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소운 Jul 10. 2021

아쯔코, 숨겨둔 이야기

미안해

유학을 떠났다. 해외 파견으로 몇달씩 있다가 돌아오곤 했지만, 정식으로 학교를 간 건 처음이었다. 직장을 그만 두었으니 수입도 없고, 모아둔 돈으로만 살아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지만, 더 큰 기대감에 짜릿하기만 했다. 편의상 외국 학생들이 많이 사는 곳에 방을 구했다. 마음이야, 바다까지 한달음에 뛰어나갈 수 있게 가까이에 있고 싶었어도, 예산이 맞지 않았다. 오랜만에 돌아간 학생 신분으로는, 미국 사람 집에 방 한칸을 얻는 게 최선이었다.  


생애 첫 자취집은.. 뭐랄까.. 삼각 지붕 아래 다락방..?? 아랫층은 주인집 가족이 살고, 지붕 밑에 간신히 방 두개를 끼워 넣은, 나름 귀여운 나무집이었다. 비라도 오면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폭포물 쏟아지듯 울려대고, 바람이 불면 위~위~ 침대가 출렁거려도, 가격대비 만족스러웠다. 주인집 저녁 메뉴가 뭔지 콧구멍으로 다 알수 있고, 아마 내 발자국 소리가 콩콩콩 끊임없이 울렸을 옛날 집이지만, 방 두개, 거실 겸 부엌, 화장실 하나로 충분했고, 지붕 모양대로 천장 네 면이 모두 비스듬히 사선을 그어 내려오는, 키 작은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특히나 화장실은 건식인데다가 낮아서, 샤워도 욕조에 들어가 앉아서, 머리도 잔뜩 수그려야했다.


간단한 짐 정리 후 , 펜화를 그렸다. 첫 자취집, 첫 미국집을 남기고 싶었다. 사진으로 찍으면 쉽지만, 학교 시작전이니 시간도 되고 할일은 없고… 내 눈으로 찬찬히 훑어보며 꼼꼼히 잘 그리고 싶었다.

“그림 어디서 배웠어? 한국애들은 재주가 많아.”

룸메이트다. 아쯔코라는 일본 여자다. 나도 덩치가 큰 편은 아니지만, 그나마도 내 반 밖에 되지않을, 아주 작고 마른, 깔끔하고 조용한 사람이라 신경이 쓰였다. 몇살인지 물어본적은 없었는데, 그릇 다루는 폼이 아마 나보다 많은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은 컵은 씻어서 엎어 놓지만, 난 똑바로 놓는 걸 좋아해. 그래야 안쪽에 물이 다 마르고, 입 닿는 쪽에 다른게 닿지 않으니까 더 깨끗하거든. 너도 컵 하나를 정해놓고 그것만 쓰면 어때? 그리고 밤 9시 이후에는 거실과 부엌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고, 손님은 안데려왔으면 해. 샤워 시간도 정하자. 넌 몇시가 좋아? ”


나보다 겨우 며칠 먼저 입주(?)했어도, 주인같은 느낌이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좀 살다 왔다는 그녀는, 늘  커다란 오렌지 주스와 우유를 한통씩 샀을 뿐, 다른 미국 먹거리는 좋아하지 않았다. 덕분에 냉장고는 온통 내 차지였는데, 솔직히 요리가 영 꽝이던 나는 토스트나 카레, 김이 전부였다. (아쯔코는, 흰밥 세 숟갈에 일본식 단무지 한조각이면 배가 부른 듯 했다...) 다행이었다. 냄새 피우거나 시끄럽지 않게, 서로간의 선을 지키며, 큰 마찰은 없었다.


“빨래는 해지기 전에 해. 주인집에 시끄러울지도 몰라.”

“음악은 이어폰으로 들었으면 좋겠어. 난 티비는 안보니까 네가 좋아하면 소리를 작게하고 봐줘.”

