지을 지라고 토로했다. 그에 반해 나는 yoorak, 有落이라는 이름이 정해진 상태에서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니, 적어도 몇 단계는 건너뛰고 시작하는 셈이다.
물론 이름만 만들었다고 끝은 아니다. 머리 속에 부유하는 생각과 느낌을 활자로 바꾸는 작업들은 여전한 과제다. 'B.I.S.' 플러스엑스에 따르면 B.I.S(브랜드 아이덴티티 시스템)는 내/외부 브랜드 리서치를 토대로 브랜드의 이름부터 비젼, 미션, 데피니션, 에센스, 코어밸류까지, 필요하다면 태그라인, 슬로건, 매니페스토까지 정교하게 만드는 과정을 말한다.
플러스엑스의 프로세스를 찬찬히 따라가며 내가 브랜드 전략가가 되어 클라이언트인 나를 브랜딩한다고 상상해봤다. 각각의 필요성이 확 와닿는 느낌이었다. 아기들 옹알이처럼 모호하고 뭉툭했던 개념들이 각각의 단계를 거치며 더 뾰족하고 날렵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미션이니 비전이니 각각의 차이를 아직 명확하게 설명하긴 어렵지만, 지금의 나에게 브랜드의 본질을 꿰뚫는 최소한의 버벌 자산, 활자화된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3일차
'recreate everything.'
이런 고민 끝에 튀어나온 키워드가 바로 재생산recreate 이다. 아직 더 구체화까진 못했지만 만약 디벨롭한다면 브랜드 에센스나 브랜드 슬로건 쪽으로 사용될 수 있을 테다.
공교롭게도 할아버지의 이름인 有落의 우리말 뜻은 '떨어짐이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이 말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좌절과 방황을 거듭하고 있는, 밑바닥에서 허우적대는 듯한 지금의 내 처지와 딱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브랜드 yoorak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더 사회에 남겨보려는 프로젝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라는 개인에 있어 새로운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에게는 내가 태어난 해 할아버지가 직접 지은 낡고 오래된 건물을, 할아버지를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분위기로 업사이클링하고, 할아버지의 이름을 딴 yoorak이라는 브랜드를 만드려는 것 모두 recreate의 일환처럼 느껴진다.
아마 나만 겪은 일은 아닐 것이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 바닥은 있으니. 'recreate everything.', 'recreate yourself.' 슬로건에 가까운 이 문장들은 유저들을 향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이기도 하다. 버려지고 잊혀지는 모든 것들에 숨을 불어넣는,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그런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