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들판, 그곳을 지나던 한 사람은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꽃잎도 숨죽인 들판을 지나는 사람
덧없이 무너진 계절의 기대는 관람
햇살은 물러가고 빗물 가득한 범람
어디 떠나려던 마음조차 막힌 유람
움츠러든 새싹은 놀란듯 멈춘 놀람
지나온 날들 펼쳐보는 쓸쓸한 일람
비바람 견뎌내며 조용히 쑥쑥 자람
봄인데 봄이아닌 하루를 삼킨 바람
봄날의 들판, 그곳을 지나던 한 사람은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봄꽃이 피어야 할 때인데도 들판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흙냄새 사이로 바람만 세차게 불어댔다. 매해 기다리던 계절의 관람을 기대했지만, 계속되는 비와 흐린 하늘은 그 기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가볍게 흘러가야 할 시간은 멈춘 듯했고, 그 자리를 대신한 건 조용한 범람이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던 마음도, 이런 날씨에 막혀버려 그저 눈길만 멀리 보내는 유람이 되고 말았다.
들판에 자라던 새싹들도 변덕스러운 날씨에 놀람을 느낀 듯 움츠러들었다. 지나온 시간들을 떠올려 보니, 전부 지나가버린 계절의 일람 같았다. 그래도 작은 들꽃들은 묵묵히 그 자리에서 조용히 자람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풍경 위로 불어오는 건, 따뜻해야 할 봄의 숨결이 아니라, 차갑고 거센 바람이었다. 봄인데도 봄 같지 않은, 이름만 봄인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