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3
진심, 변심, 괘씸
6.3.1 앞집 - 롤케익
조팀장과 함께 계단으로 올라오는 서장.
"그러니까, 필요하면 제대로 협조 요청하고 데려가는 건 몰라도, 저쪽 팀은 싫지. 서로 감정 싸움 하지 말라고."
"그러지말고, 서장님. 두 팀 통합하면 안됩니까? 어차피 걔들이 시작해도 큰 건 우리한테 넘기잖아요. 같은 일 두번 하는 것 보다 처음부터 같이 하는게.."
"시범 삼아 한번 해보자는 거잖아. 걔들도 조금씩 사건 들어오고 있고, 조금 더 지켜봐. 너네 뿐 아니라 다들 인원 없어 난리들이야. 나라고 그 생각 안해봤겠어?"
"종태 형님에 은석이까지 그렇게 확 빼가고, 지장이 많습니다. 애들 요새 사기도 많이 떨어지구요. 강지율이라도 좀 고려해주세요. 걔는 우리쪽이 더 잘 맞잖아요."
"이석호한테 벌써 다 얘기 해놨다고... 눈치가 있으면 뱉던가, 빌려 주던가 하겠지... ??"
복도 쪽을 돌아본다. 와아아아... 함성 소리.. 왁자지껄 소란스럽다.
"무슨 소리야? 축구 보나?"
"축구를 할 시간이 아닌데.. 저희 쪽 인것 같습니다.."
"왜, 누구 애 낳았어? 결혼해?"
"아니요, 그런 일 없을건데요.."
강력팀 사무실 문을 연다. 덩치도 큰 사람들이 겹겹이 둘러있어 잘 안보인다. 비집고 앞으로 간다.. 누구인지 돌아다보고는 민망해하며 슬슬 자리로 돌아간다. 그제서야 회의 테이블에 모여앉은 몇 사람이 보인다. 먼저 발견한 민규가 바로 일어서며 인사한다.
"오셨습니까?"
"왜 이렇게 시끄러워, 아침부터? 팔씨름하냐...?"
"어? 여기 왠일.. 어어.. 아이고.."
막판에 손을 잘못 놀린 정환.... 윗부분이 툭.. 앞으로 푹 꺾이고 만다. 진우가 칼을 뺏는다.
"아, 형님들, 연장을 진짜 못 쓰네. 보세요, 제 차롑니다.."
"바쁘냐, 강진우?"
진우가 뒤돌아본다. 활짝 웃는다.
"어? 서장님 오셨어요? 해보실래요?"
쓰윽.. 칼을 내민다. 제과점용 흰 플라스틱 칼이다. 테이블에는 롤케익 두 줄이 난도질 당해 있다.
"뭐하는데 이 난리들이야?"
"대회 중입니다. 롤케익 얇게 자르기. 해보세요."
서장 앞으로 칼을 내미는 진우의 얼굴이 한없이 해맑다. 어이없이 서있는 조팀장을 보며 정환이 중얼거린다.
"야, 그만해, 다 치워.."
"왜? 나랑 민규 아직 안했어. 마저 해야지. 서장님 안 하세요? 그럼 제가 합니다."
"이 시간에 이걸 왜 하고 있는데? 일들 안해?"
조팀장이 한소리 하자 진우가 그의 팔짱을 낀다. 끌어다 의자에 앉힌다.
"이거요? 지율이 줄려구요. 팀장님이 그랬잖아요, 잘 꼬셔서 우리팀 데려 오자고.. 요 앞에 빵집에서, 어제 팔고 남은거 1+1 해서, 박형사님이 아침이라고 사왔는데, 지율이도 줄라고 얇게 자르기 하는 중이에요. 걔는 두꺼우면 무서워서 못 먹으니까... 팀장님도 한 칼 하실래요?"
"야, 롤케익은 그렇게 자르는게 아니야."
서장이 나선다. 프라스틱 칼을 뺏어들고 왼쪽 손에 댄다.
"이건 딱 엄지 손가락 한마디만큼! 응? 여기! 딱 이만큼 두께가 제일 맛있어."
"..."
조용해지는 팀원들. 정환이 혼잣말하는 척, 딴 곳을 보며 한마디 한다.
