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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소운 May 11. 2021

이금옥 여사

공항동 이쁜이

공항동 이금옥 여사. 오늘도 어김없이 반짝이가 가득한 긴 하늘색 스카프를 두르고 나타났다. 금테 안경속으로 진하게 튜닝한 쌍꺼풀이 부담스럽게 웃는다. 갈매기 날개 꺾듯 꼬리를 잔뜩 내린 눈썹 끝이 눈가 주름까지 내려와 맞닿았다. 항상 빨갛게 칠하는 입술, 도드라진 광대뼈를 더욱 강조해주는 분홍 볼터치와 주름 속으로 스며드는 파운데이션.. 두어겹 내려앉는 목덜미는 환갑 훨씬 지난 나이를 말해주지만, 날씬한 뒷태만은 많이 봐도 50대다. 어쩌면 그저 타고난, 복받은 마른 체질인가 보다. 군살 한점 잡히지 않을 것 같은 옆구리선이 아직도 자신있다. 종아리를 훤히 내보이며 무릎 위에서야 멈추는 유행 지난 A라인 치마는 30-40 대도 잘 입지 않겠지만, 다리가 예뻐서인가, 그녀에게는 참 잘 어울린다.


언젠가부터 여기저기 핏줄이 비치고 울퉁불퉁해졌다. 늘어진다고 해야하나,.. 팽팽하던 탄력이 없다. 판매원 아가씨의 권유로, 조금 더워도 압박 스타킹을 신는다. 한 여름에도 절대 벗지 않는 필수 아이템이다. 매일 손질하는 볼륨 가득한 파마머리와 아끼고 아끼는 하나뿐인 중저가 검정 핸드백. 엄지 손가락만한 힐이 또각또각 소리를 높이면, 그녀를 잘 아는 직원들의 눈 인사가 이어지고, 여사는 특유의 눈웃음과 손짓으로 답례한다. 동그란 진주 반지에 어울리는 진분홍 매니큐어... 나이에 무색하게 잘 가꾼 손톱이 화사하다.  


“여사님, 오늘 더 멋지세요.”


입에 발린 칭찬이라도 듣기 싫지 않다. 금옥 여사의 별명은 ‘공항동 이쁜이.’ 혹자는 비웃고 빈정거려도 본인

이 좋다는데 뭐가 대수랴. 개의치 않는다.


“언니야, 지난번에 본 , 그거 하나 줘봐. 다 다녀도 이 집이 제일 나은 거 같애.”

“조금만 일찍 오시지요, 다 나가고 없어요. 워낙 인기 상품이라.”

“아유 어쩌나, 꼭 맞다 싶었는데. 그때 살 걸 그랬구나. 어쩌까.”

“다른 매장에 남은 거 있나 확인 해 드릴까요? 주문하시면 이틀이면 와요.”

“아냐, 아냐, 벌써 다 나갔네,  일단 그냥 둬 봐. 내가 더 돌아다녀보고, 정 없으면 그때 주문하지, 뭐.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내가 그때 우리 아들 사이즈만 잘 알고 있었어도 사는 건데, 그치?”


실망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금옥 여사에 비해 매장 직원은 크게 아쉬워하지 않는 듯, 바른 자세로 서서 절제된 미소를 띄운다. 그동안 보아온 여사의 쇼핑 스타일이다. 오랫동안 보고, 만지고, 고르고, 생각해보고, 마지막에는 꼭 다시 온다고 하지만, 제때 와서 사 간 적은 한번도 없다. 그리고 끝에 꼭 마침표처럼 따라붙는 이야기 – 아저씨, 여사의 남편.


“우리 아저씨가 또 뭐라 카겠네, 여편네가 진작 안 사고 그란다고. 남편이 좀 성질이 불 같거든. ”


직원은 예에 하고 짧게 답하고는 매대 물건 정리를 시작한다. 세일 아이템 행거를 하나하나 넘겨보던 여사가 넌지시 묻는다.


“언니야, 아직 만나는 사람 안 생겼어? 우리 아들 나오면 일루 데리고 올테니 한번 보기라도 해, 응? 내가 암말 안 하고 그냥 옷 사준다카고 같이 올께, 알았재? 와 답이 없노? 남자 있어?”


직원은 셔츠를 각세워 접으며 키득키득 웃기만 하고, 그 모습이 귀여워 여사도 따라 웃고 만다.