“일본 남자 조심해. 한국 여자를 좋아하니까, 널 많이 따라다닐거야. 그냥 한국 학생들이 나아.”


사근사근한 말투였지만, 숨쉬듯이 내뱉아지는 끊임없는 잔소리… 눈이 마주치면 또 얘가 무슨 말을  할까 은근 긴장하게 되는 편치않은 스타일이다. 내가 싫은가? 편하게 좀 살지.. 아니면 말할 사람이 없어서 외로운가?? 별별 생각을 다 하면서도 그냥저냥.. 좋은게 좋은거라고.. 잘 듣는 척 했다. 그리고 뒤로는… 가까운 곳에 빈 방이 없는지 조용히 알아보기로 했다.


아쯔코의 충고대로 한국 학생들은 인기가 좋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에서 온 영어 교육학과 대학원생들은 정말 줄을 서서 대기 해야 할 만큼, 귀한 몸이다. 대부분 전에 영어를 가르쳤거나, 아니면 최소한 나처럼 영어로 먹고 살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거기 오는 외국인 학생들은 어떻게든 영어 점수를 올려야 하는, 절박함이 있었다. 한국 대학원생이야 대대로 소문난 토플 귀신들이었으니, 영어를 못하는 일본 학생들에게는 당연 동경의 대상이다.


연수 온 학생들을 가르치는 댓가로 장학금을 받았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일종의 교생처럼, 영어학과 교수들을 따라 들어가 수업을 보조한다. 한 학기동안 일대일로 개인 지도도 한다. 단기간에 토플 점수를 올리려는 일본 남학생들은 팬클럽처럼 한국 여자 선생님을 좋아했다. 군대를 안 가는 애들이라 나이가 많이 어린데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며칠 지나지도 않아 우르르 따라다니는 무리가 생겼다. 가끔 복도에서 마주치는 아쯔코의 표정에 나도 어이없는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건 마치… ‘거봐, 너 조심하랬잖아..’ 하는 왕언니 특유의, 산더미같은 잔소리를 꾹꾹 누르는 그런 얼굴이었다.   


“센세이, 센세이가 제일 예뻐요. 이토 유나 닮았어요.”


하와이 출신의 일본 여가수다. 얼핏보면 이효리랑 많이 닮은, 아마 한국 사람과 많이 비슷한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내가 이효리를 닮았다는 건 아니다… 걔들 눈에 그랬다는 얘기.. ). 덕분에 다음 학기에 나에게 개인 교습을 희망하는 인원이 가볍게 1-20명이다. 아쯔코의 조언도 있었고, 예전에도 일본 남자가 줄기차게 따라다녔었기에, 다른 나라 사람을 지명해 달라고 했다. 태국에서 종합 대학을 갖고 있다는 집 아들래미가 심하게 땡겼지만 (사심이 아니라 나중에 취직할려고… ) 그냥 교수가 정해주는 대로 중동 어느 부호 혹은 귀족을 맡기로 했다. 아랍어라도 공부해야하나 고민하는 내게 아쯔코가 말했다.     

       

“그 사람 힘들대. 여자랑은 말을 안한다던데? ”

아니 뭐 그런 놈이… 알고보니 여자라서가 아니라 자기 비서 외에는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른 아침 참새떼처럼 종알거리며 따라다니는 열살 아래 일본 남자애들과, 자그만치 4학점이 걸려있는 실습과목에서 마주 앉아야하는, 입 꼭 다문 아랍 남정네… 아쯔꼬 말이 맞았다. 그냥 한국 학생들을 맡는게 제일 쉬웠을거다. 회화를 하든, 토플을 하든… 동기라도 분명했을테니까.. 누나, 누님, 선생님으로 계급이 나누어지고나면, 분명 찍 소리않고 잘 따라왔을텐데…


“작년에 그 아랍 귀족 맡았던 사람이 일본 동경대 출신 영어 선생님이었대. 딱 한번 보고나서 비서가 학과장한테 전화했대. 발음 안 좋으니까 다른 사람 붙이라고.. 엄청 까다롭나봐. 지는 말도 안하면서…”


