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편' - 회사(=사업주, 경영자)의 생리와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
요즘 우리 사회, 특히 회사에는 개인의 자율과 책임을 강조하고, 창의적 사고와 개인의 행복한 삶에 대한 바람이 아주 강하게 불고 있습니다. 기본 취지는 절대 나쁘지 않습니다. 다소 강압적이고 경직되어 있으며, 제품 생산과 수출을 중심으로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나라 기업들의 문화는 세계적인 추세와 개인들의 특성을 고려하여 당연히 개선이 필요한 부분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개선하는 방식이 아직은 서툴고,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서툴어 오히려 이전 보다 더안좋은 사회 분위기가 될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대부분 새롭게 적용하는 시스템이나 제도들이 경제적 수치나 복지 수준 등의 부분에서 우리나라보다 앞선 나라들로부터 배우고 그 방식을 거의 그대로 이전해 오기 때문입니다. 그 시스템이나 제도의 틀 안에서 움직이고, 그것들을 활용하는 사람은 한국인인데 기본 생김새 외에도 생활 방식, 풍습이나 가치관 그리고 성향이 상이한 서양 – 특히 미국 - 의 것이 대부분인 것이 가장 큰 문제인 듯합니다.
한국사회에서 나이를 잊는 것은 현실성이 낮습니다.
요즘 많은 회사들이 상하관계로 인해 발생하는 직원들 간의 소통 불화를 해소하고 수평적인 관계와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호칭을 없애거나 계층을 축소하고 있는데, 상당 부분 현실성이 없는 제도로 보입니다.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라는 타이틀을 떠나서라도, 표면적인 상하의 계급이 아니더라도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자연스럽게 구분되어 존댓말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인데 - 윗사람의 아랫사람에 대한 하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를 동일한 계층으로 인식하고 상호 존댓말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자연스럽게 이 제도가 운영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루아침에 회사 CEO께 ~~씨나 ~~님으로 통일해서 부를 수 있을까요? 누가 봐도 정말 형식적인 것입니다. 또한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 상호 존댓말을 쓴다면 진정 CEO는 직원들 모두에게 존댓말을 한다고요? 어림없는 소리입니다.
회사가 애초부터 그렇게 만들어졌고 그런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면 상황은 좀 다르겠지만, 한국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회사라면 기존의 직원들이 그러한 회사의 요구를 수용하고 따르는 데는 큰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우리나라는 기득권 또는 승진에 따른 계급 상승에 대한 욕망과 자부심이 분명히 있을텐데, 한날한시에 모두를 한 계층으로 묶어버린다든지, 몇 개의 계층을 묶어 간략화하면 이미 상당히 높은 계층에 위치한 사람들의 마음은 허해질 것이고 업무 수행 관계에서도 삐그덕거릴 확률이 매우 높을 것입니다.
회사는 미국식으로, 직원은 한국식으로 따로 가니 잘 안되는 것입니다.
평가제도에 있어서는, 과거 연차가 지나면 자연스럽게 급여도 오르고 승진도 하고, 공식적인 승진 시기에 대상자들을 별도로 심사해서 승진시키는 제도에서, 언젠가부터는 개인별로 연초에 목표를 세우고 연말이 되면 그것들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모두 소중한 직원들이지만 그 해에 담당한 업무에 대해 이룬 성과를 기반으로 차별적으로 보상하고, 이를 통해 직원들 간의 경쟁을 유도해서 회사의 더 좋은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가 평가임은 두말할 것이 없을 것이지만, 이것 역시 우리는 한국 사람이기에 한국 문화에 맞게끔 고쳐서 운영이 되어야 하는데, 있는 그대로 가져다 쓰는게 문제입니다.
평가는 연말에 한 성과물들에 대한 평가보다 연초에 목표를 수립해서 평가자와 합의하는 과정이 더 중요한데 이와 반대로 연초에는 대충대충하고 연말에 모두가 긴장하고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개인의 목표는 개인이 수립하는 것이 아니고 그 직원이 속한 조직이 새운 목표를 할당해서 맡게 되고, 그 목표수치도 터무니없이 높게 설정되고 할당되어 그 업무를 맡은 직원은 애초부터 평가결과가 안좋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애초에 합의라는 것은 없고 말입니다. 또한 성과를 측정하는 기준은 정량적이기보다는 정성적인 것들이 상당하고, 직원들은 연초부터 맡은 업무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연중에 수시로 발생하는 각종 일들에 시킴을 당해 당초 목표에 없던 일들을 상당히 많이 수행하게 됩니다. 일은 열심히 잘하고도 평가하는 항목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개인이 세운 목표도 아니고, 정량적인 측정지표도 아니고, 목표 외의 일들을 수시로 시켜서 하도록 하니 결국 연말의 평가는 상사의 마음속에서 다 정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한국 내 외국계기업은 연초에 목표를 세울 때에 상사나 직원이 각자가 생각하는 바를 작성하고 이에 대한 근거들을 기반으로 협의해서 합의 한대로 1년을 운영한다고 합니다. 물론 연중에 추가로 부여되는 다른 일은 없고, 만약 생긴다면 연초에 세운 목표들에 변화를 주기도 합니다. 외국계기업처럼만 해도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위아래를 막론하고, 쉽게 변화를 추구하는데 익숙하기 때문에 목표는 수도 없이 계속 바뀌게 되어 더 정신이 없을 것입니다. 또한 한국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본인보다 상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시키면 그것을 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어차피 그 사람도 누군가가 주는 급여를 받는 것인데 마치 그 사람이 내 직장생활의 숨통을 쥐고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말입니다.
평가는 하되 좀 더 간소화해야 하고,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평가등급을 타이트하게 관리해서 잘 받은 사람이나 못 받은 사람이나 모두가 불만을 갖도록 하지 말아야 합 니다. 평가를 할 때에, 우리나라 사람의 특성상 대놓고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조목조목 따져서 얘기하는데 익숙하지 않고, 반대로 자신이 한 일들을 대놓고 자랑하거나 포장하는데 익숙하지 않고, 객관성이 충분한 평가결과를 만드는 평가자와 그것을 100% 수용하는 피평가자의 자세도 부족합니다. 제도라도 객관적이어야 하는데 그것마저도 정성적인 요소가 상당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평가자와 피평가자가 있기에는 어려운 환경입니다. 이런 상황에 최근에는 다면평가, 360도 평가 등의 제목으로 상사가 아닌 주변 동료들이 동료를 평가하기도 합니다. 평가자의 자질이 없는 사람들이 평가를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 결과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되도록 좋지 않게 평가하기도 하기 때문에 결코 회사가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평가제도의 효과를 얻기는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