“이래 이쁜데 진짜 남자가 없어? 우리 아들 정말로 잘생겼다니까? 키도 크고. 육군 군악대야. 거기는 잘생겨야 드가는데라니까? 한번 보면 맘에 들어할긴데? 응? 그래도 맘에 없어?”

“출근 하셔야지요. 시간 다 되어가요.”

“아이고, 그래, 내 정신 좀 봐라. 여기만 오면 일이고 뭐고 다 잊어버린다. 얼른 갈께, 담에 꼭 보자, 언니야? 아유, 오늘은 더 이쁘네.”


서둘러 걸음을 재촉하면서도 칭찬을 잊지않는 모습에 직원은 웃으며 가벼운 목례를 한다. 마음 따뜻한, 정 많은 분일 거다. 흐트러진 옷걸이들을 다시 줄 맞추며 그녀가 지나간 흔적을 지운다. 여사는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질러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문 옆에 비어있는 노약자용 소파. 기품있게 잘 만들었다. 저런걸 집에 몇개 둘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노을이 보이는 커다란 베란다 유리문 앞에 놓고, 남편과 둘이 앉아 잡지책을 읽고 싶다. 제목은 모르지만 길건너 저쪽 큰 명품샾에서 듣는 그런 음악을 틀어놓고, 온수냉수가 나오는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차를 내린다. 남편은 손바닥만한 상표가 새겨진 크림색 가디건을 걸치고, 안경 너머 조심스런 손짓으로 난초 잎을 닦는다. 11층 높은 아파트 베란다 밖으로 뜨고 내리는 비행기들이 보이고, 지하철 입구에 오가는 사람들은 가족을 위한 선물이나, 케익, 혹은 꽃다발을 한아름씩 안고 지나간다. 장성한 아들들은 각자 바쁠테니, 그저 외로움에 막내 삼아 키우고 있는 하얀 마르치스 한마리만 발 아래에 선잠 잔다…         .     


"띵... 내려갑니다..."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서서히 아래층으로 간다. 밖이 훤히 내다 보이는 전망 엘리베이터는 늘 설레임과 긴장을 준다. 버릇처럼, 유리창에 붙어 밖을 본다. 여기서는 활주로까지 훤히 보인다. 젊은 사람들이 놀이공원에 가서 바이킹을 타는 것도 이런 짜릿함 때문일까. 여사는 한번도 놀이기구를 타본적이 없다. 밑에서 보기만 해도 어지럼증이나고, 토할 것 처럼 무서웠다. 돈주고 왜 저런 짓을... 참 이해 못할 것이 바로 그 놀이 공원이다. 복잡한 교통도 싫고, 사람들로 붐비는 어수선함도 싫다. 그저 이렇게 한가한 시간에 백화점 전망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 하는것이 그녀의 유일한 놀이 기구다.


예전에는 비행기 때문에 공항 근처에 높은 건물을 지을수 없었지만, 요즘은 지하철 역부터 높은 빌딩들이 많이도 들어섰다. 낮은 건물도 기본 4-5층은 되는 것 같다. 최근 많이 올랐다는 저 멀리 저 아파트, 분양 준비 플랭카드가 펄럭거리는 새 빌라… 몇 평일까, 방은 세개 일까,  화장실은 두개였으면 좋겠다… 갈비뼈 안쪽으로 찌릿하게 전기가 온다. 한층한층 내려갈때마다 안전바를 잡고 양손 끝까지 힘을 준다. 문이 열렸다 닫힐때마다 화사했던 여사님의 아침이 저물어간다.


곱게 정성들인 화장도, 힘주어 한창 부풀린 머리도, 이제 다 내려가버린 엘리베이터를 따라, 결국은 흙투성이일 뿐인 땅을 밞는다. 주차장은 벌써 반 이상 차여가고, 관제탑 옆으로 비행기가 솟구친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꽤 많은 사람들이 기다린다. 그녀는 가방을 부여잡고 발걸음을 옮긴다. 섭섭하다. 늘 엘리베이터를 내릴때면, 뭔지 모를 허전함이 있다. 달콤했던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마주한다.


