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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소운 May 10. 2021

하얀 단무지

무릎 아픈 할머니의 우리 동네 김밥집

“인영아, 라떼 사왔다.”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주방으로 향한다. 당당당당당… 어김없이 들려오는 빠른 칼질 소리. 난방 없이도 후끈한 불 옆의 유부 볶는 냄새는 단연 최고다. 하루 장사를 마무리하는 지금, 마음은 제일 편하다.

“밥 먹었어? 늦었네?”

인영이 앞치마에 손을 닦고 커피를 받아든다. 바짝 올려 묶었지만 목선을 타고 내리는 머리카락 몇 가닥이 역시, 예쁜 여자다.  

“게임쳐서 짜장면 먹었지. 오늘은 유부가 많네? 예약 있어?”

“아침에 40개. 준비 해 놓고 잘려고.”

“40개야 금방이지! 난 뭘 할까? 무우나 잘라 놓을까?”

창규가 손을 씻는 사이 할머니가 가스 불을 끄고 돌아섰다. 면티가 땀에 흠뻑 젖어있다. 좁아터진 주방에 셋이 바글거리긴 하지만, 공짜 일꾼이 고맙다.

“그 비싼 커피는 왜 자꾸 사 와?”

“인영이 저녁이요. 뺄 것도 없는데 맨날 다이어트한다고...”

창규는 능숙하게 큰 도마 앞에 서서 칼부터 간다. 어른 한 뼘도 더 되는 긴 칼날을 슥슥 쇠꼬챙이에 대고 내려 빗는다. 고무 다라 한 통 가득 쌓인 무우를 나누어 옮긴다. 깨끗하니 잘 씻겼다. 위 아래를 미련없이 탁탁 쳐내며 이리저리 큰 칼을 놀린다. 금새 가지런히 잘라진 조각들이 플라스틱 통으로 우수수 떨어진다. 오늘은 아마 큰 통 다섯개는 나올 것 같다. 길이가 맞지않는 짜투리는 새콤한 무채가 되도록 가늘게 채로 썰어 다른 통에 보관한다. 할머니가 안 보는 척, 창규를 지켜본다. 좀 촐싹거려도, 일할때는 열심이다.


<하얀 단무지>

차양대신 둘러싼 비닐 때문에 언뜻보면 김밥집이라기보다는 포장마차같다. 프렌차이즈 김밥집에 비하면 영 궁상이다. 번쩍거리는 지하철역 주점들을 지나 경사진 언덕배기를 오르면, 약수터가 있다. 옛날옛날 한 옛날에, 큰 시험 앞두고 유생들이 떠다 마셨다는 '썰'이 있어 한때는 수험생 부모들이 많이 몰렸었지만, 요즘은 수질검사니 뭐니 따지는 게 많아 한적하다. 운동가는 동네 사람들이나 왔다갔다하는 이 약수터 입구에서, <하얀 단무지> 는 무려 이십년을 버텼다. 메뉴는 김밥 몇 가지와 어묵, 떡볶이가 전부이고, 기름통 놓을 자리가 없어 그 흔한 튀김도 못해봤다. 서로 등을 비비고 앉아야 할만큼 좁은 공간에 간신히 테이블 3개를 낑겨놓고, 메뉴판 대신 검정 매직으로 갈겨 쓴 색도화지 몇 장이 붙었다. 가끔 어린 애가 있으면 들어와서 먹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길에 서서 먹거나 호일에 감아 쥐고 제 갈 길 간다.


매일 아침 마을 버스는 할머니네 김밥 냄새가 가득하다. 출퇴근, 등하교, 소풍… 칠십 넘은 주인 할머니는 공장에서 나오는 노란 단무지가 아니라 손수 절인 하얀 무우를 넙적넙적 썰어 쓴다. 설탕, 소금, 식초를 물에 넣고 팔팔 끓이다가 고추냉이를 한 꼬집 넣는다. 명품이다. 쌈무처럼 익숙한 상큼한 맛에 시원함이 더해져 침이 돈다. 아이들 먹을 김밥에는 통닭무처럼 달짝지근한 무채를 쓴다. 양념 잘 한 흰밥을 손바닥만한 김에 길죽히 깔고 무채를 올린다. 옵션으로 재료 두개를 고르면 또르르 앙증맞게 말아 내놓는다. 역시나 시금치, 계란, 햄이 최고다. 보잘것 없는 김밥이어도, 동네 꼬마들이 제일 좋아하는 게 이 하얀 단무지 김밥이다. 유치원 버스 시간에 맞춰 모여드는 젊은 엄마들을 보면 딱 인영이 또래인 것 같다.

