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1 용산 경찰서
보고서를 쓰는 시환. 서랍에서 꺼낸 과자와 커피 우유로 아침을 대신한다. 비어있는 지율의 자리를 한번 쳐다본다. 쓸데없이 핸드폰도 자꾸만 만지작 거린다.
"해보십시오, 어디 계신가?"
"됐어요. 진우 형이랑 같이 있으니까 곧 들어올거에요. 우유 마실래요?"
"운동 전에는 안 먹습니다."
수건 하나를 들고 나가려는 리화를 잡는다. 재빨리 캐비넷으로 달려간다.
"잠깐! 같이가요. 오랜만에 운동이나 해야지. 어우, 너무 힘드니까 내가 지금 깨어있는건지, 자는 건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셔츠를 벗고 간편한 티셔츠로 갈아입는다. 날개뼈까지 내려온 흉터... 신경 안 쓴다. 바지를 벗어 둘둘 말아 던지고 운동복 반바지를 입는다. 시계를 푼다. 뒤에 멀뚱히 서서 바라보는 리화.
"주로 무슨 운동하십니까?"
"그냥 남들 하는거요. 뛰고, 아령 좀 하고.. 줄넘기 같은 거..?"
"시간 되시면 저 발차기 좀 가르쳐 주십시오."
"왜요? 잘 하던데?"
"아무래도 권투를 오래해서, 자꾸 손이 먼저 나갑니다. 발을 좀 더 써야 제가 안전할 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죠, 거리가 다르니까.. 킥 복싱도 했어요?"
"정식으로 배운 건 아니고, 전에 안산에서 선배들한테 조금씩 배워서 흉내만 냅니다."
"가르쳐주는 것만 할거에요, 한판 뜨기 없어요. 나 맞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맞는 거 좋아하는 사람 있습니까? 치는 거 좋아하지.."
"치는 것도 안좋아해요. 요새는 선배랑 따로 다니니까 맞기 싫어서 내가 치는 거지.. 보호대 필요없죠?"
"괜찮습니다. 필요하십니까?"
"뭘로 봐요? 나 선출이에요. 메달 리스트 인데?"
사무실을 나선다. 웅성웅성 시끄럽다. 복도 저 끝에서 달려오는 박 형사.
"무슨 일 있습니까?"
"민규가 다쳤어. 출동 나갔다 총 맞았대."
"총이요?"
강력팀으로 따라 들어간다. 영상 통화 중인 조 팀장, 응급실에서 대기하고 있는 민규가 보인다. 머리와 얼굴에서 지혈제와 섞인 피가 진득거린다.
"그래, 큰 부상 아니니까 다행이고, 지금 형들이 현장 나갔으니까 너는 치료만 끝내고 들어와. 뭐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해? 좀 얼른 얼른 하라 그래!"
조 팀장이 집어 던지듯이 전화를 끊고, 벽에 붙은 지도를 본다. 시간과 피해 내용을 적은 포스트 잇이 덕지덕지 붙었다.
"만리, 동자, 청파, 서계, 갈월... 이 자식.. 중구나 마포로 넘어갈까 했더니 내려오겠다, 이거지? 그렇다고 바로 경찰을 쏴?"
"민규를 노린겁니까, 아니면 그냥 경찰차라서..?"
정환이 묻는다.
"애를 노린건 아니야. 총을 들고 다닌다는 신고를 받고 나갔는데,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쐈어. 얼굴 확인 못했을 거야. 일부러 경찰이 오기를 기다렸던지, 아니면 돌아다니다가 경찰차를 먼저 봤든지.."
"엽총이면, 사냥 총인거죠?"
"대신에 총알을 개조했어. 살상력은 떨어져도, 한발로 여럿이 다치게.. 몇 발을 쐈는지, 몇 조각을 맞았는지는 조사해봐야 알겠지만, 다행히 대부분은 차에 박히고, 두개가 유리창에 A빔에 맞고 민규한테 갔어."
"고양이들 박스에 넣고 쏜 그 종류 같은데요? 산탄.."
"그럴것 같애. 어디 보자, 권총 세번, 쇠구슬총 세번, 엽총이 오늘까지 두번.. 한번 더 남았네. 그 다음은 뭘까? 대포?"
"또라이 새끼.. 사람 쏜 건 오늘이 처음이에요. 연습 많이 했으니까, 본격적으로 해보자, 이건가?"
"인상착의 나왔어?"
"사진이 나왔습니다. 미쳤나봐요, 엽총을 들고 편의점에 가서 콜라를 사먹었어요."
"일부러 그러는 거지, 선전포고... 나 잡아봐라.. 줘봐, 이 놈이야?"
사진을 받는다. 시환이 어깨 너머로 들여다 본다.
"어린것 같죠? 키는 165정도로 추정하구요, 나이는 10대 후반에서 많아야 20대 초반 정도로 보인답니다.'