입국장으로 향하는 로비는 항상 정신없이 붐빈다. 아이들 키만한 짐도 짐이지만, 나가는 사람, 배웅하는 사람, 마중 나온 사람 등등, 동네에서는 아마 한 일년 걸려도 다 못 볼 사람들을 이곳에서는 하루면 충분히 볼 수 있다. 기를 뺏긴다고 하나. 나이가 들면 사람들 많은 곳에 가는 것 자체로도 피곤하다는데, 금옥 여사는 아직도 마냥 즐겁다. 오히려 회춘이라도 하듯, 에너지가 솟는다. 두어개씩 여행 가방을 끌고 가는 바삐 걸어가는 한사람 한사람을 살피느라 구두 신은 발가락이 아파오는 것도 모른다.


‘예쁜 아가씨들이네. 니들은 좋겠다, 젊지, 예쁘지, 부모 잘 만나 벌써부터 비행기를 밥먹듯이 타고, 전생에 뭘 하면 그렇게 사나?

‘할머니, 그쪽은 나가는 길이에요, 이리로 가야지. 딸네가 미국 살아요? 서둘지 말고 천천히 가요.’

‘아이구, 아저씨, 집에 있는 마누라나 좀 델구 다녀요.. 쯧쯧쯧.. 딱 봐도 스무살은 차이 나겄다, 추접시려라..’

상상인지 진실인지 모를만큼 관찰 놀이에 빠져 걷다보면, 출근 시간이 다되어 간다. <출국> 이라고 써있는 공항 로비를 지나 건물의 끝, 맨 구석으로 향한다.


<일반인 통제구역>


배지를 스캔하면 직원용 통로로 갈 수 있지만, 시간이 조금 더 걸려도 그녀는 이렇게 ‘여행객’ 들이 이용하는 복잡한 곳을 지나 출근한다.


“언니, 오늘 또 빈손이네? 오늘 꼭 들러서 산다더니 안 샀어요?”

“다 팔렸단다. 진작에 사둘걸.”

“담에 더 좋은 거 또 들어 올텐데요, 뭐.”


나이로는 딸뻘은 될 성미가 립스틱을 고쳐 바르며 열심히 준비 중이다. 예쁜 것. 금옥 여사는 생각 했다. 머리 수건을 쓰며 거울 속 자신과 비교해본다. 곁눈으로 슬쩍만 봐도 역시 젊은 아낙네들이 이쁘다. 손에 들고 있는 오렌지 빛 립스틱이 눈에 들어온다.


“그 건 어디서 났어? 새거 같은데?”

“이거요, 언니, 발라 볼래요? 엊그제 우리층 화장실에서 승무원 아가씨가 하나 줬어요.”

“아이고, 빛깔 참 이쁘다. 너 전에 쓰던 거랑 비슷하네, 이게 더 곱다.”

“발라봐요, 잘 어울릴 거 같은데요.”

“됐다, 니나 많이 발라라. 젊은 각시들 꺼구만.”


한번 더 권하면 못이기는 척 발라보고싶었지만, 야속한 미는 더이상 권하지않고 그대로 받아 챙겨든다. 정 없는 것. 니가 그래 팍팍해서 니 서방이 떠났지 싶다… 속으로만 한마디 삼켜본다.


그녀들의 직장, 김포 공항. 엄밀히 말하면 공항 직원이거나 그런건 아니다. 청소를 맡은 하청업체 소속이다. 그래도 금옥 여사는 정말 하늘에서라도 준 일인양 매일매일을 열심히 일한다. 누가 이 나이 할마씨를 써줄꼬… 업체 측에서야 싼돈에 궂은 일 하는 사람 쓸 수 있어 이득이지만, 그것도 너그럽다. 럼,  사람들도 딸린 자식 있는데 이윤 남겨서 먹고 살아야지… 우리같은 노인들은 쫴끔만 받아도 산다… 돈이야 더 주면 좋지만, 모자라다고 마구 달라고 할수 없는것 아닌가. 강도 아니구서야… 그래도 어릴적 호의호식하며 멋 부리고 살았던 때가 그립긴 하다. 어쩌다 그런 통나무 같이 뻣뻣한 놈을 만나 힘들었나 아쉽지만, 지금이라도 믿음직한 남편을 또 얻었으니 팔자 고쳤다 위로했다.


지금의 남편은 금옥 여사가 일하던 낙지집에 자주 오던 개인 택시 기사였다. 음식 타박도 꽤하고, 목소리도 크고,.. 그녀의 이상형처럼 얼굴 뽀얀 그런 피부좋은 남자가 아니었기에, 처음부터 한 눈에 쏙 들어오는 그런 이상향은 절대 아니었다. 그 나이에 이상향 찾는것도 우습다지만, 오히려 나이 먹어 다시 짝을 찾는다면,  꼼꼼히, 가능한한 내 맘에 드는 남자를 만나고 싶었다.