“우리 손녀님은 뭐가 모지라 남의 애들 김밥이나 말아주고 있는지, 참, 이해가 안 가.”

“내가, 솜씨가 좋아서 이 동네 애들 다 먹여 살리는 거야.”


온 종일 붙어 일하니 조잘조잘 심심하지 않아 좋기도 하지만, 한켠으로는 이제 그만 짝을 만났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대학로가 생기기 전 그 옛날, 동숭동 빈민가 시절부터 인영이와 둘이 김밥을 팔았다. 리어카가 있었으면 번데기나 아이스크림, 아니면 냉차라도 밀고 다녔을텐데, 사실 아이를 데리고 다녀야 했기에 차라리 머리에 이는 바구니가 수월했다. 식사 시간을 잘 맞춰 파랑새 극장 앞에 앉으면 좀 쉬웠지만, 경비 아저씨들의 질책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그렇다고 아이도 어린데 마냥 걸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길 건너 서울 대학병원 앞 이었다. 해뜨기전부터 부지런히 만든 김밥을 바구니 한가득 담는다. 흰수건 한장 덮어 수위실 앞 담벼락에 쪼그리고 앉으면, 의사인지 간호원인지, 7시 교대 시간 전후로 들고 나는 사람이 많다. 구내 식당 짜장면이 팔백원 할 때 였지만, 그렇게 이른 시간에는 열지 않았다. 가끔씩 인영이에게 깨끗하게 입은 옷가지나 학용품을 가져다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거스름돈을 안받거나, 오백원, 천원을 용돈이라며 아이 손에 쥐어주기도 했다. 그렇게 도움으로 키운 인영이가 어느새 서른을 본다.


“너 그땐, 커서 간호원한다 그러더니...”

“부러워서 그랬지. 뭐 사먹고 싶어서... 추운데 거지처럼 쪼그리고 김밥 파는 거 말고, 멋있게 직장 다니면서, 내 돈 내고 사먹고 싶어서.”

둘이 버틴 가난은 혹독했다. 이유식은 커녕 물에 불린 밥 한숟가락밖에 줄 게 없었다. 남들 다 하는 군것질 대신 단무지 조각을 들고 쪽쪽 빨던 아이... 밥상머리 전쟁은 늘 단무지 하나 뿐인 김말이 밥 때문이었다.  

“니가 그때 잘 못 얻어먹어서 키가 작아.”

덜그럭덜그럭 빈 그릇을 정리하며 중얼거린다.  

“내가 뭘 못 먹어? 할머니 닮아서 원래 작은 거야. 대한민국에서 김은 내가 제일 많이 먹었을 걸? 지금까지 먹은 거 다 모아봐, 여기서 창경궁까지 아스팔트도 깔아.”

할머니가 웃는다. 잘 컸다. 장사 돕는다고 학교를 그만뒀을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지만, 이제 뭐든 척척 해내는 게 든든하다. 인기도 좋았다. 한집 건너 하나가 자취생들인 동네 장사에서, 다른 가게의 반토막도 안되는 <하얀 단무지> 는 늘 손님으로 복작거렸다. 학교 가까이의 분식집보다 싸고, 아무래도 여리여리하니 예쁜 인영이 덕분일 거다. 저 중에 짝이 있을까. 인사성 좋은 젊은 애들을 볼 때면 유달리 마음 써 주곤 했지만, 졸업하고 나면 바로 발길을 끊기에 섭섭함도 컸다. 쥐꼬리만한 주방에서 밥이나 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연애 거는 놈이 없다. 그러길래 적당히 하고 진즉에 조무사 학원이라도 가라고 했는데, 관심도 없다.