같은 일본 이, 그것도 동경대 출신 영어 선생이 짤렸다는 이야기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아쯔코가 나를 떠본다. 마치 내 귀에는… 그런 사람도 짤렸다는데 너는 어떻 할거냐, 계속 할수 있겠냐… 괜히 시작했다가 학점만 날린다… 하지말고 나한테 넘겨라… ?? 그렇게 들렸다. 아니겠지, 내가 괜히 좀 삐딱하게 보는건 아닌지… 혼자 미안했다.


“기름 펑펑나는 왕자님이 못할게 뭐 있어. 사람 죽여도 무죄인 계급이라잖아.”

“그 남자, 우리보다 어린데 벌써 결혼해서 부인이 몇명 되는 거 알지? 너 진짜 조심해. 걔가 무슨 생각으로 널 골랐는지 어떻게 알아? 남자는 아무리 매너 좋아도 위험해. 특히 그렇게 보디가드 주르르 달고 다니면 무섭지 않아?”


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이것도 언니로서의 걱정인가보다 하고 좋게 넘어가줘야하나.. 이쯤되니 일본 사람, 특히 일본 여자에 대한 내 평소 감정이 되살아났다. 지금까지 만나 본 그들의 특징은… 1) 무심한 척 다 신경쓴다 2) 신경 써 주는 척 관여한다 3) 관여하는 척 뒷말이 많다 ... 그리고 … 4) 그 뒷말 속에 심오한… 다른 뜻이 있다... 나는 전보다 말수를 줄였고, 여전히 말이 긴 아쯔코도 아마 느꼈을거다. 아주 조금씩, 살짝 살짝 삐긋거리는 게 보였으니까. 이래서 한국사람끼리 통하는 게 있다고 하는건가 보다. 문화가 다르다는 건, 너와 나 어딘가에 상주하는, 불편함이라는 놈 때문이다.


그것만 빼면, 내게는 너무 즐거운 독립이고 유학이었다. 외국생활이 참 잘 맞는다 희희낙락하던 두번째 학기, 여전히 혼자인 그녀와는 달리 내게는, 자랑스럽게도, 수많은 친구들과, 소세지처럼 줄줄이 따라다니는 귀여운 일본 남학생들 (제자들이라고 해두자…?) 과, 집으로 식사 초대까지 해주시는 든든한 교수님들이 있었다. 온갖 약속에 파티에… 어때는 며칠씩 룸메이트의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지나기도 했다. 술 한잔 안하는 아쯔코가 갈 곳이라고는 학교와 집 뿐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열심히 살았다…


교육학 전공은 하루가 길다. 학생들중에 현직 교사들이 많다보니 당연히 연령대도 높고, 퇴근 후에 오느라 저녁 수업이 많다. 보통 끝나면 8-9시… 대신 오전 수업이 없으니, 푹 자고 시작해도 충분했다. 팀 발표 하나만 남겨 두었던 마지막 시험 하나… 무려 오픈북에, 주어진 시간은 자그마치  4시간이었지만, 미쳤다고 누가 4시간씩 앉아있냐.. 그 시간이면 책을 한권 쓰겠구나 비웃으며 먼저 일어나 나왔다.


“일찍 끝났네. 비가 와서… 같이 가자.”


내가 찜 찍었던, 태국에 대학을 소유했다는 … 몇 안되던 동갑내기 친구다. 은근 슬쩍 썸 비슷하게 주변을 맴돌던 그가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로 4시간을 각오했는지, 두꺼운 전공책을 하나 끼고 있다. 가뜩이나 스산한 날씨에 검은 겨울 코트, 검은 우산… 턱을 다 덮어가는 검은 수염까지… 그래도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정문 바로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지만, 이 늦은 시간에 비속을 걷고 싶지 않았다. 감사 인사를 하며 시험 얘기, 학교 얘기… 별뜻없는 가족 안부를 주고 받으며 걸어나오던 복도 저편에 아쯔코가 보였다. 비 때문에 귀가를 망설이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자전거로 통학을 했다.