어느날 늦은 시각 문 닫을 무렵, 주인의 고집으로 홀에 떠밀려 나간 금옥여사는 처음으로 그 얼굴 시커먼 중년 아저씨와 마주 앉았다. 술을 못하는 그녀는 그저 앞에 앉아 말동무나 해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는 생각보다 말수가 적고, 그녀와 눈도 못 마주칠 만큼 수줍어 했다. 그저 술 한잔 하고싶은 손님들 중 하나거니 하고 함께 앉아있던 금옥 여사는, 자꾸 먼곳만 보는 그 모습이 조금 귀여워졌다. 하지만 그 뿐, 일주일에 한두번쯤, 꼭 늦은 시간에 찾아와 낙지 한 접시와 소주 반병을 마시고 가버리는 그에게서 데이트 신청이란 걸 받아 보지 못했다.          


“이젠 나 부르지 마요, 주방에 할일도 많은데 왜 자꾸 홀에 나오라그라요.”

“아, 내 친구라니까, 한번 만나봐요. 애들도 다 컸고, 딴 짓 안 할사람이야. 놀음을 하나, 과음을 하나, 집도 있고, 괜찮다니까.”

“그 사람이 내게 맘이 없는데 뭘 사장님 혼자 그래요. 내 앉아있어도 나한테 한마디 안해요.”

“허허허… 쑥스러워 그렇다니까. 속마음을 이렇게 잘 못해. 그래서 여자가 없어.”


며칠, 몇 주가 지나고, 밖에 쌀쌀해질 무렵, 사장이 불렀다.


“옥이이모, 내일 쉬는 날이지요? 미안한데 아침에만 잠깐 나와줘요. 정씨 아줌마가 못온다고 하네. 밑반찬만 좀 해줘요. 내가 오만원 드릴께.”


돈에 혹해 궁시렁 거리면서도 알겠다고 했다. 얼른 끝내고 들어가려고 꾸미지도 않고 편안한 차림으로 나오게 된 다음날 아침, ‘휴무’ 라고 쓰여있는 개인 택시 한대가 가게 앞에 서 있었다.


“잘 놀고 와. 둘이 잘 되면 다 내 덕이다.”


사장은 능청스런 웃음을 날리며 문을 닫는다.


“아이고, 아저씨, 나는 모르고 왔어요, 그냥 집에 갈랍니다.”

“타요. 모셔다 드릴께요.”


낮고 조용하지만 강한 목소리. 머뭇머뭇하다 결국은 그가 열어 준 조수석에 올랐다. 그는 묵묵히 운전만 했다. 난생 처음 제부도라는 곳을 갔다. 그다지 멀지는 않았지만, 말수 없는 그와 가는 길은 길게만 느껴졌다. 어색함을 깨려고 이 얘기 저얘기 꺼내봤지만, 대답은 늘 단답형이다. 심심한 사람이구나... 그가 시킨대로 조개탕을 먹고 조금 걸었다. 저녁 때 쯤, 다리 건너 무리지어 날아오르는 새들을 바라보았다. 아름답다. 쉬는 날이면 혼자 밀린 잠이나 자고, 빨래나 했는데… 이런 데도 와보네…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싱싱 달려 동네로 돌아왔다. 차를 세우고 보니 잘 모르는 시장 옆이다. 어디 찬거리라도 사러가나 싶어 그저 땅만보고 따라 걸었다. 갑자기 어느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난장이허리를 반쯤 굽혀야 들어갈수 있는 작은 문. 천장이 낮은 오래된 시멘트 집. 마당도, 담도 없이, 바로 골목길로 향한 유리창에 꽃이 수놓아져있는 얇은 하얀 천과 모기장이 같이 걸려있다.


“인사해라. 내가 전에 얘기했던 아주머니시다.”


멀쑥한 청년 셋이 좁은 마루에서 내려와 인사한다. 저녁을 준비한 듯, 음식 냄새가 난다.


“안녕하세요?”


겨울이 가기도 전에, 그녀는 그들의 어머니가 되었다.


“언니, 오늘도 아저씨가 데리러 오시나?”