“조무사, 요양 보호사, 뭐 그거 따고, 병원 취직해서 시집 잘 가라고? 관둬, 난 음식 할거야. 제일 잘 하고, 제일 좋아하는 걸 해야지.”

“뭘 해 본적이 없으니 이거밖에 없지? 다른 집 애들처럼 네가 학원을 가보길 했냐, 취직을 해보길 했냐.”

“요리 배웠잖아, 요리. 할머니한테 배운걸로 이제 돈만 벌어야돼. 3년 안에, 우리 진짜 식당같은 식당을 차리자. 할머니랑 나랑, 창규랑.”

“저 놈을 뭐에다 써? 아직도 어린애처럼 떼지어 다니면서 내기 당구나 치는 놈을?”

그새 무우 손질을 끝낸 창규가 쓰레기를 담으며 실실 웃었다. 눈가에 살짝 접혔다 펴지는 애교 주름… 도저히 야단칠 수 없게 만드는 눈웃음이다.

“종일 일하고 잠깐 쉬는건데 뭐. 그래도 여기 맨날 와서 뭐라도 하잖아.”

창규 놈은, 맘에 들었다 안들었다를 하루에도 몇번씩 한다. 상냥하니 귀엽고, 손도 빠르고 음식도 잘하지만, 사람을 너무 좋아해 탈이다. 인영이 좋다고 따라다니는 지가 벌써 까마득해도, 중간중간 이 여자, 저 여자 다 만난다. 핸드폰이 쉴 틈 없다.

“더 나이들기 전해 검정 고시라도 좀 해보던가 하지, 중학교도 안나와서 어떻할라구?”

“할머니는 참, 중학교 중퇴나, 고등학교 중퇴나? 식당 하는데 학교가 왜 필요해?”

“너 혹시라도 창규 저 놈하고 연애하면 안돼, 알지? 그냥 친구로만 지내?“

“아이고, 아니라니까? 쟤는가족이야, 남매! 아님, 사촌 같은 거. 그리고 할머니, 솔직히 요새, 쟤만큼 부지런한 애 별로 없어. 짠돌이고... 지 장사 할려고 돈 엄청 안 써.”


사실이다. 겉으로야 건들건들 중국집 배달원이지만, 어깨너머로 주방일도 많이 배웠다. 새벽에는 친구 도매상을 봐주고, 짬짬이 물건도 배달해 쏠쏠하다. 아무리봐도 시간이 없을텐데 쪼개고 쪼개어서 꼭 가게에 들른다. 술담배 안하는 것도 칭찬 할 만 하고... 그래도 할머니 눈에는, 여전히 슬쩍슬쩍 눈썹에, 입술에, 바르고 그리고… 썩 내키지 않는다. 아무리 세대 차이래도 남자 놈이 화장까지는 못 봐주겠다.    

“아이돌 가수 한다고 시험보는 거, 이젠 안하지?”

“벌써 옛날에 포기했어. 돈 좀 더 모으면 우리랑 쳐서, 학교 앞 술집이나 당구장 하면서, 야식 배달을 같이 하면 잘 될 거 같애.”

“처음부터 너무 크게 차리면 망해. 분식집 정도로 시작해야 안전하지.”

창규가 쓰레기를 싹 갖다 버리고 바닥청소를 시작한다. 덕분에 뒷정리를 빨리 마쳤으니 얼른 다리 뻗고 쉬고 내일 일찍이 김밥을 싸자. 나이는 못 속인다고, 진이 빠진다.


“커피 먹을래?”

“그래, 얼른 줘. 좀있다 동대문에 트럭 들어온다고 잠깐 오래. 내일 것도 배달이지? 여기 병원? 내가 갈께.”

인영이 믹스 커피에 뜨거운 물 반, 찬물 반으로 타서 내밀었다. 고맙지만, 잠 잘 시간까지 뺏기 싫다.

“됐어, 택시 탈 께.”