"지율이가.. 안그래도 손가락 잘린거 무서워서 밥도 못먹는 애한테..."
"아, 그래, 맞다.. 그렇다 그랬지.. 야, 임마! 엄지를 자른다는게 아니라.. 아우, 자식들, 황소만한것들이 디게 소심해. 잘 봐!"
소매를 걷어올리고 롤케익에 도전한다. 다른 사람들이 실패한 것도 힐끔 보면서 최대한 얇게 잘 해보려 하지만, 반 쯤 내려가자 앞으로 푹.. 꺾인다.
"아싸, 서장님 못 드시고... 내 차례지?"
"실패하면 못 먹어? 야, 그런 얘기 없었잖아! 내가 자른 건 줘야지!"
진우가 번개같이 집어들고 도망간다.
"안돼요, 얼마 안 남았어요. 이긴 사람이 다 갖는 거에요."
"그런게 어딨어? 먼저 말을 해줬어야지! 이리 가져와!"
"싫어요, 저 앞집 가요~"
"야, 이리 안와?? 강진우!"
문이 닫힌다. 키득거리며 다들 자리로 돌아가고, 두어명 퇴근 하는 사람들이 인사하며 나간다.
"퇴근하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그래, 고생들 했어. 얼른 가서 푹 자..."
테이블 위에 남은 찌끄래기를 집어 먹는다. 조팀장 앞으로 마주 앉는다. 들고 있던 종이로 흐트러진 빵가루를 모은다.
"어이구, 다 큰 것들이 아주 난리, 난리... 몇 살들이냐... 그래도, 진우는 좀 좋아보이네. 괜찮지?"
"지금까지는, 괜찮아 보입니다."
"근데 어제 밤에 출근을 했다고?"
"예, 강지율은 못봤고, 진우는 새벽까지 계속 뭔가를 하더랍니다. 미제사건 자료도 몇개 요청했다는데, 아직 어떤건지는 모르겠습니다."
"휴가동안 뭐 하나 물었나..? 잘됐지, 그렇게 일에라도 푹 빠져있으라그래. 아직은 조심하고... 방심하다 어디서 훅 .. 아이구, 저 자식 술 잔뜩 처먹고 여기 옥상 가서 뛰어내린다고 지랄한거 생각하면 아주 그냥... 그럼, 다들 수고해."
서장이 방을 나선다. 복도를 지나려다가 특별팀 문을 연다. 은석이 일을 멈추고 인사한다.
"애들은?"
"저쪽에..."
반대 쪽을 본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롤케익을 자르고 있는 시환과 진우... 막상막하의 실력이다..
"카, 역시 류시환이 손이 좋네... 야, 이거 완전 종잇장인데? 나 한번 더 해도 돼?"
"내가 이긴거지? 그냥 한번 하는거야, 게임은 아니고?"
"안해! 와, 치사하게.. 저쪽 방에서는 내가 이기는 거였는데.. 서장님도 보셨죠? 저쪽 형님들, 손이 아니라 곰발바닥이야, 진짜 둔해. 사람이 손가락을 써야지, 순 주먹들만 써봐서.."
두 사람 앞에 가지런히 놓인 롤케익 조각을 내려다 본다. 씹을 것도 없이, 혀에 바로 녹을것 처럼 얇게 떴다. 칭찬을 기다리며 나란히 앉아 방글방글 웃고 있는게 더 어이없다.
"좋~겠다.. 시집가도 되겠다, 이 녀석들아. 에이구.. 은석아, 한참 더 키워야겠다."
은석이 웃는다. 서장이 나가고 진우가 묻는다.
"형, 빵 드실래요? 아침 안 먹었죠?"
"됐어, 강 형사 줘."
쪼르르 건너와 기어코 한조각을 내려 놓는다.
"걔 많이 안 먹잖아. 이거 아까 박형사님이 자른건데, 내꺼보다 두꺼워서 실패야. 그래도 안 부서진건 이거 하나니까, 형 먹어."
"좋아보인다. 며칠 쉬니까 얼굴이 확 폈는데?"
은석의 어깨를 잡고 그 큰 몸을 흔든다.
