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이 어딘가
대학 진학 후 바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n년. 졸업 후에도 취업은커녕 알바 자리만 전전하는 내게 부모님은 어디든 이력서를 넣어보라고 우려 섞인 채근을 하셨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게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고 싶은 건 이력서를 써서 되는 게 아니었다.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전공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무언가가 무언지를 모른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글을 쓰는 건 돈이 안 되고, 하고 싶지 않은 걸 하고 싶진 않다며 스스로를 파악하면서 자기 합리화를 했다.
흔하디 흔한 20대 취준생. 시간은 흘러가고, 허송세월하는 기분. 주변 친구들은 모두 안정적인 직장에서 한 자리 잡고 살아가는데 나는 지금까지 아르바이트만 하면서 꿈도, 직업도 갖지 못했다는 생각에 휩싸였다. 여전히 흔하디 흔한 생각들에 고통받고 있을 때쯤 찾아낸 곳이 북어위크다. 집 앞에 생긴 자그마한 카페에 얼굴 도장을 찍으며 사장님들과 친밀감 올리기. 게임 <동물의 숲> 같은 북어 마을이 결성되는 순간이었다. 맛있는 거 주고받고, 좋은 말 한마디 주고받을 수 있는 곳. 마음이 통하는 곳.
얼떨결에 오래 하게 된 카페 알바를 북어위크에서 이어갔다. 다만 이번엔 다른 마음가짐으로. 이전까진 하지 못한 경험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속한 이곳이 꼭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 노력하는 사람들이 꼭 행운까지 얻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다. 진지한 마음으로 카페 근무에 임하기 시작했다. 북어위크에서 나는 단순히 아르바이트만 하는 게 아니었다.
알바생이 아닌 스태프라고 불리는, 알바와 직장 사이를 오간다. 버는 돈과 별개로 쏟아붓는 마음이 적진 않다. 돌려받는 애정까지 결코 적지 않다. 가족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할 마음으로 나는 일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이지 그게 뭐가 중요할까. 중요한 건 내가 진심으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속도란 건 실은 그렇게 목숨 걸만한 요소가 아니라는 걸 가끔은 잊고 산다. 천천히 내게 맞는 옷을 찾아가면 된다.
북어위크에서 처음으로 글을 한번 써보라는 말을 들었다. 다들 말했다.
”한 번 써봐!”
“쓰고 싶으면 쓰면 되지”
입을 모아 컴활, 토익, 프로그래밍, 자격증을 운운하던 세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섬에 도착한 것만 같았다. 새로운 파도가 들이닥친 기분이었다.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처음이어서, 내심 충격까지 받았다. 그런 사람들과 일할 수 있어 기쁘기까지 했다.
그래서 쓴다. 하고 싶은 것과 애정을 쏟는 공간을 합쳐서 나는 쓴다. 북어위크에서의 커피일지를. 천천히 제자리를 찾아가는 기분이다. 뭐가 되지 않아도 꼭 쓰고 싶은 것들이, 쓸 법한 것들이 있어서 쓰기로 했다. 알바와 직장 사이,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괜찮다.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