“아쯔코, 오늘은 자전거 타지말고 같이 가자. 수우난이 데려다 준대.”

“아니야, 아까보다 훨씬 덜 와. 어차피 자전거도 가져가야해서… 난 좀있다 출발할께.”

역시나 예의바르게 거절한다. 일본 애들은, 도움 받는 걸 민폐라 생각하는 것 같다… 아니면, 얘는 또 다른 남자야.. 하고 있는지도..??


“어차피 나 내려주러 우리집 가는 길이잖아. 자전거는 내일 가지러 와.”

그녀가 들고 있던 잡지책이 눈에 띄었다. 어디서 구했는지 일본 미용 잡지다.

“뭐 보고 있었어? 너도 이런거 좋아해?”

“아냐, 안 좋아해, 근데, 머리 자를때가 되어서... 미국 미용사들은 일본 스타일을 잘 몰라서 갈 미장원이 없어.”

그녀가 접어 놓은 사진들을 훑어 보았다. 단발보다 조금 길고 삐쭉삐쭉 꼬리를 뺀, 내 눈에는 흔한 일본 스타일의 중간 길이 커트다.

“나 이거 잘 하는데, 내가 해줄까? 나 숱 치는 가위도 있어.”


나는, 제법 손 재주가 있는 편이다. 비앤나 소세지가 되어 나를 따르던 일본 미소년 군단 (사실 미소년은 하나밖에 없었음)도 내 미용 실력에 반한거였다. 처음에 들숙날숙 부서진 까치집 같던 한 남학생을 군인 아저씨 스타일로 짧게 - 지금으로치면 이정혁 동무 스타일로 다듬어줬던게 시작이었다. 너무 멋있다고 소문이 나면서 하나 둘 머리 잘라달라고 모여들더니, 그렇게 소세지로 남았다. 이전의 해외 경험상 미장원이 잘 안맞아서, 간단한 미용 도구 세트를 사온 덕이다. 아마 아쯔코도 알고 있었을거다. 속닥속닥 소근소근… 끼리끼리 모든걸 전하니까…             


“정말? 오늘은 늦었으니까, 내일 해줄래? 프로젝트 끝나면 집으로 바로 오나?”

시험 다음은..수업이 없다... 말하자면 방학인 셈이다. 바로 오다니… 그럴리가..

“아니, 근데 주말에는 약속이 없으니까, 그때 하자. 토요일 어때?”

“그럼 토요일 아침에 자르고, 점심에 내가 야끼소바 해줄께. 너 그거 좋아해? 맨날 카레만 먹더라.”


처음이었다... 아쯔코가 음식을 해준다는 게… 신기하기도하고, 내가 먼저 권하지 못한게 미안하기도 해서 좋다고 답했다. 그래, 잔소리 같은 걸로 사이 나빠질 필요는 없다… 몇 안되는 아시안끼리 잘 지내보자… 그리고 그날 머리를 자르면서 자연스럽게, 곧 다른 곳으로 방을 옮길거라고 털어 놓자.. 며칠 후에 이사 나간다고… 학교에서 자주 보자고… 아니, 아니… 분위기 좋은데 괜히 쓸데없는 말 꺼내지 말자…  더 어색할거다. 다음에 하자…


“친구 기다린다. 너 먼저 가. 나도 금방 들어갈께.”

“그래, 사진 줘봐, 내가 잘 보고 연구해 놓을께. 믿어. 예쁘게 해줄께.”