하루가 끝났다. 눈치 빠른 성미가 묻는다. 고된 하루 일을 마치고도, 또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고치면 역시나 어저씨가 온다는 신호다. 다리가 쑤셔 택시를 그만 둔 후에는 더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데리러 온다. 오래된 중고기는 하지만, 그래도 꽤 폼나는 중형차를 몰고 와 기다리고 있다. 이 나이에 무슨 복인지,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언덕배기 작은 집에 올라가고, 그가 미리 해 놓은 따뜻한 흰밥과 된장찌게를 먹는다. 오랜 기간 남자들만 살아와 남편 뿐 아니라 아들들도 요리 실력이 좋다.


“그럼, 매일 똑같지, 뭐. 니는 약속 없나? 누구 안 기다리나?”

“우리 딸 밖에 없지요, 누가 있겠어요. 요즘은 공부한다고 늦게 오네.”


성미의 딸은 교대를 졸업한다고 했다. 청소 옷을 털어 반듯하게 접어 넣으며, 시험 준비로 바쁘다고 자랑 반, 한숨 반, 하소연이 별로 달갑지 않다. 키 크고 인물 좋은 우리 아들들은 엄마가 없어 많이 가르치지 못했다. 막내 하나 전문대 나와 군대 가있는게 고작이다. 내가 좀 일찍 만났으면, 대학까지는 보냈을텐데… 매일 여기서 야근을 해서라도, 하나쯤은 4년제 대학을 꼭 보냈을 건데… 친아들은 아니지만, 아이를 못낳아 쫒겨난 그녀로서는 친자식보다 더 정이 깊다.


남편과 재혼 후 얼마되지 않아 큰 아들이 군대 갔을때 처음 보내 온 편지, 어머니께… 다음 줄은 읽어보지도 못하고 그만 첫 줄부터 목놓아 울어버렸다. 어머니… 어머니… 50년을 살고서야 처음 불려진 이름, 어머니. 남편은 모른다. 한창 고울 나이에 소박 맞고, 이 식당 저 식당 전전하며 얼마나 세상을 원망하고 살았는지. 남들 다 되는 그 어머니가 되지 못해 버림 받은 인생.


“오늘은 별거 없다. 형님 제사라서 시장 같이 간다. 뭐 째매씩 사느라고.”

“죽은지 몇십년인데 아직도 전처 제사를 지내요? 그것도 재혼한 부인이? 너무하네.”

“너무하기는? 그 어린 아를 셋이나 낳아놓고 죽었으니 얼마나 슬프겠노. 나는 내 친언니 죽은 것 보다 더 가슴 아프다.”


사실이다. 금옥 여사의 진심이다. 처음 전처의 제사를 지낼때는, 사실 새 남편의 눈치도 보였고, 무엇보다 아들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였다. 아이들의 어머니니까... 너희가 나한테 이렇게 싹싹하게 잘 하니, 나도 네 어머니에게 이만큼은 해야지… 용타, 기특하다, 엄마 제사라고 일찍들 들어왔구나… 동네에서 빠지지 않을 솜씨로 섭섭치않게 한 상 가득 차려냈다.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여사는 진정으로 슬퍼졌다. 형님도 참, 불쌍합니다. 그 나이에 먼저 가서 아이들 보고싶어 어째요? 이렇게 잘 큰 아들들도 못보고, 알지도 못하는 나만 호강해 미안합니다…


전처의 제사상만 차리면 훌쩍훌쩍 울고 앉은 여사를 남편은 주책이라 했다. 주책이면 어떤가. 이렇게 진심으로 슬퍼해 주는걸 하늘에서도 알고 있을거다. 식상한 술주정 같지만, 아이들도 마음을 알아줄거다. 기껏 정성들여 고친 화장을 지운다. 벌써 눈물이 난다. 결혼 앞두고 급하게 한 싸구려 쌍커풀이 이젠 다 풀어져 희미하다. 눈꺼풀이 늘어져서 그런가... 포기다. 밝은 색 새도우로 화려하게 하는 걸 좋아하는데, 오늘은 어쩐지 노망난 두꺼비 눈이되어 화장도 안 받는다.