“6시 반이면 되지? 2시쯤 끝날거니가 잠깐 자고 나오면 딱 맞아. 오빠가 다 해줄께, 으응?”

“세달 더 살고 오빠냐? 얼른 가. 피곤해.”

후루룩 단숨에 커피를 들이붓고 떠밀린다.

“할머니, 얘 봐요, 다 부려 먹었다고 쫒아내요.”

“그러니까 쫒겨나기 전에 니 발로 가. 피곤한데 잠깐이라도 잠이나 잘 걸, 뭐 한다고 맨날 와?”

“할머니 보러 왔지요. 저 반갑잖아요? 안오면 보고 싶고... 아, 밀지마, 간다니까, 할머니, 내일 올께요.”

시끌시끌 문이 닫히고 오토바이가 멀어진다. 그제서야 벗은 앞치마를 탈탈 털어 의자에 걸고 티비를 켠다.


“집에 안 가?”

“너 얼른 들어가. 난 여기서 자야지, 아이고 힘이 들어서...”

할머니가 주방 한쪽 커텐을 열고 신을 벗는야트막한 평상에 1인용 장판 하나가 간신히 깔린다. 납작 눌린 쌀겨 베게를 툭툭 쳐 키운다.

“집에 좀 들어가. 불편하게 맨날 여기서 자?”

“왔다갔다하는 게 더 구찮어. 넌 얼른 가서 자. 내일 일찍 일찍 일어나야.”

“다리 아퍼서 그러지? 아유, 그러니까 아까 일찍 가랬잖아. 혼자해도 된다니까.”  

인영이 궁시렁 거리며 옆에 앉아 다리를 주무른다.

“됐어, 그만하고 가. 문 잘 잠그고 자.”

삐죽거리는 아이를 떠밀어 보내고서야 편히 눕는다. 살 것 같다. 수십년을 주방에서 보냈다. 남편 죽고 처음 들어간 고향의 절간에서, 고시생들의 세 끼 식사도 엄청났었다. 아이들까지 받아주신 덕에 돈은 많이 못 받았어도, 굶기지 않는 걸로도 참 다행이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마을로 나왔다. 부엌일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다행히 큰 아이는 기숙사 딸린 산업 고등학교로 가고, 작은 애만 데리고 있으면 되었다. 당시에는 흔하던 그저그런 동네 다방 주방일을 하며 먹고, 자고... 둘째는 레지언니들의 귀여움을 듬뿍 받으며 컸다. 누군가는 늘 아이와 놀아주고 있었으니 고마웠다. 아이가 메니큐어를 바르고 화장을 해도, 밤새 볼펜에 젖은 머리를 말아 꼬불꼬불하게 만들어도, 어쩌다 한번씩 배달 나가는 스쿠터 꽁무니에 앉아 따라 다녀도, 설마 그런 일이 생길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첫째가 갑작스런 사고를 당했을 때, 작은 아이와 처음으로 떨어졌다. 백방으로 수소문 했지만 수술비를 마련하지 못해 그대로 아이를 보냈다. 장례도 없이 화장해서 뿌리고 반쯤 미쳐 다방방으로 돌아오니, 작은 아이가 없었다. 엄마 찾아 나갔을거라고 했다. 누구는, 취직 한다며 다방 손님을 따라 서울로 갔다고 했다. 경찰에 알렸지만, 이미 찾을 수 없었다. 겨우 중학생이던 둘째를 그렇게 잃어버리고 몇 년이 흘렀다. 어린 아이로 기억했던 둘째가 갓난 아이를 안고 나타났다. 잠깐만 키워달라고 했다. 걸음마 떼고 기저귀 떼면 데려 간다고 해놓고, 단 한번도 소식이 없었다. 애당초 기대도 안했기에 놀랍지도 않았다. 옷을 만드는 하청 공장에서 인영이를 업고 식당일을 했다. 종일 먼지가 가득차 있어서 코가 많이 막혔지만, 그래도 주방 안쪽에 붙은 두평 남짓한 골방에서 공짜로 살았다. 그나마 IMF로 공장마저 문을 닫아 먹고 살 길이 막막해, 김밥 장사를 시작했다.        