잡지책을 내민다. 웃는다. 얇은 피부에 더 얇은 입술, 적당히 삐뚤어진 덧니… 환한 복도, 검은 창문… 많이 줄어든 비 대신 창문을 두드리는 요란한 바람… 파카를 둘렀어도 전혀 부풀어 보이지않던 반쪽짜리 몸, 지저분해 바짝 묶여진 나와 똑같이 생긴 까만 머리카락… 유난히 하얀, 허연, 창백한… 아마도 시험기간이라 그렇겠지, 무심히 지난 핏기없는 얼굴에 더 의미없이 지나던 엷은 미소… 친구의 깍듯한 인사와 함께 아쯔코와 헤어졌다. 오픈북이니 기다리지 말라고 했건만, 평소처럼 건물 앞에 떡하니 불법 주차되어있는 그의 차… 수우난은 나를 태우고 친구들이 모여있던 진 가라오케로 향했다.


“다들 모였어. 시험도 봤는데, 한잔 해야지.”          

이미 다른 과 친구들이 모여있었다. 갑자기 대만으로 돌아가게 된 마오의 환송회를 겸해, 생각보다 파티가 커졌다. 늦게까지… 그날 새벽 2시까지… 살금살금 ... 옆방에서 깊히 잠들었을 아쯔코를 깨우지않으려 도둑질하듯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프로젝트를 위한 팀 모임이 있었다. 늦게 들어갔어도 충분히 자고 일어난 10시에 말짱한 모습으로 도서관에 앉았다. 시험이 끝나서인지, 학교가 조용했다. 만나기로 한 우리 팀 한명이 나타나지 않았다. 릴리, 28살 미국 여자애… 유일하게 나보다 어린 딱 한명 철딱서니 없는 미국 여자애가 오질 않는다. 처음에 같은 팀 한다고 했을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아시아 애들이 영문법 잘 한다며, 덕좀 보게 대놓고 자기 좀 끼워달라고 했다. 나머지 두명과 쓸데없는 농담으로 시간을 때운다. 기다리는 건 지루하다.. 1시간쯤 지났을까 멀리에서 뛰다시피 들어오는 릴리… 눈이 탱탱 부었다..


‘그러면 그렇지,너도 술먹고 뻗었다 이제 오냐… ‘


쟤만 자리에 앉으면 바로 시작하자… 솟아 오르는 짜증을 숨기지 않고, 준비된 교재를 쫘르르 펼쳤다. 릴리가 다가왔다. 뛰어오느라 흐른 땀인줄 알았는데, 눈물이다…? 말도 제대로 못하고 엉엉 울며 간신히 옮기는 이야기… 어제밤에 학생 하나가 납치되었다, 아무도 르다가 새벽에 출근하던 주민이 시신을 발견해 신고했다, 이제서야 신원이 확인되었다더라, 유학생이라는데 나는 잘 모르는 사람인것 같고, 다른 피해자가 있는지 경찰과 학교가 여기저기 연락 중이라더라 .. 놀랍지만, 솔직히 뭐라 해야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라도, 일단 누군가가 그렇게 되었으니 무섭고 슬퍼야 하는지… 아니면 알지도 못하는 사람 일에 오바하는 이 아이를 이해하는 척 하면 되는지…


빈속이었다. 보아하니 오늘 미팅은 접어야 할 것 같고, 나가서 점심이나 사먹어야겠다… 가방에서 클리넥스를 꺼내 슬쩍 건네 주고 혼자 가방을 챙기는데, 눈물 콧물 범벅이된 릴리가 말을 잇는다.

“그래서 지금 과 사무실이 난리야, 경찰 오고, 병원 가고, 같이 수업들은 친구들 찾고..“

“우리 과야? 이름은?”

팀 맴버인 아저씨가 화들짝 놀라 물었다. 그제서야 잠깐, 나에게서도 아주 약간의 놀라움이 생겼다. 우리과였구나… 우리 과 여자 유학생 중에 외국인… 몇명 쯤 될까…


“들었는데 잘 모르겠어, 외국어라서… 이름은 잊어버렸고, 성은 이케다…던가…?”


