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글_리서치컬럼
노트1.
며칠동안 글을 못썼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계속 글을 쓰고 있었다. 100일 동안 매일도 중요하지만, 우선순위에 대해 내내 고민한다. 아래는 한 멤버용 웹진에 올린 글이다. 그동안 글감을 모아두어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아카이빙을 잘 해두어야지. 별 것 아닌 것들이 모이고 쌓여 별 것이 된다.
워라벨(Work-Life-Balance)이 아닌 워라블(Work-Life Blending)? 일과 삶의 균형을 말하던 밀레니얼 세대와 달리, 일과 삶을 칼 같이 분리하기보다 조화롭게 믹싱하자는 이야기가 MZ세대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워케이션, 디지털노마드, 긱이코노미 등도 여기서 파생된 개념인데요. 사회, 문화, 경제, 정치적으로 노동에 대한 인식과 환경은 확실히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요한 하위징아의 ‘놀이하는 인간’에 대한 개념과 제프 베조스의 ‘워크라이프밸런스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주장, 그리고 경제 유동성, 전쟁, NFT, 딥러닝, 사이버 감시 등 추상적 관념보다 현실의 키워드를 주제로 위트와 지성의 필터를 거쳐 동시대가 직면한 사회 현안을 미술관 안으로 끌어들여온 히토 슈타이얼의 작업을 소개합니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cs: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인류는 자기 자신을 그렇게 불러왔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인류는 그리 합리적인 존재가 아님이 밝혀졌고, 그리하여 19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에 의해 호모 파베르(Homo Faber: 물건을 만들어내는 사람)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쉴새없이 뭔가를 만들어 세상을 바꾸는 인간의 미덕이 찬양 받았던 시대입니다. 20세기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1938년 저서 『HOMO LUDENS』를 통해 ‘생각하기’와 ‘만들어내기’처럼 중요한 제3의 기능 ‘놀이’를 적용한 ‘호모 루덴스’를 인류 지칭 용어 리스트에 등재시키고자 한다고 선언합니다.
"그것은 결코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자유시간'에 한가롭게 할 수 있는 행위이다. 놀이가 사회적 기능으로 인식될 때 비로소 -가령 의례와 의식-강제와 의무의 개념과 연결된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놀이의 첫 번째 특징을 살펴보았다. 즉 놀이는 자유로운 행위이며 자유 그 자체이다. 놀이의 두 번째 특징은 '일상적인' 혹은 '실제'생활에서 벗어난 행위라는 점이다. 놀이는 '실제' 생활에서 벗어나 그 나름의 성향을 가진 일시적 행위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모든 아이는 놀이가 '~인 체하기(only pretending)'이며 '오로지 재미를 위한 것'임을 알고 있다. - 호모 루덴스, 44page"
어떠신가요?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현대인들이 SNS를 통해 만들어나가는 부캐들은 그저 ‘~인 체하는’ 놀이인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존의 최고경영자 제프 베조스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은 워라밸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균형을 맞추려 한다는 것은 한 쪽을 추구할 경우 다른 쪽을 희생해야 하는 거래관계를 기정 사실화 하는 셈이며, 그렇게 일과 사생활을 시소게임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건데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가 집에서 행복하다면 좋은 에너지를 가득 안고 일터로 오게 됩니다. 또 직장에서 행복하면, 집에 좋은 에너지를 갖고 돌아갑니다. 이건 순환적인 개념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분리하고 구분하여 균형을 맞출 문제가 아닙니다.” -Jeff Bezos
행복한 일터가 행복한 삶을 부른다며 행복의 선순환을 추구하는 아마존은 최고 경영자인 제프 베조스는 그런 철학을 담은 독특한 건물 하나를 시애틀 한 복판에 지었습니다.
바로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건설된 ‘더 스피어스 The Spheres’ 입니다. 건축물은 거대한 유리돔 3개가 연결된 형태로, 7년간 40억 달러(약 4조 2820억 원)를 들여 2018년 1월 완공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들여온 수만 그루의 식물들이 돔 내에서 자라나고 있으며, ‘시애틀의 허파’, ‘살아있는 벽’ 등으로 불린다고 합니다. ‘더 스피어스’는 제프 베조스의 ‘워라블 철학’을 구현해낸 건물입니다. 스트레스를 풀러 어디 나가지 말고 모든 걸 회사 안에서 해결하면, 다시 일하러 돌아오는 시간 또한 절약할 수 있다는 겁니다. 낭비를 배제하고 생산성을 높이는데 집중하는 기업문화를 가진 아마존 답죠. 어마어마한 업무량에 평균 근속 연수가 3년이 채 안 된다는 아마존. 고객 가치 극대화를 최우선 가치로 놓고, 직원 복지와 생산성 모두를 높이기 위해 지어진 ‘더 스피어스’. 제프 베조스의 주장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물론, 아마존의 ‘더 스피어스’ 건물 자체는 놀라울 정도로 멋졌습니다. ^^
참고*
시애틀의 허파가 된 아마존 사옥, 미래의 작업공간을 설계하다. _일성건설
https://blog.naver.com/ilsungconst/222633526911
작년(202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되었던 ‘데이터의 바다’라는 전시를 기억하시나요? 히토 슈타이얼 Hito Steyerl(1966~)은 독일 뮌헨에서 출생한 일본계 독일인 여성 미술가이자 에세이스트입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연출을 전공하여 비디오, 디지털 애니메이션 등의 미디어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2017년 영국의 아트 리뷰에서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1위로 선정됐으며, 2022년에는 4위로 여전히 세계가 그의 작업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히토 슈타이얼의 작업은 난해합니다. 대중에게는 내용이 다가가지도 그래서 도무지 이해가 되지도 않는 그런 작업을 합니다. 그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한 번에 모든 것을 보려고 하지 마십시오. 좀 과한 것 같아요.”
