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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다짐

분위기에 휩쓸려서라도 희망하는 사람이 될 수 있어서.

by 마음이 동하다
당무유용(當無有用), 진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들지만 그릇은 그 속이 ‘비어있음’(無) 으로 해서 그릇으로서의 쓰임이 생깁니다.
_신영복《처음처럼》(돌베개)


2024년도 마지막 일요일이었다. 연말이면 아내는 집 정리로 분주하다. 버릴 것은 과감히 버려야 다른 무언가로 채워진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려주며, 1년 동안 사용하지 않은 것들은 미련 없이 버리라고 얘기한다. 지난 1년간 각자의 서랍을 꺼내어 정리하는 시간을 가진다. 집에서 서랍 공간을 소유하지 않은 나는 애꿎은 책장 속에 꽂힌 책들을 만져보며 읽지 않을 책들을 정리해본다. 그러다 책장 가장 아래에 꽂힌 채 15년을 잠든 노트 한 권을 발견했다. 결혼 전 구매해서 내 생각과 다짐을 적었던 ‘꿈 너머 꿈 노트’라는 책이다.



2009년에 썼던 꿈 너머 꿈 노트 중


예전이나 지금이나 하고 싶은 게 참 많았던 모양이다. 30대 초반에 쓰다만 글을 읽는데 어찌나 낯간지러운지 모른다. 적힌 날짜를 보니 결혼 날짜(이듬해 1월)를 잡아 놓고, 결혼 준비로 분주해질 무렵인 듯 보인다. 그 분주함 속에서도 혼자 생각하고, 혼자 다짐하고, 혼자 ‘꿈’이라는 글자를 동경했나 보다. 웃기다. 그 상황이 웃기고, 지금 이 글을 읽는 내가 웃기다. 기록이 기억을 이긴다는 말을 여과 없이 보이는 흔적이다.


연말이 좋은 이유는 분위기에 휩쓸려서라도 희망하는 사람이 될 수 있어서.
_김신지《제철 행복》(인플루엔셜)


연말이 되면 또 어김없이 새해 계획을 세우며 설레는 시간을 보낸다. 지금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게 무엇이고, 할 수 있을게 무엇이며, 해야 하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젊은 시절만큼의 거창한 꿈은 아니지만, 어떤 일이든 흐르는 게 아니고 쌓이는 것이라는 것을 삶의 경험에서 배웠다. 수많은 책에서는 당장 실천하고, 바로 실행하라고 알려주고, 그게 정답이더라는 것도 경험을 통해서 알지만, 연말의 분위기에서 하루 이틀을 유예하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으며 애써 나와 타협한다.


더 많이 책 읽기, 핸드폰과 멀리하기, 명언 필사, 글쓰기, 새벽 등산, 집에서 운동, 저녁 산책, 24절기와 관련된 일상 관찰, 술 끊기(에서 줄이기) 등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아이들에게 선언하고 나면 아내는 또 ‘병이다. 병’이라며 웃음 섞인 핀잔을 준다. 대부분이 1년 내내 다짐하고 실행하며 실패하기를 반복했던 것이기에 그리 놀랍지도 않다.


새해가 시작되었다. ‘초심’이라는 단어와 ‘작심삼일’이라는 단어가 공존하는 한 주가 시작될지 모른다. 첫날의 다짐,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결국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 갈 수밖에 없음을 안다. 하지만 완벽을 목표로 삼아 부족한 것을 모두 채우려 하면 불안과 초조가 배웅 나올지 모르기에 조금은 틈을 주고 비움으로 더 좋은 것을 채우는 여유를 잊지 말아야겠다.


세모에 지난 한 해 동안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것은 삶의 지혜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은 용기입니다. 나는 이 겨울의 한복판에서 무엇을 자르고, 무엇을 잊으며, 무엇을 간직해야 할지 생각해봅니다.
_신영복《감옥으로부터의 사색》(돌베개)


이 겨울의 한복판에서


나는

뱃살을 자르고,

알코올을 잊으며,

결심을 간직해야 함을

잊지 말자.



2009년에 썼던 꿈 너머 꿈 노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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