"혀엉, 그러니까 다시 돌아와라.. 형 없으니까 포기들이 우리 무시해. 딱! 첫빨에 기를 팍 죽여야되는데, 이것들이 맞먹을려 그래. 형 있을때는, 그냥 앞에 서있기만 해도 반은 먹고 들어갔는데.."
"니가 앞에 서야지. 이젠 막내 아니잖아."
"와, 그것도 진짜.. 내가 우리 팀 막내 십년 한거 알죠? 근데 십년만에 쫄따구로 들어온 애가 동갑이야."
"할 수 없지. 요새 애들이 힘든 거 안한다잖아. 우리도 봐.. 시환씨 서른인데 막내야."
테이블을 돌아본다. 그새 또 칼을 잡고 롤케익을 얇게 자르는데 집중하고 있는 시환... 진지하다...
"... 쟤는 그래도 싸. 막내 한 이십년쯤 해도 돼."
지율이 들어온다. 반가움에 바로 롤케익을 보여주는 시환.
"선배 아침이에요. 진짜 잘 잘랐죠?"
"어떤게 더 나아? 하나는 내가 한거야."
진우도 끼어든다.
얇게 잘라 차곡차곡 잘 펼쳐놓았다. 지율이 피식 웃으며 아직 자르지 않고 남은, 제일 두꺼운 조각을 집어들어 한입 베어문다. 진우와 시환이 동시에 낙심한다.
"아, 뭐야? 얇게 펴놔야 안 무섭다며?"
"왜? 엊그제 형이 그랬잖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주는 건 믿으라고.. 그리고 롤케익은, 이 엄지 손가락 한 마디 두께가 제일 맛있어."
실망하며 남은 조각을 입에 넣는다. 은석이 다가온다.
"몸은 좀 어때요? 병문안 못갔어요. 미안해요."
"아닙니다, 그냥 잘 자고 왔습니다. 가뜩이나 인원도 없는데, 죄송합니다, 바쁘셨죠?"
"아뇨, 큰일 아니어서 다행이에요. 이거는... 퇴원 축하.."
종이 가방을 내민다. 허리 베게다.
"전에 보니까, 허리에다가 수건 접어서 깔고 자길래.. 허리 치료 하시는 분께 하나 샀어요. 자꾸 안좋아지면 소개시켜 드릴께요. 받아요."
잠시 머뭇거린다. 허리 아픈거 어떻게 알았을까..
"어.. 이런걸... 제가 받아도 되는지.."
"강 형사 아프면 우리 팀 다 힘들어지니까 주는 거에요. 부담갖지 말아요. 잘때, 운전할때, 다 써요."
진우가 가방을 받아 지율의 손에 쥐어준다.
"얼른 받어. 너 의사가 걱정하더라, 골다공증 초기 일거라고, 금방 허리 아프고 여기저기 부러진댔어. 그러니까 그날 검진 받고 가라는데 그냥 나와가지고.."
시환이 진우를 쳐다본다. 왜 얘기 안해줬어 하는 표정이다.
"병원에서 들었어. 강지율, 신체나이로 70살 할머니래. 바람 불면 툭! 부러진다고 조심하란다. 류시환, 내가 거기서 너 대신... 내가 얼마나 욕 먹었는지 알어? 사람들 다 있는데서.. 그러니까 파트너 좀 잘 챙겨!"
진우가 케익을 한 입 물고 빠른 걸음으로 나간다. 나간다. 시환이 따라 나간다.
6.3.2 주차장
계단으로 내려가는 진우를 시환이 잡는다.
"형, 어디가? 얘기 좀 해!"
"다 했어, 그게 다야."
"뭐가 다야? 병원에서 있었던 일 다 말해!"
"의사가 조심하랬다고. 야, 의사 아니어도, 지율이 딱 보면 여기저기 골병든거 보이잖아."
"그거 말고, 형이랑 둘이."
뿌리치고 계단을 내려간다. 시환이 따라 내려간다.
"방금 전까지 빵 자르면서 히히덕 거리다가, 왜 갑자기 화난 모드야?"
"아까는, 선배 줄 거라 그래서 깜빡 잊었었어, 형한테 화났던거.. 빨리 다 말해. 형, 지율 선배한테 관심있어?"
진우가 걸음을 멈추고 시환을 본다. 한마디 하려다가 고개를 저으며 계속 내려간다. 건물 밖으로 나간 두 사람.