가방을 챙겼다. 꺼내놨던 책들을 하나씩 집고, 덮고, 넣고… 남은 볼펜 두자루를 손에 쥐었다.. 필통이 어딨더라.. 가방 안에 있었나.. 안 가져 왔나..? 가방을 닫아야 하는데, 자크가 어디있지소운, 너는 알지? 아는 이름이지…? 아저씨 목소리가 들렸다. 아주 크게… 조용한 도서관에 허스키한 중년 게이 아저씨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모두가 이쪽을 돌아보는 것 같다… 나를 보는 것 같다…

너 갑자기 왜그래? 말해봐, 괜찮아? 진짜 아는 사람인거야?”


천천히 움직인다. 마주앉은 아저씨도, 그 옆의 더 나이 많은 아줌마도… 흔들거린다. 미팅 준비하느라 어지러운 책상 모서리에 바짝 붙은 릴리도, 이제쯤 눈물이 말랐나보다. 동그랗게 커다란 눈이 나에게 향한다…


어린 시절 한쪽 귀를 막고 노래를 부르면, 목소리가 더 잘 들린다. 가끔은 그렇게 한다. 먹먹하지만, 더 잘 들리니까… 양쪽 귀를 다 막고 노래를 부르면 더 크게 더 잘 들릴 거다. 꽉 막으면 절대 안들릴 것 같지만, 여전히 주변의 소리가 다 들려온다… 귀를 막아도, 눈을 감아도… 다른 곳을 보려해도… 나는 여전히 거기에 있다… 귀를 꽉 막아 웅 소리만 나게, 내 목소리만 듣고 싶다. 아무 소리를 내지 못하는 나는 .. 정말 아무 말이라도, 하지 못할 것 같다… 진작에 귀를 막았어야했다. 아무것도 듣지 말았어야 했다.


“야, 숨 좀 쉬어봐. 너 괜찮니? 이케다라는 성 알아? 누구야?”


손에 쥔 볼펜 두자루를 의자에 걸어 놓은 셔츠 주머니에 꽂았다. 가방 자크를 찾지 못했다.. 점심은 뭘 먹을까… 학교 식당이 열었을까.. 오늘따라 도서관이 참 조용하네...


“… 이케다… 이케다, 아쯔코... 아쯔코 이케다.”


영어 교육 석사과정의 나는, 문장도 아닌, 어순도 엉킨, 영어도 아닌 딱 두 단어만 짧게 반복했다. 아쯔코 이케다… 눈이 마주친, 하필 나와 딱 정면에 마주보고 앉았던 아저씨, 일찌감치 은퇴한 캔사스 출신의 중년/노년 사이의 어정쩡한 아저씨가 나를 본다. 멈춘 눈동자에 단단히 못박혀 움직여주지 않는다. 하필 이 아저씨가 내 앞에 있었나… 이렇게 가까이 앉아있었나… 나에게 잘 해주던 친절한 아저씨 친구… 우리에게, 나와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유독 나이스하던 아저씨가 나처럼 돌이되었다.


아저씨, 숨 쉬어봐요... 시간이 흘렀는지 멈췄는지… 아저씨는 확실히 멈췄다. 나도, 그대로 멎은 것 같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눈물같은건 나오지 않았다. 그런것까지 하기엔 뇌가 너무 바빴다. 일부러라도 숨을 쉬어야했고, 눈도 깜빡여야했으며, 손가락도 잘 붙어있는지 힘을 주어봐야했고, 무엇보다 가방 자크도 찾아야 했다.. 그래야 여기서 벗어날수 있다..

  

아저씨가 아니었으면 내게 묻지 않았을거다, 릴리가 뛰어오지 않았으면 우린 몰랐을거다, 프로젝트가 아니었으면 모이지 않았을거다, 집에서 늦잠 잤으면 경찰의 전화를 받았을거다… 그랬을까..? 어제 밤에 가라오케에 가지 않았으면, 밤새 기다리다 먼저 신고했으면… 조금 일찍 찾을 수 있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한번 더 친구 차 타고 같이 집에 가자고 했으면, 우리는, 너는.. 아마 여지껏 살아있을까… 내가 그날 집에 가서 머리 다듬어 주었으면, 잘했든 못했든, 너는 살아서 활짝 웃고 있을까...