다음날 아침, 역시나 지난 밤 제사에서 너무 울어 눈이 많이 부었다. 그놈의 청주 한잔에 날이 샐때까지 울었다. 본적도 없는 형님 팔자, 평생 지긋지긋한 자신의 팔자, 엄마 없이 자란 아들들의 팔자가 서러워, 엊그제 과부된 새댁처럼, 꺼이꺼이 목놓아 울었다. 이런 날은 매장도 갈 수도 없다. 아무에게도 얼굴을 보이기 싫다. 사실 오늘은 오래전부터 받아 놓은 휴일이다. 다 큰 아들들 앞에서는 더 무뚝뚝한 남편… 그나마 유일하게 단 둘이 하루를 같이 보내는 날이다.


이런 날은 주로 드라이브를 한다. 젊어서 베트남 파병을 다녀 온 남편에게 택시는, 그저 담배값 정도 벌어 주는 정도이고, 사실 코딱지만큼 연금이 나오는 상이 군인이다. 종아리 아래로 어린애 팔뚝만한 수술 자국이 있다. 아무리 의료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었다고 해도 그렇지, 남의 다리라고 저렇게 마구 찢어 놓다니… 절단해야 한다는 걸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반대하고 강제로 퇴원시키셔서 그나마 붙어있는 거라고 했다. 불편한 다리로 혼자 아들 셋을 키운 사람. 말은 없고 성질만 사납지만, 그녀만큼이나 외롭고 힘들었을 걸 생각하며, 여사만의 넓은 오지랍으로 감싸주기로 했다. 집에 돈버는 사람이 늘었어도 여전히 천원 한장 쓰지않는 구두쇠 짠돌이 영감. 재혼한지 십년이 넘었어도 마누라 꽃 한송이, 립스틱 하나 사준 적 없다.


“공항에서 맨날 얻어 오면서 뭘 자꾸 사? 쓰는 사람도 없는데”


그랬다. 신장이 안 좋아 집에만 있는 둘째 아들이, 어버이 날이라고 동네 화장품 가게에서 사온 만 오천원 짜리 메니큐어 세트를 보고 남편은 삐죽거렸다.


“돈도 못버는 놈이 어디서 사치한 것만 알아가지고…”


아버지 핀잔에 익숙한 둘째는 그저 실실 웃으며 여사와 마주 앉았다. 허얗게 다 갈라진 거친 손을 잡고 정성껏 하나하나 예쁘게 발라 준다.


“나는 손이 안 이쁘다. 평생 식당일해서… 많이 거칠지?”

“아니에요, 뽀오얀게, 진짜 예쁘세요.”

“예쁘기는, 뭐, 이런 냄새까지 남아서 안 좋다.”


손을 들어 둘째 아들의 코에 대어 준다. 아들은 킁킁 냄새를 맡는 척한다.


“우와, 우리 어머니는 손에서도 이쁜 냄새가 나네?”


낙지 냄새다. 십오년 넘게 일했다. 바락바락 씻을때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쑤시고 아플만큼 낙지 손질에 이력이 났다. 닭손질도 지칠때까지 해봤지만, 이놈의 비릿한 낙지 냄새는 도무지 없어지질 않는다.  


“아이고, 고만 해라, 일 나가면 어차피 다 벗겨진다.”   


말 뿐이고, 손을 치우거나 하지 않았다. 젊은 나이에 살림만 하느라 갑갑했을 둘째가 혹시라도 화장품 가게 아가씨를 맘에 들어하는건 아닌지… 산책삼아 왔다갔다 들락거려 봤나. 아직도 계속 투석을 하느라 힘들지만, 한창 마음에 꿈이라도 꾸고 있는걸까. 차마 물어보지는 못했다. 서늘하게 메꿔지는 솔질을 따라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이 손등에 한방울, 저 손등에 한방울… 나는 전생에 뭘 그리 잘해서 이런 아들들이 생겼을꼬… 얘야, 그래도 화장품 그 여자는 안된다. 도금 처발라서 주렁주렁 하고 있는 폼이, 돈 꽤나 들게 생겼더라…  


청소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금옥 여사는 기쁘다. 때맞춰, 에어컨이고 히터고 잘 들어와 좋고, 반지르르 부티나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좋다. 특히나 판매원이나 승무원 아가씨들이 너무 예뻐 며느리 삼고싶다. 그들이 가끔 주는 립스틱 한개씩 얻는 쓰는 건, 더운 날 시원한 식혜 한사발 마시듯이, 회춘 할 만큼의 활력이다. 여사님이 쓰든, 시누 형님을 주든, 곗날처럼 뿌듯하고 기쁘다. 그래도 한켠으로는, 저렇게 가족끼리 혹은 노부부끼리도 다들 여행을 가는데, 생각할수록 많이 부럽고, 마음 아프다. 언젠가 한번 남편에게 이야기 꺼냈을때 남편은 특유의 삐쭉한 입꼬리를 보이며 면박을 주었었다.