"나한테 진짜 뭐 할말 없어?"
"뭐? 왜? 병원에서 지율이 안고 잔거? 악몽 꾸길래 그랬어, 무서워해서... 우리집 데려간거? 갈데가 없잖아, 그럼 사무실에서 재우냐? 바다 간거? 지율이 아버지 보러 간 김에 잠깐 들렀어. 젖은 건 사고였고, 옷 말리고, 자고, 점심먹고 올라왔어. 지율이랑 아무 일 없어. 됐냐?"
"지율이, 지율이.. 언제부터 다들 지율이야?"
"뭐?"
"호칭 똑바로 하라고. 다 큰 성인들끼리 직장에서.. 뭐, 다 친구야? 딸이야? 왜 여자 동료 이름을 막 불러? 강 형사님, 그래야지?"
"뭐라는거야? 야, 류시환! 남자들끼리도, 우리끼리 있을때는 이름 부르잖아! 여자는 이름 부르면 안돼? 그게 더 특별 대우야."
"왜 형들만 불러? 난 평생가도.."
시환이 말을 끊는다. 진우가 그제서야 눈치를 채고, 화를 푼다.
"... 질투구나? 지율이 이름 못 불러서?"
"아니야."
"뭘 아니야, 니가 더 어리니까, 평생가도 이름 못 부른다.. 그 얘기 하는거잖아. 바보야, 그러니까 말 까! 걔 그런거 상관 안해. 네가 존대말 하니까 걔도 그러는거지, 걔 반말 잘하잖아, 욕도 잘하고.. 문 형사님한테도 막 덤비고, 서장님한테도 따박따박, 딱 너 같애. 말 놓자 그래."
"선배는, 윗사람한테만 그래. 아랫사람들한테는 다 존대말 해. 그리고, 내가 말 놔봤자.. 뭐라그래? 잘 해봐야 누나? 지율씨?"
"걔도 너 시환씨라 그러잖아. 너도 지율씨 해."
"싫어, 더 남...같애.. 몰라.. 아이씨, 그러니까 선배 이름 부르지마..?"
"부를거야, 동생 이름도 못 부르냐?"
"오빠동생 안한다잖아."
"뭐, 오빠 동생만 있냐? 형 동생도 있지.. 걔... 내.. 남동생이야, 너처럼... 됐지?"
"뭐래..."
시환이 툴툴거린다.
"너야말로 왜 나한테 삐졌는데? 병원에서 안고 잔거, 걔가 나쁜 꿈 꾸면서 울길래, 깨워도 약 때문에 못 일어나고, 소리지르고 무서워해서 올라갔어. 잠깐 재우고 내려온다는게, 나도 피곤해서 잠들었다, 됐냐?"
고개를 돌리고, 여전히 먼 곳을 보는 시환.
"아으, 새끼.. 진짜 속 쫍아.. 그래, 그날 밤에.. 자다가 또 뭐 이상한거를 보는지 벌벌 떨길래, 내가 다시 재울라고.. 시환이 불러줄까, 일 끝나고 온대, 지금 오고 있겠다, 벌써 다 왔네... 하니까, 갑자기 나를 끌어안더라, 너인줄 알고.."
"진짜?"
"그래, 진짜... 야, 내가 지율이 가족같으니까... 제수씨... 니까.. 그러는 거지.."
시환의 얼굴에 미소가 돈다. 곁눈으로 보며 한심하다는 표정의 진우.
"그래, 제수씨. 네가 좋아하는 거 다 아는데 내가 뭘 어쩐다 그래?"
"진짜지? 헤헤, 형, 우리 좀 어울리나? 선배하고 나하고?"
"어울려.. 잘 어울려. 너만 좀 철 들면 완전 잘 어울릴거야.."
신이 난 시환. 금새 표정이 좋아진다. 누군가 말을 건다.
"안 들어가요? 아침부터 재미있나봐요?"
출근하는 석호... 진우가 얼떨결에 목례를 한다. 석호가 멈칫한다.
"왠.. 그런 이상한 인사를...? 나한테 뭐 죄진거 있어?"
"어? 아니, 그냥..형은 경감님이잖아, 난 경위..."
아무것도 모르는 시환도 옆에서 꾸뻑 인사한다.