아니야, 그보다도... 그 날, 너랑 같이 있었으면, 네가 살았을까 나도 죽었을까...  


장례식에 가서야 알았다. 아쯔코는 나보다 아홉살이나 더 많은 정말 큰언니였고, 가나자와에서 왔으며 영어 유치원 선생님이었다. 독신이고 모범생이었고, 고령의 부모님과 함께 사는, 시를 좋아하지만, 팝송이나 헐리우드 영화는 안 좋아하는, 형제 많은 집의 막내다. 대학때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왔었고, 이번이 두번째 유학이었고, 석사를 마치고 일본에 돌아가면, 자기 유치원을 차리고 싶어했었다..

 

“우리 아이가 소란을 일으켜 죄송합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빌어먹을 일본 문화에 평생을 세뇌당한 아쯔코의 아버지가 사과했다. 급하게 타고 온 비행기에서 내리자 마자, 이유없이 살해 당한 막내딸의 장례식장에서, 경찰과 기자들에게, 교수와 학생들에게, 입 꼭 다물고 함께 울어주던 주민들에게 머리를 숙였다. 뭘 도와줘? 맞아죽는 걸 도와줘? 40키로 겨우 넘을 여자를 끌고 간 놈을 감옥이 아닌 정신병원으로 보냈는데 뭐가 감사해? 무심한 척 엄청 슬플텐데, 괜찮은 척 따지지 않는다. 여기서까지도, 눌러담은 진심과 다른 말을 뱉는다… 심오한… 내가 모를 다른 뜻이 있으면서도, 끝끝내 죄송하다, 감사하다고만 중얼거린다... 일본것들.. 짜증난다..


정문 앞 정류장에, 특히나 차없는 유학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그 버스 정류장에, 아쯔코 이름이 새겨진 벤치가 만들어졌다. 아무 설명없이 이름과 생일, 사망 날짜만 써있다. 여름겨울 두어번이면 졸업일거고, 새로 오는 학생들은 아무도 모르겠지… 그가 누구인지, 뭘 좋아했는지, 왜 오랜지 주스만 마셨는지… 나처럼 맹숭맹숭 이름만 알고 지나는 채로, 시간 춰 왔다가는 버스처럼, 왔다 갔다, 달렸다 멈췄다… 탔다 내렸다… 잠시잠깐 신경 썼다 잊었다, 그렇게 지나겠지… 널 기억하지 않을거야. 난 너처럼 뒷말 못해. 너무 미안하고 아파서, 혼자 힘들기 싫어서... 오늘이 가면 잊을거야.


버스가 온다. 새로 이사한 자취집으로 간다. 빈 가방을 어깨에 걸었다. 아쯔코가 준 미용 잡지에 숱 치는 가위를 끼워, 벤치 한쪽에 가만히 올려 두었다. 버리는 건 아니다. 주는 거다. 약속한대로, 내가 해주기로 했으니까… 어차피, 다시는 꺼내들못할테니까… 먼길 가서 혼자서라도 예쁘게 자르라고, 내가 주는 거야.   






*예전에 올렸던 <마법의 양탄자 https://brunch.co.kr/@smilekay/112 > 에 깔려있던, 정말 그냥 지나쳐도 될만큼 아주 작은 배경입니다. 여지껏 남은 게 있어 글 올립니다. 읽으신 분들은 기억하실까요.. 양탄자를 거절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 끌려다니던 상황이요.. 무심한 척 괜찮은 척 했지만, 사실 감당하기 힘든 괴물이 저를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말 한마디 없이 옆에만 있어준 그 분이 큰 힘이 되었구요.. 괜찮아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소설인지... 저도 늘 헷갈립니다...


이전 04화 내 남자의 여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