전화 한통 없던 딸은, 아이가 중학교 가던 해에 딱 한 번, 어찌알고 창신동 판자촌에 찾아와 돈 이십만원을 놓고 갔다. 잘 살고 있다고 했다. 나쁜 년, 부모 버리는 나쁜 년, 자식 버리는 더 나쁜 년… 너는 둘 다 버렸으니 아주 최고로 나쁜 년이다… 도망치듯 멀어지는 뒤통수에 욕을 쏟아부었다. 속이 후련해 질 때까지, 엉엉 울었다. 서운해서가 아니었다. 바라는 게 있어서도 아니었다. 미운만큼 미안했다. 뭘 하고 사는지, 어디에 사는지… 그래, 안 기다린다, 다시는 보고싶지도 않을거다… 종일 학교에 있던 인영이는 제 엄마가 왔던 것도 알지 못했고, 지금까지 살면서도 한번도 엄마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쪽방에 살았어도, 빛도 안는 창고방에 살았어도, 할머니 품에 안겨 늘 고맙다, 괜찮다 하며 웃었다.


똑똑… 유리문을 두드린다. 이 시간에 올 사람은 한 명 뿐이다.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 잠긴 문을 열었다.

“퇴근이 점점 늦어? 저녁은?”

“먹었어요. 들어가려다가 티비가 켜져 있길래 들렀어요. 주무신거 아니죠?”

옆 골목에 사는 대학병원 정 선생이다. 학생 때 부터 봐 온게 벌써 몇년인지…

“아냐, 잠이 안 와서 그냥 켜 놨어. 중얼중얼 소리 좀 내라고...”

“오늘은 무릎 어떠세요? 찜질 좀 해드릴께요.”

“아이고, 놔둬, 피곤한데, 그냥 앉아.”

청년은 벌써 찬장을 열고 고무 주머니를 꺼내 뜨거운 물을 담는다. 수건을 무릎에 대고 주머니를 얹었다. 두 손으로 꾹꾹 발바닥을 누른다.

“저 없으면 안하시잖아요. 다 알아요.”

“일 끝나면 얼른 눕고 싶지 이거 하게 되나. 푹 자고 나면 아침에는 또 좀 괜찮고 하니까.”  

“내일 아침 도시락 때문에 바쁘셨죠? 힘드실까봐 다른데서 주문 할까 하다가..”

“아냐, 아냐, 내가 해야지. 매번 고마워, 정 선생 덕분에 병운에서 주문이 많이 들어와.”


그는 인턴 시절부터 모임이 있을때마다 할머니네서 김밥을 주문해주었다. 마진은 얼마 안 되어도 덕분에 병원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졌다. 바자회에 내놓을 반찬거리을 주문하기도 하고, 살림하는 엄마 간호사들은 정기적으로 김치를 부탁한다.

“할머니, 저 다음달에 보라매 병원으로 옮겨요. 거기 남을 것 같아요.”

“아이구, 잘 됐어, 가고 싶어하더니 면접을 잘 봤나보네.”

“지금 그 쪽에 집을 알아보고 오는 길이에요. 이사를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가야지, 맨날 이렇게 늦게 끝나는데, 병원 옆에 가깝게 살아야지. 잘됐는데, 섭섭하네. 요 앞에 병원 차리면 우리집을 직원 식당으로 쓴다더니, 안되겠네? 허허허”

창규의 아이디어였다. 정선생이 개업만 하면 점심은 책임지겠다고 큰소리쳤다. 요즘도 어찌 알고 당직날 맞춰 바리바리 도시락을 싸들고 병원을 들락거렸다. 의사 형님을 소개 해 준다며 술집에서 여자들 전화번호를 받아오기도 했다. 철없는 놈이라 욕을 먹어도 친형제처럼 잘 지냈다.

“창규 사업 아이템이 하나 줄었네요. 대신 할머니, 식당 차리면 꼭 올께요.”