"오셨습니까? 금방 올라가겠습니다."
"그래요, 얼른 와요. 아침 회의 있어요."
"예, 알겠습니다."
석호가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주차해 둔 그의 차를 살핀다. 하얀 아우디 SUV, 무전기, 안테나... 튜닝한 휠... 요양원에서 본, 그 차다... 진우가 시환에게 묻는다.
"근데, 요새 석호형 안 이상해? 갑자기 지율이한테 관심이 많아 보여.."
답이 없다. 뒤돌아본다. 저만치에서 석호와 걸어가고 있는 시환...
"류시환... 적군인지, 아군인지... 잘 알아보고 놀아야지..."
한숨 쉬는 진우에게 강아지 한마리가 다가온다. 쪼그리고 앉아 쓰다듬어준다.
"어? 뚱이 왔어? 오늘도 혼자네? 위험하다니까.. 찻길 어떻게 건넜어?"
진우에게 토실토실한 털을 비빈다.
"너네 꼬맹이한테 잔소리 좀 더 해야겠다, 너 좀 못 돌아다니게 하라고... 잃어버리면 얼마나 슬픈데, 자꾸 놓쳐, 그치? 너는 이뻐서 집어가는 놈도 많을거야, 조심해."
강아지를 안아 올린다. 석호가 걸어간 통로를 바라본다.
"특히, 친한척, 착한척, 도와주는 척 하면서 주위에 알짱거리는 사람 말이야, 정말 조심해야돼, 알았지?"
6.3.3 거리
중고생 아이들이 핸드폰을 보며 걸어간다. 깔깔거리며 웃는다. 이때 지나가는 다른 교복을 입은 한 남학생... 여학생들이 무언가 소근거리자 고개를 돌린다. 태연한 척 걷다가, 횡단보도로 뛰어간다. 깜빡거리던 불이 바뀌지만 멈추지 않는다. 빵빵빵.... 경적을 울려대는 차들을 피해, 빠른 걸음으로 도망간다...
"아유, 쟤는 왜저래, 큰일 날려고.."
버스를 기다리던 여자가 중얼 거린다. 종태 와이프, 응급실 수간호사 이지영이다. 걱정스런 얼굴로 돌아보지만, 남학생은 벌써 사라지고 없다. 전화벨이 울린다.
"어, 김 선생, 어쩐일이야?... 지금 퇴근길, 버스 정류장... 자기야, 잠깐만, 어디 들어갈께... "
예전 직장 후배다. 지영은 뒤로 물러나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차 소리 없이 조용하다.
"응, 인제 잘 들려, 말해. 무슨 일이야, 아침부터?"
"선생님 퇴근 하실 때 맞춰서 걸었어요, 뭐 좀 여쭈어 보려구요... 용산 경찰서에, 차은석이라고, 강력팀 하셨다는데 혹시 아시나 해서요."
"차 형사님? 잘 알지, 우리 남편 파트너야. 왜? 자기가 그분을 어떻게 알아?"
"저는 모르구요, 친구가 전화를 했어요, 선생님께 대신 좀 알아봐 달라고.. 그 친구 일하는 병원에 간호사 하나가, 차 형사님한테 관심이 있나봐요. 그분 아직 미혼이죠?"
자기 일 처럼 좋아한다. 남편이 가장 아끼는 후배이자, 지영도 너무 좋아하는 남편 동료다..!
"어머, 어머, 왠일이니? 이야, 걔 누군지, 보는 눈 있다. 차 형사님 진짜 멋있지! 맞아, 아직 미혼이야."
"나이가 좀 되시던데, 왜 아직 안하셨어요? 뭐 한번 갔다 오신거 아니구요?"
"아냐, 아냐, 일하다가 그랬지. 서른 중반이면, 형사들은 늦은 거 아니야. 우리 남편도 그 나이였어. 아직 누구 만난다는 얘기 없었고, 집도 엄청 빵빵하고... 맞다, 자기 안양에 근무하지? 거기에 창운 학원이라고 알아?"
"알아요, 창운 전문대 있어요, 간호학과도 있고."
"그래, 거기.. 유치원부터 초중고등학교랑 전문대까지 있잖아. 그거 다, 차 형사님 꺼야. 그 집 외아들잖아."