“공항청소 한다고 비행기를 타? 청와대 청소하면 대통령 하겠네.”


남편 말도 맞다. 둘째 병원비가 만만찮게 든다. 막내라도 어서 제대해 돈을 보태야 어디가서 맘편히 외식 한번 해 볼 수 있겠지. 첫째가 통째로 갖다주는 월급으로도 팍팍하다.


“성미야, 내는 공항이 좋다. 깨끗하니 반짝반짝해서 좋고, 부자가 많아 좋고, 내 먹고 살게 해주니 좋고…”


매일 수도 없이 올랐다 내렸다 하는 비행기를 보며, 금옥 여사는 나이 만큼이나 많아진 한숨을 쉰다. 복도 건너에 일하는 성미가 묵묵히 듣고 있다.


“그래도 이렇게 일하게 해주는게 어디고? 집에 가봐라, 늙은 영감이 해주는 밥 한 숟가락 얻어먹는 것도 재미지다. 니도 고만 고르고, 오십 전에 가라. 내는 너무 늙어서 갔다 아이가.”  

“무슨 말씀이세요, 오십 되려면 아직 많이 남았어요, 호호호”

“저, 저, 지랄 봐라, 뭐가 많이 남았노, 낼모레지. 니도 벌써 나이 묵었다고 이 꾸석탱이로 밀려났지 않았나. 저기 저 앞에 사람들 많은데는 다 어리고 이쁜 애들한테만 준다.”

“아이구, 언니도 참, 청소가 앞이면 어떻고 뒤면 어때요? 안 짤렸으면 됬지. 그리고, 저는 우리 딸 때문에 어디 못가요. 엄마가 고생해 혼자 키웠다는게 낫지, 선자리 나가서 엄마가 재혼해서 새아빠 있다고 하면, 괜히 흠 되요. 가뜩이나 외동 딸이라, 요즘 시어머니들은 그런것도 부담스러워 한대요. 장모 모시고 살까봐. 그래도 선생님만 되면, 선은 줄줄이 들어 오지 싶은데…”


성미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엿보인다. 자랑스러움, 아쉬움, 애틋함, 슬픔… 이제야 저 기분을 조금은 알것 같다. 얻어진 자식에게도 맘이 아팠다, 자랑스럽다, 하는데, 하나뿐인 친딸이야…


“그래, 그렇게 사는 거다. 그럼 조금 더 기다렸다가, 딸래미 결혼 시키고 나면 니도 바로 가라. 니 인생 살아야지. 저기 가까운 데라도 비행기 태워 줄 놈한테 가라.”

“아유, 그놈의 비행기…”


하하하… 흐흐흐… 허탈한 웃음이 곧 눈물이 된다.


“우린 팔자가 왜 이라노? 내는 평생 많은 거 바란적도 없다. 그저 저 오막살이 같은 째만한 공구리 집 팔아버리고, 저래 확 뚫린데 공항 옆에 아파트에 살고 싶다. 우리 둘째는 아프니까 데리고 살아야하고, 그러니까 화장실만 두개면 된다. 죽기전에 아파트 한번은 살아봐야지, 안 그렇나? 아들들 보면, 어떤때는 왠 복이냐 싶게 좋다가도, 어떤때는, 내 자슥도 아닌데 이게 뭔가 싶고, 내가 이거뿐이 안되니 어쩌겠나?”

“….”


땀을 닦는 척 성미가 눈물을 훔친다. 기다란 걸레봉이 자꾸만 같은 곳을 닦고 있다.


“니 맘 안다, 왜 모르겠나,”


금옥 여사는 혼잣말처럼 중얼 거린다.


“나도 너랑 똑같이 살던 적이 있었다. 왜 내만 이런지, 앞으로는 어떨지, 죽을 용기가 없어 꾸역꾸역 하루씩 살았다. 니는 딸이라도 하나 있재, 내는 아무도 없었다. 정 붙일 강아지라도 한 마리 있었으면 좀 나았을까, 그래도 지나면 다 괜찮아진다. 꾹 참으면 다 살아지더라.”