"10대는... 아닐 것 같습니다. 옷은 애처럼 입었는데, 신발이 애들 신발이 아닙니다."
시환이 끼어든다.
"운동화 디자인이.. 그래, 좀 평범하긴 하다, 이런 짓 하는 애들치고는.. 그래도 일단은 10대 후반부터 싹 훑어. 촉법으로라도 경찰서 왔다갔다 하던 애들, 폭력 관련자들, 전과나 정신병력.. 마포구, 중구, 다리 건너 동작구랑 서초에도 연락해주고.. 현재까지로 봐서는, 좋은건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멀리 다니는 놈이 아니야. 교통 수단은 주로 걷거나, 지하철..."
"그런데, 팀장님... 얘 좀 익숙하지 않아요? 원본 어디 있어요? 영상이요."
여태 사진을 내려 놓지 못한 시환이 영상을 찾는다.
"위에 있지, 분석팀에. 다른 범죄 뭐 있나 대조하라고.. 왜? 아는 애 같애?"
"글쎄요, 사진보다 화면을 봐야 될 것 같아요. 저 잠깐 올라가서 보고 올께요. 리화씨, 운동 다음에 해요."
"같이 가겠습니다. 저도 그냥, 출근입니다."
강력팀을 나서는 시환과 리화, 그때 마침 특별팀에서 나오던 찬호와 마주친다.
"거기 계셨습니까? 강지율 경위님 앞으로 박스가 하나 왔는데, 중요한 것 같아서 책상에 가져다놨습니다."
"아, 그거 왔어요? 고마워요... 어쩌지..? 그러면, 영상은 좀있다 들리고, 박스를 먼저 봐야겠어요. 선배가 빨리 열어보라고 한거라서.."
15.5.2 남양주 병원 응급실
구급차가 급하게 멈춘다. 방호복으로 무장한 구급대원들이 뛰어내려 환자를 옮긴다. 산소 호흡기를 걸고 있는 뺨 아래로 어깨와 가슴까지 불에 데인 듯 붉게 부풀어 올랐다. 기도에 넣은 관을 움켜쥐고 응급실로 뛴다. 불쾌한 냄새에 저절로 물러나는 사람들. 역시 얼굴까지 다 가린 의료진이 뛰어나와 치료실로 옮긴다. 산소통 먼저 바꾼다.
"음독입니다. 포르말린 50 밀리 용기 발견했구요, 40분 가량 지났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해볼만해요, 40분... 의식 없죠?"
"예, 자가 호흡도 거의 불가능합니다."
"CPR로 왔어요?"
"구강 접촉없이 심장압박 있었고, 기도내 압력으로 조절했는데, 심박수는 아직 100 이상입니다."
"급성 중독이요, 삽관 유지하고 위세척 들어갑니다. 희석액, 흡착제 같이 가요. 빨리요!"
"구강에 화상이 심합니다. 기도, 식도, 협착 가능성 있습니다. 튜브 작은 거 주세요."
"혈액 왔어요? 투석 준비합니다."
"타우린아미드 가요. 정맥 주사 전에 PH 봐주세요."
"식도 출혈 있습니다. 상체 조금만 더 틀어요.."
치료실을 나선 구급대가 오염된 방호복을 벗는다. 차갑지만, 깨끗한 공기로 심호흡을 한다. 서로 멀찌감치 떨어져 폐기물 처리함으로 던져 넣고, 단단히 봉한다. 활짝 열린 문과 창문으로 구급차를 환기시키고, 혹시 안에 흘렀을지모를 약품을 씻어낸다. 차갑지만, 물수건으로 꼼꼼히 피부를 닦아낸다.
경광등을 켜고 도착한 지율이 급하게 내려 뛰어가지만, 치료실 밖에서 기다릴수밖에 없다. 진우가 시환과 통화하며 뒤따라 들어온다.
"... 나한테 보내줘. 이상한 거 전부 다. 석호 형은?"
"총기 사건 때문에 회의 들어갔어. 길어지나봐."
"그럼 형은 일 하게 놔두고, 종태 형님이나 조 팀장님한테 먼저 허락 받자. 사건 다시 열어도 되는지. 오케이 하셔도 오늘은 너무 늦으니까, 내일쯤 꾸려서 가자 그래. 민규는 괜찮은 거지?"
"어, 치료받고 들어왔어. 아주 깊지는 않은데, 미라 같애. 둘둘 말아놨어."
"아휴, 요새 왜 이러냐.. 빨리 연말 지나야지, 못 살겠다... 알았어, 수고하고, 사진 부탁해."
지쳐가는 지율 옆에 앉는다.
"뭐래?"
"몰라, 아직은 살아있나봐.. 못 들어가게 해."
띵... 사진이 온다. 진우가 피식 웃으며 지율에게 내민다. 눈과 입만 놔두고 붕대로 돌돌 말았다.
