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할머니,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제사를 오늘, 그러니까 매년 8월1일 한꺼번에 몰아서 치르기로 했다. 여기에는 "요즘엔 다들 그렇게 하더라"는 명분과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뿔뿔이 갈라진 가족 형편상여력이 없다는실질이 반씩섞여있다.
아무튼 오늘 제사를 준비하며 할아버지에 대한 새로운 일화를 듣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승진과 관련된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지금은 없어진 보통고시를 합격해 지금은 없어진 전매청(지금의 KT&G) 공무원으로 오랫동안 일하셨는데, 내가 기억이 있을 무렵엔 이미 은퇴를 하신 지 오래였다. 명절 때 과일 상자를 들고 찾아오는 어른들을 보며 막연히 '옛날에 높은 사람이었나보다' 하고 추측만 했을 따름이다.
할아버지가 터전이었던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갔던 까닭은 내부고발 때문이었다.
전매청은 담배와 홍삼의 판매를 국가가 독점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수한 기관. 할아버지가 있었던 70~80년대만 해도 양담배는커녕 그냥 담배도 쉽게 사거나 팔 수 없었다. 즉, 담배 허가는 곧 돈이었다.
그런 까닭에 당시 전매청은 "옛날부터 쭉 그래왔다"라는 미명 아래 수많은 비리와 검은 돈, 이권 다툼이 소용돌이치는 복마전이었다. "다들 그러는데 너만 깨끗한 척 하지 말고 빨리 받아" 하는말이 일상화된.
이런 상황에서 할아버지가 대구 지역 관리 담당자로 발령이 나며 이런 검은 관행이 종지부를 찍게 된다. 대쪽 같은 성격의 할아버지가 장부를 조작하고 허가를 빌미로뇌물을 받아온 공무원들을 경찰에고발했던 것이다.
경찰 수사가 진행되며 발각된 전매청 비리 공무원은 총 115명. 그렇게 이 사건은 1980년 12월27일 모든 신문 1면 톱기사로 대서특필된다. 고위 간부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전매청장이 옷을 벗게 된 초대형 사건이었다.
당시 동아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1면
이런 공(?)을 인정받아 할아버지는 1계급 특진 및 전매청 비상계획관(2급 공무원)으로깜짝 발탁되며 서울로 발령이 났던 것이다. 뒤이어 들은 얘기로는 전두환이 대통령에 오르면서 할아버지는 기존 청장 쪽 인물로 분류돼 도로 1계급 강등당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나는 부끄러울 것이 없다"며 서장으로 꿋꿋이 임기를 마치셨다고 한다.
시대 분위기가 지금 같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그런데 하물며. 그때의 내부고발이란 아무리 자기 신념이 있다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테다. 그럼에도 할아버지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따금 할아버지는 "단 한 푼, 남의 돈 받은 적 없다"며 호탕하게 웃으시곤 했다.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틀린 것은 틀린 것이다. 지금도 가능하면 지키고 있는, 할아버지께 배운삶의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