“에이구, 무슨, 어린 애들이라 언제 차릴까 싶어. 하던 데 들도 여기저기 문 닫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

손끝으로 고무 주머니를 만져본다. 처음보다 온도가 조금 내려갔다. 수건을 치우고 주머니만 다시 무릎에 얹었다. 뜨끈하니 좋다. 종아리를 주무른다.  


“인영이요, 아직 안 늦었는데, 공부 더 안 한대요? 병원 쪽 아무거라도 하면, 개업 한 선배들 많으니까 자리 하나 해 줄 수 있는데...”

할머니가 손을 저었다.

“공부는 무슨... 한다고 해도 그렇게 아무나 소개 시키고 그런거 아니야. 제대로 배우고 일 잘하는 좋은 사람을 써야지, 부탁으로 막 맡기면 되나, 그것도 아픈 사람들 보는 병원을... 그리고, 쟤는 요리가 딱이야. 맨날 메뉴 연구한다고 바빠. 알잖아?”

인영이가 얼마나 똘똘한 아이인지, 잘 알고 있다. 사업 계획만 봐도 상당히 희망이 있어 보였다. 아무리 녹초가 되어도 식당 얘기만 나오면 눈이 다시 반짝반짝해진다.

“창규, 일 잘 하죠? 빠릿빠릿 하고…”

“그렇지, 성격 좋아. 힘들게 컸어도 모난 데 없고, 돈 아낄 줄 알고… 친한 사람이 많아서 단골이 많을거야.”


“할머니, 예전에요, 제가 인영이 좋다고 그랬을 때, 안된다 그러셨잖아요, 공부나 하라고…”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웃었다.

“그래, 그랬었지. 삼수씩이나해서 의대 들어갔는데, 무슨 연애냐고, 공부해서 의사되면 다시 오라 그랬었지.”

“인제 의사 됬는데, 아직 인영이 좋다 그러면 어쩌실래요?”

“어이고, 됐어. 인영이도 참하고, 너도 좋은 사람이지만, 둘이 오빠 동생이지, 부부는 안돼지. 누구든 옆에 나란히 서서 보기좋게 어울려야지, 옆 사람 깎아먹는 건 안좋아.”

“제가 괜찮다면요? 만약에, 제가 인영이 많이 좋아해서, 진짜로 사귀고 싶으면…”

“아이고, 아직도 참 철이 덜 들었다. 네가 고아도 아니고, 부모님 멀쩡히 살아계시고, 얼른 짝 찾아주고 싶어 여기저기 좋은 데 알아보실텐데, 말이 되나. 어리고 귀여운 거는 지금 잠깐이지, 금방 질려. 사람이 비슷, 비슷해서 같이 공부하고, 같이 일하고, 그게 얼마나 좋아?”

“그때나 지금이나 퇴짜네요. 그때는 학생이라 안되고, 지금은 의사라 안되고?”

“그래, 너는 내가 퇴짜 주는 거야. 너무 잘나서 퇴짜지. 우리 인영이가, 남들 보기에는 아무것도 없어도, 나한테는 금쪽같은 손녀인데. 어디가서 누구 눈치 보고, 기죽고... 상처받아 눈물 쏟는 건 내가 못보지. 어떤 놈을 데려와도 당연히 정 선생보다 못한 거 알지만, 그래도 나는, 인영이를 공주로 떠받드는 놈한테 보낼거야.”


“창규는, 괜찮으신 거죠?”

“아유, 그럼, 괜찮지. 지금은 좀 가벼워도 지 식구 생기면 다 철 들어. 속은 깊은 애야. 욕심 부리자면 눈에 안 차도, 인영이한테 하는 걸 보면 그한 애 없어. 그렇다고, 애들한테는 아무말 하지마. 아직은 지켜 보는 중이니까. 아직은 결혼하자는 얘기도 없고, 아마, 몇년 더 지나야 맘이 좀 통하지 싶어.”

“그럼요, 아직 멀었죠. 할머니, 계속 튕기셔야 되요. 짜식이 어려서, 자꾸 밀어내고 눈치밥 줘야 인영이 귀한거 알아요.”

