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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yla J May 21. 2023

[100-6] E.Hopper_note.

아트한스푼 노트

노트 1.


2023년 4월부터 8월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에서에드워드 호퍼의 전시가 진행중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세번째 방문. 가까운 사람들이 에드워드 호퍼의 팬이었지만, 나는 구상작품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딱히 호퍼의 팬은 아니었다. 나 역시 외롭고 고독한 사람이긴 해도 도시의 고독감과 쓸쓸함, 관음증적인 시선과 도시의 익명성, 연극과영화, 그런 단어들을 그저 의례적으로 떠올리며 사람들은 어떤 것에, 왜 공감하고 열광하는 걸까. 그런 의문들이 좀 있을 뿐이었다.  



노트2.  

첫번째 방문 때는 전체 전시 구성 정도만 확인 했다. 2층->3층->1층의 순서. 1층 외에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고, 이번 전시의 메인 그림은 햇빛 속의 여인. 그 작품 정도만 사진을 찍을 수 있을 뿐이어서. 뭐... 우리가 잘 알고 있던 호퍼의 유명작품들이 전시되지 않아 아쉬움은 많았지만, 대신 호퍼의 습작과 본 작품 보다 디테일하고 연구적인 스케치들, 에칭 작업들, 그리고 삽화작업들과 함께 호퍼와 조세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점이 꽤 괜찮았다.그래도 첫 방문 때는 영상이 있는 줄도 몰랐고 그저 사람들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휘휘 돌아 보았다.


그 때는, 계단작품들이 참 좋네 생각했고 뉴욕 휘트니 전시때 친구가 보내주었던, 드가를 연상시키던 바느질 하던 여인의 뒷모습이 담긴 뉴욕인테리어 작품을 직접 볼 수 있었던 것이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눈을 조용히 열어주었던 작품은 7A.M.  일요일 아침의 문닫힌 상점의 풍경이 마음 속에서 리마인드 되던, 묘한 고요함에 재핑하던 눈길과 호흡이 순간 멈춘다.


Seven A.M. . Edward Hopper, 1948


노트3.

두번째 방문  때는 꼼꼼히 보기 시작했다. 전시장 안에는 펜을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핸드폰 메모장에 떠오르던 단상들을 메모해보려 했지만, 나중에 돌아보니 뭘 쓴건지 알 수가 없다. 뭐 어쨌거나... 두번 째 방문 때는 호퍼답지 않은 거친 터치감의 파리 풍경화들에 눈이 오래 머물렀고, 치밀한 스케치들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그리고조세핀을 그린 드로잉들과 그의 사인들이 참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to my wife Jo…. 라니…너무 사랑스럽잖아…


노트4.

두 번째 방문 때 오래 보던 그림.

이 그림을 그릴 즈음, 호퍼는 화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나는 이 시기적인 관계와 역할의 엇갈림이랄지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조각을 수집했지만, 좋아하는 그림 중 하나인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이 떠오르던 이 그림의 풍경 속, 가로등 켜진 계단 위로 천천히… 걸어본다. 언젠가 보았던 미국의 하늘은 이상하게도 낮았다. 오히려 더 가깝게만 느껴지던 하늘과 구름을 그 때나는 내내 수집하고 있었다. 그 어떤 감정들을 느끼기를 거부하던 마음이 하늘 만큼은 기꺼이 받아들여주었기 때문이다.

House of Dusk, E. Hopper, 1935


노트 5.

세번째 방문 때는, 아래 그림을 좀 더 유심히 보게 되었다.

파리를 다녀온 후 파리를 상상하며 그렸다던 그림을 보며 나는 어느해의 베니스, 그리고 미래 어느 날의 그 장소를 다시 떠올려본다. 1909년 그려진 호퍼의 현실과 환상 사이 어느 한 장면 속에서 나는 2023년 내 현실과 미래의 환상사이 그 어디 쯤을 꿈꾸었다.

Le Bistro or The Wine Shop, E. Hopper, 1909


노트6.

그의 다큐멘터리 영상을 오래 보진 못했지만, 인터뷰와 다른 사람들이 전해주던 이야기들 속에서 사람들의 눈을 마주치지 않던 인간 호퍼를 보았다. 그리고, 아...


그는 "그의 고독과 거리"을 그렸구나.


그의 그림이 좀 다른 층위에서 이해가 된다.


말로 할 수 없는 말들을 그린, 그 고독감과 거리감은 호퍼 자신이 살고, 바라보던 세상이었네. 그리고 그 고독감과 거리감은 병리적인 차원이 아닌(물론 그 자신이 고통스러운 순간도 있었겠지만), 대수롭지 않은 그 자체로의 고독이었다. 거기서 어떤 의미를 캐내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보이던... 그냥 그 자체로의 고독.



노트7.

세번째 방문 때는 영상을 좀 더 오래 보고 싶었다. 처음 부터 끝까지 보지는 못했지만, 남자들은 감사할줄 모르는 존재들이라던 조세핀의 한스러운 한 마디가 미안하게도 너무 귀여웠다. 사진 속의 호퍼와 조세핀은 성격이 어쩐지 그대로 보였는데, 그녀는 그저 자기자신에 몰두해 있던 참 자기중심적인 호퍼가 얼마나 답답했을까? 사람들이 인터뷰를 오거나 방문을 하면 중간에 끼어들어 가까이 못오게 했던 역할을 조세핀이 주로 담당했다고 한다. 호퍼는 답답하게도 말이 없었고, 조세핀은 말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본인도 그림을 그렸지만, 호퍼를 여러측면에서 서포트 했던 조세핀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아, 그리고 다툼이 잦았지만 겨우 한해 차이로 세상을 달리했던 그 두 사람의 관계를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아마도 몇일간은 머리속에서 내내 떠올리게 될 두 코미디언, 호퍼의 마지막 작품이다.


Two Comedians, E. Hopper

* 이 작품은 이번 전시에 없다. 다큐멘터리 영상 속에서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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