아래는 히토 슈타이얼은 매우 광범위한 사회 현안에 관심을 두고 작업을 하는데, 그 중 그녀의 영상 프로젝트 ‘태양의 공장’입니다.
아래는 히토슈타이얼의 이론과 미술프로젝트에 대한 해제로, 현대미술학 논문집에 게재된 김지훈의 논문 일부 중 [태양의 공장]에 관한 부분입니다.
“[태양의 공장]은 비디오게임 튜토리얼 사용자 지침서 영상의 외형을 취하면서도 제작 과정 영상, 뉴스 단편 유튜브에 업로드 된 댄스 클립, 일본 애니메이션 풍의 캐릭터,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시위 영상을 조밀하게 뒤섞은 작품이다. (중략) 유튜브에서 자신의 댄스 영상을 바이럴 비디오로서 유행시킨 율리아의 동생은 그녀의 스튜디오에서 전자 센서가 부착된 모션 캡처 수트를 입고 춤 동작을 ‘강요된 노동(forced labor)’으로 수행한다. ‘이것은 게임이 아니다. 이것은 현실이다’라는 제목이나 ‘토털 캡처를 위해서는 A버튼을 누르시오’라는 자막은 그의 신체적 동작이 디지털 가상 캐릭터로 변환되고 육체적 노동이 디지털 가상 노동과 구별 불가능하게 되는 상황을 나타낸다.(중략) 즉 자신의 일관된 정체성을 상실한 채 물리적 신체와 가상의 아바타 사이를 오가는 이들은 주체도, 소유도, 정체성도, 상표도 없이 단지 가면, 익명성, 소외, 상품화 만이 남은 상황에서 소극적 자유만을 가진 프리랜서의 존재 조건과 연결된다. 이러한 조건은 디지털 포스트 포드주의 경제로 이행하면서 노동과 노동 이외 삶의 영역 사이의 구별이 붕괴되는 상황, 나아가 예술의 영역에서는 모더니즘을 지탱했던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신화가 붕괴되는 상황과 연결된다.” - 스크린의 추방자들 319~323page, 김지훈, 포스트 재현, 포스트 진실, 포스트인터네시 히토 슈타이얼의 이론과 미술 프로젝트
"디지털 포스트 포드주의"란 기존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산업화 시대를 지칭하는 "포드주의"에 대비하여 등장하는 개념으로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활용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변화 및 경제 체제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히토 스튜이얼은 ‘태양의 공장’에서 데이터의 지속적인 순환이 비디오 게임과 같은 가상현실 기반의 문화적 경험에만 국한되지 않고 정치적, 경제적, 역사적, 신체적 차원을 근본적으로 재조직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미술관이라는 공장에서는 무언가가 지속적으로 생산된다. 설치, 구상, 목공사, 열람, 의논, 관리, 상승 가치에 대한 내기, 관계망 형성이 주기적으로 교차한다. 미술 공간은 공장이자 슈퍼마켓이고, 도박장이며, 청소부 아줌마와 휴대폰 영상 블로거가 동등하게 그 배양 업무를 수행하는 숭배의 공간이다. 이 경제 안에서는 관객조차 노동자로 변모한다. 조너선 벨러(Jonathan Beller)가 주장하듯 영화와 그 파생물(텔레비전, 인터넷 등)은 관람자가 노동하는 공장이다. 이제 “관람하기란 곧 노동하기”인 것이다. -스크린의 추방자들 86page, 히토 슈타이얼, 미술관은 공장인가?
*참고
https://ko.wikipedia.org/wiki/%ED%9E%88%ED%86%A0_%EC%8A%88%ED%83%80%EC%9D%B4%EC%96%BC
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241418
히토슈타이얼의 에세이집: 스크린의 추방자들 중
포스트 재현, 포스트 진실, 포스트인터넷: 히토 슈타이얼의 이론과 미술 프로젝트, 김지훈
미술관은 공장인가? Is a Museaum a Factory? (2009) 저널 e-flux Journal #7
히토슈타이얼 태양의 공장Factory of the Sun(2015) 대형 싱글 채널 비디오, 몰입형 비디오 설치물, 해변의자
놀이와 일상을 분리하여 문화 속에서 놀이하는 인간을 이야기 한 요한 하위징아가 무색하게도 현대 사회는 히토 슈타이얼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미 디지털 경제의 용광로 속에 들어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나에게 놀이란 무엇일까요? 나는 어떤 삶을 꿈꾸며, 이 거대한 사회 흐름 속 내 작은 일상에서는 어떤 형태의 ‘일’과 ‘삶’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by Ayla J. 2023.06.01
참고* 과정노트
https://brunch.co.kr/@smileearth/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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