“크흐흐, 아, 귀한 거 알지, 이 핑계, 저핑계, 하루에도 열두번씩 들려서 얼굴 보고 가는데. 지는 꼭 커피믹스 타먹으면서 인영이는 라떼인지 그 비싼거 사가지고 와. 맛도 똑 같은걸 돈주고.”


“아, 부러운 자식. 24시간이 모자라는데, 연애도 하네.”

“너도 연애 좀 해. 같이 공부하는 여자 의사 없어?”

“제가 좀 재미가 없잖아요, 인기 없어요.”

“아직 젊어서 그럴꺼야. 결혼 할 나이 되면 너같이 진득한 사람 찾는다고. 지금은 차라리 바빠서 연애 못하는게 나을수도 있지. 아이구, 인영이 봐? 창규가 매일 저만 보고 저러니 얼마나 우습게 아는지. 그 놈이야말로 좀 튕기고 맘에 없는 척도 하고 그래야 되는데, 간 쓸개 다 빼놔서 찬밥이야.”

“열번 찍으려나 보죠, 넘어올때까지.”

“입으로는 수천번도 더 찍었어.그래도 여지껏 사귀자는 말을 못해. 맨날 커피 사들고 오지말고, 나가서 마시자 하면 될 걸.”

“나가서 먹으면 두 잔 사야 되잖아요."

“허허허, 그래서 못하나? 에이고, 모자란 놈. 좋을 때다. 정선생도 잘 찾아봐. 이 여자다 싶으면 데리고 와, 내가 밥 한끼 해 줘야지.”

“아이고, 제가 좋은데로 모실께요. 주무세요, 가볼께요. 저 없어도 가끔이라도 찜질 하세요, 예?”                 

정선생이 돌아가고 나서야, 티비를 껐다. 손전등 하나를 켜놓고 잠을 청한다. 어린 인영이는 늘 작은 불 하나를 켜놔야 잠이 들었다...


새벽 다섯시, 인영이 문 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새벽 다섯시… 오늘따라 팔다리가 무거운 게 바로바로 일어나지지를 않는다. 요즘들어 가끔씩 그렇때가 있지만, 그래도 오늘은 바쁜 날인데…

“할머니, 더 자. 밥만 먼저 올릴거야.”

그래, 그래… 잠깐 졸고 깨니 어느새 계란까지 다 부쳐놓고 김밥을 말고 있다. 역시 손이 빠르다. 얼마전에 인영이가 새로 시작한 매콤한 유부 김밥이다. 요즘 사람 입맛은 요즘 아이가 잘 아나보다다. 부스스 일어나 테이블로 다가가 칼을 잡고 앉았다. 이미 작은 산처럼 쌓여있는 먹음직스런 김밥을 반듯반듯 썰어 깨를 뿌린다. 한줄씩, 미리 잘라 놓은 호일에 감아 종이 박스에 담는다.  

“의사 선생님들 드실 건데 포장이 이래서 못쓰겠어. 우리도 좀 예쁜 걸로 바꿔볼까?”

“갑자기 왜? 싸니까 우리한테 시키는 건데, 그런거에 돈 나가면 가격을 올려야 되잖아.”

“그래도 이게 뭐니, 챙피하게? 대학병원 들어가는 걸…”

듣고 있던 인영도 마음이 찜찜해진다. 상호도 찍혀있지 않은 싸구려 나무 젓가락과 냅킨… 속상하지만, 아직은 그런거에 쓸 돈이 없다. 명함도 없어 전화번호 찍힌 스티커만 몇 장 붙였다.


“예쁜 인영이 벌써 일어났쩌? 오빠 왔다.”

“새벽 바람 맞고와도 잠이 안 깨냐?”

“다 깨고 커피 사왔다. 자, 니 라떼. 맨날 내가 첫 손님이야.”

“일하는 아가씨가 좋아하겠네?”

“아냐, 남자애야. 얘는 무슨, 내가 아가씨 보러 이 새벽에 거기 가는 줄 아나?”

