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만큼 쉬우면서 어려운 것이 또 있을까? 고성능 스마트폰으로 누구나 손쉽게 그럴듯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된 시대이지만 전문 포토그래퍼에 대한 수요가 여전한 걸 보면 '홍수에 마실 물이 없다'는 아포리즘은 이쪽 업계에도 적용되는 듯 하다.
신문사 입사 동기 중 사진 기자가 있었던 터라 사진이 얼마나 전문 영역인지 어깨 너머로 알고 있다. 사진 기자들은 지면에 들어갈 사진 한 장을 위해 몇 날 며칠을 돌아다니기도, 몇 시간을 한 곳에서 잠복하기도 했다. 사진에 어떤 사회적 맥락, '의미'나 '가치'를 부여하는 작업은 그저 아무렇게 셔터만 누른다고 되는 일이 결코 아니었다.
day 19
사진에 가치를 담아내는, 브랜딩 도구로서 포토그래피는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이뤄진다. 브랜드의 가치와 철학을 전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브랜드 커뮤니케이션과 브랜드가 제공하는 콘텐츠들에 아이덴티티를 적절히 녹이는 콘텐츠 커뮤니케이션이 그것이다. 예술로 따지자면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이 작가주의적인 스타일, 콘텐츠 커뮤니케이션은 상업주의 스타일 같기도 하다.
왼쪽은 하라켄야 무인양품 포스터 지평선시리즈. 이런 게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포토그래피다. 오른쪽은 콘텐츠 포토그래피.
제품을 렌즈에 담을 때는 다음의 6가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1) 톤 2) 조도 3) 대조 4) 앵글 5) 무드 6) 스타일링.
기능적 편익 강조, 일관성 전달 등 '목적', '전략'에 따라 각각의 방향성을 미리 정한 뒤 촬영에 들어간다. 가령 자연스러움이 중요하다면 대조Contrast를 낮추고, 컨셉츄얼한 느낌을 주고 싶다면 높이는 것이다. 프로덕트 제형의 '쫀쫀함'(강의에서 나온 표현이다), 입체감을 강조하려면 아무래도 정면 앵글보다 사선 앵글로 찍는 것이 낫다.
이런 세밀한 디테일들은 결국 큰 방향성에서 결정되는 것이고, 큰 방향성은 B.I.S(Brand Identity System)에서 나온다. 예를 들어 요리 플랫폼 <아카이빗>의 포토그래피 작업의 큰 방향성인 1) Cooking Moments와 2) Togetherness라는 키워드는 브랜드 에센스 'Togetherness of the Senses.'에서 착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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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활자와 가장 거리가 먼 사진마저 BIS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인데, 초기 단계에서 BIS를 잘 만들어 놓아야 사진이든 그래픽이든 아이디어의 방향성과 단서를 얻을 수 있는 셈이다. 활자로 구현된 아이덴티티에서 브랜드의 모든 것이 뻗어나온다는 사실이 새삼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