"어머, 진짜요? 거기 경찰 학과도 있던데? 그럼 경찰 그만 두면 거기 교수 가시나?"
"잘 모르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지. 강력팀 오래했지, 운동 엄청 잘하지... 그리고 그 사람 서울대 나왔어. 곧 승진 시험도 있을거고, 지난 번에도 원래 충분히 되는 건데, 경찰대한테 밀렸대."
"그런 분, 소개팅 괜찮을까요? 너무 눈 높은 거 아냐? 이쪽 여자애는 귀엽대요, 좀 어리긴 한데, 지가 먼저 좋아서 인사 시켜달라니까 뭐.."
"너무 좋지, 잘됐다. 나도 그런 사위 보고싶어... 근데, 어느 병원이야? 누구 병문안 가는거 봤나?"
"경찰서 근처에, 척추 전문 하는데 있잖아요, 부인이 한의사라서 1층에 한의원이랑 같이 하시는 병원이요. 거기 오신대요."
".. 본인이...? 환자로?"
"예, 꽤 되셨다는데, 워낙 시간이 불규칙 하셔서, 오다 안오다 그러시나봐요. 몇번 못 봤대요.."
"어, 그래...? 그런 얘기는 못들었는데... 그 일이 그래, 아무리 튼튼해도, 여기저기 맨날 다치고.. 그래, 자기야, 내가 우리 남편 통해서 어떤가 물어볼께, 자기도 더 알아봐. 전화 줘?"
"바쁘신데 죄송해요, 선생님. 그래도 잘 부탁 드려요, 애가 야무지고 붙임성 있고 그렇대요."
"그럼, 내가 차 형사님 중매 해야지. 알려줘서 고마워!"
전화를 끊는다. 잠시 생각에 빠지는 지영... 선뜻 전화를 걸지 못한다.
6.3.4 사무실
석호가 묻는다.
"류 형사님, 강 형사님은 동부 이촌동 일본 거리에 가신다고 했죠? 누구 만나기로 약속 된 사람 있습니까?"
"미키 씨를 안다는 사람인데요, 같은 교회를 다녔답니다. 이번 실종 건은 모르고 있었다는데, 그래도 같은 종교에 같은 국적 사람이라서, 만나서 이야기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연락했습니다. 이 사람 하나가, 지금까지 찾아낸 유일한 지인입니다. 거의, 아무 흔적이 없어요.."
"좀 답답한 사건인건 사실이지만, 조금 더 고생해 주시구요.. 여행자 수표 환전 건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한남동 시티 은행에서 환전한 기록이 있습니다. 지점의 CCTV 를 확보해 의뢰해 놨습니다."
"아직 남아있던가요? 실종 날짜가 두달은 더 된 걸로 추정되는데?"
"은행 주변의 것들은 다 지워졌구요, 지점 내부와 입구쪽 ATM기, 입구에서 길 쪽을 비추는 것 까지는 아직 보관중입니다. 국내 은행은 60일 의무 보관이지만, 시티 은행은 자체적으로 90일까지 보관합니다."
"다행이네요. 환전 액수는 얼마인지 나왔나요?"
"국내에 들어와서 한남동 지점에서만 딱 두번 환전을 했는데, 합해서 우리돈으로 백오십만원 정도입니다. 나머지 돈은 아직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날 영상만 확보되면, 환전을 해 준 은행 직원 정도는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럼, 일본 거리에서 뭐라도 있는지 둘러보시고, 은행에서 연락 오면 알려주세요."
지율이 다 읽은 보고서를 시환에게 넘긴다.
"실종이 아니라, 잠적일 가능성은요?"
"그것도 염두에 두고 있긴 한데, 만약 그렇다해도 환전이라던가, 크레딧 카드 정도는 사용해야 한다고 봐요. 5주 전부터 하나도 없어요."
"현찰 백오십만원에 5주면 아직 버틸만도 할테니까, 생존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겠네요."
"그렇다면 다행이구요. 그런데 서울에서 제일 싼 숙소에서 나갈때 돈을 찾아서 갔다는 건, 돈을 쓸 각오를 했다는 얘기겠죠? 돈이 들거 알고 있다... 돈이 들어도 간다...?"