바삐 김발을 굴리는 인영이 옆에 라떼를 내려 놓고, 창규는 믹스 커피 두 봉을 컵에 쏟아 붓는다. 찰랑찰랑한 뜨거운 물에 흔들어 녹이고, 어김없이 찬물을 섞는다. 성질 급한 놈이 먹기에 딱 좋다.

“할머니, 인영이 진짜 이쁘죠? 일도 잘 해, 부지런해, 거기다 저렇게 이쁘기까지!”

“새벽부터 뭘 잘못 먹었냐, 잠을 못 잤냐?”

“아니요, 아까, 현수 누님네 물건 가지러 동대문을 갔는데요, 걸그룹 준비한다고 여자애들 몇 명이 돌아다니더라구요. 이쁘다고 사람들이 사진 찍고 난리였는데, 제가 보기에는 인영이랑 비교도 안되는거 있죠.”

“꿈도 꾸지마라, 인영이 너한테 안 준다.”

“아이, 그런 거 아니구요, 그냥, 인영이 예쁘다구요. 인영이를 탈렌트 시키고 내가 매니저 할까요?”

“실없는 소리 고만하고, 배달 준비 해.”


창규가 단숨에 커피를 비우고 반찬을 챙긴다. 단무지와 무채를 나눠 담고, 포장 랩을 쭉쭉 잡아당겨 두겹으로 단단히 싼다. 자로 잰듯 정확하게, 순식간에 끝난다. 슬쩍 인영을 쳐다보지만 별 반응이 없다.

“할머니, 쟤 봐요. 아침부터 커피 사다 줘, 이쁘다 칭찬해 줘, 배달 준비 쫙 해줘... 그래도 저게 커피만 홀랑 받아먹고 웃지도 않아요. 지가 무슨 얼음 공주도 아니고, 쟤는 그냥 얼음이에요.”

“인제 알았어? 거기 국물이랑 종이 컵 챙겨. 김밥 다 됬어.”

인영이 박스를 들여다보며 마지막 점검을 한다.

“창규 너는, 뭐라도 자격증을 하나 따지 그래? 요리 잘 하니까, 시험봐서 요리사 해라.”

“시험반 비싸요, 할머니. 아무나 못해요.”

“아니, 그, 일식은 돈을 많이 준다며? 따고 나서 더 많이 벌면 되지.”

“저는 일식말고, 야식을 할거에요. 오토바이 있으니까 배달 다니면서 낮에는 월급 받고, 밤에는 내 장사하고.”

“밤낮 일하고 잠은 언제 자? 조리사는 좀 쉽다던데, 요 앞에 병원식당 같은 데 들어가면 좋잖아.”

“그것도 이론 시험봐야되요. 아, 전 글씨 읽으면 진짜, 멀미나요.”

“청개구리 같은 놈, 다 싫지? 서른 전에는 자리를 좀 잡아야지, 언제까지 배달을 다녀?”

인영이 걱정에 괜히 창규에게 잔소리 해본다. 남매처럼, 애인처럼, 신혼부부처럼… 저렇게 매일을 함께 보낸다. 도시락 40개에 반찬, 국물, 종이컵, 젓가락, 냅킨… 꼼꼼히 챙겨 들고 나가는 둘을 지켜본다. 쌍수들어 환영할 일은 아니지만, 뭐, 싫은 정도는 아니고... 보고 있으면 귀엽다. 아직은, 마음 턱 놓고 밀어주기에는 걱정이 앞선다. 남들도 이렇게 손녀 걱정하며 살겠지.


어린 아이가 자랐다. 노란 단무지 싫다며 볼에 바람을 빵빵하게 넣고 삐져서 등돌리던 그 작은 아이가 저렇게 컸다. 지나봐야 알겠지만, 오늘도 어제처럼, 그제처럼,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라며 살아간다. 뭐든 해 봐야 알겠지. 지가 살아봐야 알겠지… 피곤하다. 할일이 태산이지만, 오늘은 다 접고 저 둘에게 가게를 맡겨볼까. 쫑알쫑알 아웅다웅… 종일 시끌시끌하니 사람사는 것 같겠지. 이렇게 오래오래, 한발치 뚝 떨어져 지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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