성미가 서둘러 청소 도구를 챙겨 자리를 뜬다. 뒷모습에 대고 목청을 높인다.


“누구는 이래 살고싶어 사나? 그 짠돌이 영감이 좋아서 사는 줄 아나? 그 성질머리 못된 거, 내 떠나면 어찌될까봐 살아주는 기다. 아들들 봐서 내 참는 거지, 혼자 살면 뭐, 내 돈벌어 내 입 하나 못 먹여 살리나? 그놈의 영감탱이, 그래도 내한테 고마워 하는거 아니까 이때까지 살아주는 거지!”


빈 복도에 금옥 여사의 목소리만 남았다. 흘린 땀방울만큼이나 바닥이 깨끗해졌다. 어께 뻐근한 거야 이제 시원하다 싶을 정도고, 손목도 시큰하지만 후련하다. 이정도 되면 아마 청소 중독인 것 같다. 간단히 씻고 문을 나선다. 철컥. 출퇴근 카드 기계 소리에 기분도 좋아진다. 저녁 비행기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로 로비가 또 바빠졌다. 복잡해지는 공항이 가슴 찡하게 아름답다. 오늘은 누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나.  


‘좋겄다, 돈도 많고…’


남편의 낡은 차가 보인다. 오늘은 다시한번 투정을 부려볼까. 남들 다 가는 제주도 한번 가자고 할까. 부산도 비행기 타고 가면 뭔가 다르겠지. 운전하는 남자를 만나니 대한민국 팔도를 꼭 운전해서만 간다. 멀미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촌스러워 그런다고 했다. 그래, 촌시러워서 차타면 멀미한다. 그러니까 고급진 비행기 한번 타보자… 목구멍까지 가득 차 오르지만 남편에게는 말하지 않는다. 부부 사이에도 자존심이 있다. 내가 번 돈이지만, 저축을 하는 건 남편이고, 그 돈을 모아 여행을 보내주는 것도 남편 일이고 권리인 걸로 해 준다. 구차하게 보내 달라고 조르지 말자. 코딱지만큼 번다고 생색 내지 말자…     


“오늘도 사람이 많네, 벌써 휴가철인가…”


굉음을 내며 떠오르는 비행기를 내다보려 갸우뚱 머리까지 기울이고 창밖을 본다.


“맨날 보는 비행기를 뭘 뜰 때마다 쳐다봐?”

“비행기를 보나요, 그 안에 사람들을 보는 거지. 저거 타고 놀러가는 사람들.”

“또, 또, 또, 벌 수 있을때 한푼이라도 더 벌 생각은 안 하고 그저...”

“팔다리 건강할 때 한 번 놀고 오는 것도 괜찮아요. 나이 더 먹으면 방바닥에 가만히 누워 떠주는 거 받아 먹기도 힘들다니까요.”

“……”


크게 한번 멋적은 헛기침을 하고 대꾸가 없다. 이거 왠일? 평소같으면 주책 중에 상주책이라고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을 타이밍인데?


“왜요? 오늘은 당신도 비행기가 땡겨요?”

“내가 무슨, 허험.”


노을이 진다. 관제탑 너머로 구름이 물든다. 오르고 내리는 비행기처럼, 입 꼭 다문 남편을 추궁하는게 재미가 쏠쏠하다. 거무스름한 입가에 슬슬 미소가 번진다.


“저봐, 저봐, 웃네, 우리 신랑이 웃고 있네, 아이고, 나 이제 비행기 타나보다, 어마야 좋아라.”

“흐흐흐흐.. 아니, 비행기는 무슨? 무슨 병이야? 비행기 못 타 죽는 병?”

”그라요, 나 병 걸려서 치료 해야되니까, 죽기전에 한번만 태워줘봐요? 내 이제 아파트 같은 건 바라지도 않을께. 우리 주제에 뭔 아파트가 필요하노? 그 거북이 등껍질만한 집 하나면 됬으니까, 비행기 한번만 타요, 응?”


남편이 웃는다. 금옥 여사도 따라 웃는다. 어쩐지 올해는, 꼭 한번 탈 수 있을 것 같다. 제주도를 갈까? 내일은 출근 전에 매장에 들러야 겠다. 다 늦은 황혼 여행에 입을 커플 티라도 미리 골라놔야 겠다.



*사진은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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