"얼마인데 제일 싸요? 이 동네에 그런게 있어요?"
"외국인 전용 게스트 하우스.. 6-8인실이 하루에 만원에서 만오천원."
"그런데가 있어요? 어디에요? 내가 갈까?"
시환이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인다.
"선배 게스트 하우스는 길 건너에 있잖아요, 룸메이트도 있고.. 송이라고.."
지율이 미소 짓는다.
"일어나요, 먼저 주변 한바퀴 돌아보고 그 사람 만나면, 딱 시간 되요."
"아, 날씨도 좋고... 가서 모닝 커피 했으면 좋겠다.."
"앉아있을 시간은 없으니까 걸으면서 해요, 괜찮죠?"
"잠복? 팔짱 끼고요?"
두 눈을 반짝거리는 시환을 달래며 일어난다. 속닥속닥... 마냥 좋은 시환. 키득키득 웃음 소리가 난다.
밀린 보고서를 정리하는 은석에게 종태가 묻는다.
"은석아, 가래떡 있냐?"
"가래떡이... 떡집 가야 있겠죠? 배고프세요?"
"떡 좀 사와라.. 꿀 찍어먹게."
"갑자기 왠...?"
은석이 그제서야 고개를 들고 종태를 쳐다본다. 종태가 턱으로 건너편을 가르킨다. 뚫어져라 보고 있는 건, 시환과 지율이다. 은석이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는다.
"놔둬요, 며칠 못봤으니까 반갑겠죠."
"며칠은 무슨.. 너는 나 이틀 쉬고 나오면 반갑냐?"
"아뇨."
"입원했다 나오면?"
"다시 들어가셔도 되요."
"가서 장기간 있으면?"
"새 파트너 구해야죠. 이거 혼자 다 못해요.."
"나쁜 새끼..."
핸드폰이 울린다. 지영이다.
"응, 마누라, 왜? 서방님 보고싶어?"
"은석씨 어디 다쳤어?"
"몰라, 왜? 여기 놈들이 다 다쳤지, 안 다친 놈이 어디 있어?"
"병원 다닌대. 척추 치료한다는데 자세한 건 몰라. 혹시 그래서 강력팀 그만두고 당신 따라왔나?"
"모르지.. 시커먼 놈들은 그런 말 잘 안 해. 나쁜 새끼..."
은석을 째려본다.
"옆에 있구나? 끊을께, 내가 말했다고 하지마."
"그게 다야? 그래서 걸었어?"
"아니 그냥, 누가, 어떤 눈 먼 여자애가, 차형사님 소개시켜 달래. 허리 다쳐서 치료받는 거 알면서도 좋대."
"좋네, 있다가 저녁 먹을까?"
"무슨 소개를 당일날 해? 미쳤어? 그냥 막 얼굴 한번 보여주고 쫑 낼려고? 기회 봐서, 잘 얘기해봐. 언제 시간 되나. 여자애는 간호사래."
"이야, 간호사 좋지, 짜식.. 팔자 폈네. 원래 간호사랑 형사랑 잘 어울리잖아."
"뭐가 잘 어울려? 한쪽은 패고, 한쪽은 치료하고.. 상극이야."
"그런거 말고, 경찰 보험이 꼬져서, 간호사 마누라를 둬야 직원 가족 혜택을 받잖아. 생돈 안 들고 좋지..."
"못 살어, 진짜... 야근해! 들어오지마.. 끊어."
"크흐흐흐..."
웃으며 끊지만, 마음이 좋지 않다. 차은석, 네가 나한테 비밀도 있구나...
6.3.5 부적
사무실로 들어온 진우. 자리에 앉다가 주머니 속의 부적을 기억해낸다.
"아, 이걸 아직 갖고 있었네... 필요할텐데.."
특별팀으로 간다. 자리에 없다. 석호가 돌아본다.
"어, 진우! 시간되면 저녁 때 한 잔 할까?"
"오늘... 이요? 아직 확실히 모르겠네. 뭐 자료하나 기다리는 게 있는데, 그게 오면 바쁘고, 안 오면 밥 정도는 먹을 수 있고.."
"튕긴다? 네가 먼저 밥먹자 그러고서는? 난, 오늘 제안 한거다, 네가 거절한거고."
"거절은 아니고, 뭐, 우리 사이에 약속 잡고 만나고 그러지 않았잖아요. 오가다 눈 마주치면, 그때 가요."
"맘대로 해. 밀당 싫어."
"그러니까 형이 연애를 못하는 거야."
"뭐가 어째?"
"아니, 아니.. 그러니까, 경감님이, 연애를, 못하십니다.."
"이야, 이젠 선배도 무시하고.. 많이 컸다.."
"요즘 애들이 그래요, 유행 따라 갈려고.. 시환이, 지율이 다 기어오르잖아."
일부러 지율이 이야기를 꺼낸다. 반응을 살핀다.
"맞아, 그 두 사람은 무서운게 없어. 넌 좀 다른 줄 알았지. 나랑 같은 세대 아냐?"
"무슨 말씀을...! 애들하고 더 가깝죠... 둘 다 나갔어요?"
"실종 사건 탐문. 오래 걸릴지도 몰라."
"얘들은 왜 맨날 붙어다녀, 오해받게.. 아, 파트너였지... 음, 그러면... "
주머니에서 지율의 부적을 꺼낸다.
"이거, 형이 지율이한테 좀 전해줘요. 걔 꺼, 짝퉁 부적인데, 내가 잠깐 빌려썼어."
"부적을 가지고 다녀?"
석호가 받아든다.
"진짜 중요한거래, 오빠가 죽기전에 준 거.. 잃어버리면 안돼. 꼭 전해줘."
일부러 석호에게 건네 주고, 반응을 살핀다. 시간을 끌려고 지율의 책상에서 뭔가 찾는 척, 서랍을 뒤적거린다. 곁눈질로 석호를 관찰한다...
석호가 부적을 펼쳐든다. 급했는지, 마구 흘려쓴 연필 글씨... 오빠라는 사람이 쓴 것 같다.
/문 잠궈. 절대로 나오지 마. 불도 키면 안돼. 신고했으니까 아무 소리 내지말고 기다려/
뒷면으로 돌린다. 정성들여 쓴 궁서체 펜글씨다 - 강장동물.
'강장동물..?'
아무 종이나 잡히는 대로 썼나보다. 잘 접어 자신의 책상 서랍에 넣고 앉아 화면을 본다. 별 반응 보이지 않는 석호가 실망스러운 진우도, 지율의 책상을 무심히 정리하는 척 한다.
"에이, 못찾겠다, 오면 물어봐야지.. 형 나 간다. 부적 꼭 전해줘."
"알았어. 수고!"
진우가 나가고 한동안을, 일에 집중하는 석호. 핸드폰이 울린다. 류시환이다.
"벌써 끝났어요? 무슨 일이에요?"
"아니요, 아직 아닙니다. 그런데 방금 전에, 영상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은행 CCTV에서 미키씨를 찾았다고 요, 부분 영상 받아서 좀 있다가 지점으로 가겠습니다. 환전해 준 직원분이 아직 계시면, 직접 만나보고 복귀하겠습니다."
"그래요, 금방 찾아서 다행이네요."
"그리고, 아무래도 종교 관련이다 싶어서요, 내친김에 천복궁에도 들러보는 게 어떨까 해서 전화 드렸습니다. 어제 안 가본게 계속 걸려요. 사전 예약은 안 했지만, 수사 중이라고 밝히고, 억지로라도 누구든 면담해 볼 생각입니다."
"관련이 있다면 가야죠. 바빠졌네요. 점심 먹을 시간도 없겠고.. 봐서 시간되면, 들어와서 저녁 같이 해요. 강 형사 퇴원했는데, 제대로 밥 한번 먹여야죠. 두 분 다 괜찮죠?"
"예, 좋습니다. 사무실에서 대기하겠습니다."
"그래요, 강 형사 너무 무리하지 말고.. 수고!"
진우에게 문자를 보낸다.
/류시환, 강지율, 복귀 후 저녁 회동 예정/
바로 답이 온다.
/몇시?/
/아직 모름. 강진우 시간 봐서??/
/영광 땡큐 콜/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잠시 후에 하나 더 오는 문자
/석호 형 사랑해! 형이 사는 거지?/
하트를 가득 담았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고 만다. 강진우... 들었다 놨다... 역시 밀당의 고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