"이 꼴로도 웃냐. 다행이네."
"철이 없지, 강진우 파트너 아니랄까봐."
"그렇지, 웃어야지. 힘들어 죽겠는데 울기까지하면 더 힘드니까... 젤리 줄까? 몇개 안 남았어.."
억지로 허리를 펴고 바로 앉아, 골라 집는다. 껍질을 까고 호로록.. 반쯤 빨아들인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아버지 죽었다고 따라 죽어? 그렇게 효자였어?"
"너는 젤리를.. 진짜 백개 다 먹어야 사람 될래? 이 상황에 말을 그렇게밖에 못하냐?"
"이상하잖아. 아버지 묻고 이렇게 바로? 같이 가겠다, 이거잖아. 왜? 친아들도 아니면서.."
"지금 시환이가 너한테 온 박스...."
띵, 띵, 띵... 사진이 온다. 지율이 들여다 본다. 진우가 핸드폰을 꼭 잡고, 지율을 마주 본다.
"잘 들어. 시환이가, 형이 너한테 박스 보낸거 열었어. 편지랑 일기가 있대. 아버지가 쓴것도 있고, 형이 쓴것도 있고.. 근데, 그거 너한테 보내주고.. 가려고 그랬나봐. 거기에 다 써있대."
"뭐가?"
"네가 궁금해 하던거 다. 아버지가 형을 어디서 만나고, 왜 데려왔는지, 형이 돈 빌린거, 둘이 원주로 내려간거.. 그리고.."
손톱만큼 남은 젤리를 쪽 빨아들인다. 골무보다 조금 큰 플라스틱 컵을 진우에게 건네고, 진우의 손에 남은 젤리를 가져간다. 고개를 젖히고 한입에 훅.. 쏟아넣는다. 씹지않고 천천히 혀로 누른다. 이리저리 도망다니던 보들보들한 젤리가 납작하게 엎드리다 톡... 산산조각난다. 입안에 흩어진다. 조금씩 나누어 목구멍으로 넘긴다. 입술에 묻은 마지막 액체를 쪽 빨고, 혀로 닦는다.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하루가, 벌써 길게 느껴진다.
목이 뻐근하다. 뒤로 한껏 제치고 천장을 본다. 재미없는 하얀 병원 천장, 불빛, 가빠지는 숨... 눈을 감는다.
"엄마 죽인 놈 얘기도 있겠네. 나만 모르고 둘이서 쉬쉬하던 소중한 비밀."
딩, 딩, 딩... 몇번에 나누어 다시 자료가 온다. 지율이 모른척 한다. 마음을 알 길 없는 진우도 차마 먼저 사진을 열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 다른 곳을 본다. 뛰어다니는 사람들, 챙챙챙챙 쇠침대 굴러가는 소리, 업혀 들어오는 할머니, 차트를 들고 걸어가며 누군가와 통화하는 간호사...
지율이 머리를 기댄다. 진우가 핸드폰을 집어넣고 무릎을 내어준다. 그대로 쪼그리고 누워 잠이 든다. 시간이 지난다.
*****
앉은채로 졸던 진우가 잠에서 깬다. 지율은 아직도 자고 있다. 문이 열리고, 의료진이 나온다.
"의식은 없지만, 구토와 경련은 가라앉았습니다. 내부 점막에 화상이 생겨서 기도와 식도가 부분적으로 폐쇄 증상 보이구요, 폐부종이나 염증 위험이 있어서 항생제 투여했습니다. 의식이 돌아오면 우유나 물로 다시 한번 희석 시켜야하는데, 지금은 혈액 투석으로 농도를 떨어뜨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위장까지만, 세척이 된거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생명에는 이상 없는 건가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아직 3일 정도는, 더 지켜봐야 하는데, 음독 자체에서 오는 위험은 덜었다고 보지만, 이제부터는 그 이후 증상들이 문제에요. 입 안에 부터 내장까지 점차적으로 산화가 되니까요. 중산화 용액 몇번 더 주사하고, 최대한의 산소를 공급하기는 하는데, 자가 호흡이 돌아오지 않으면 아무래도 제한이 좀 많습니다. 지금 반감기 훨씬 지났는데도, 혈중 PH 도 높고.."
진우의 무릎을 베고 누운 지율을 본다. 어느새 눈을 뜨고 듣고 있다.
"아마 이분 살아나셔도.. 경과에 따라서, 위장이라든가.. 지금 폐랑 기도, 식도까지는 직접적으로 약물에 닿거나 흡입이 되어서, 화상 비슷하게 조직이 많이 손상됬거든요. 이대로 혼수 상태가 지속되면, 간이랑 신장까지 이상 징후가 나타날거고, 보통 그런 경우를 다발성 장기부전이라고 하는데, 몸 안에 전체적으로 염증이 다 생기는 거에요. 제 기능을 못하죠.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판명이 되면 80프로 정도는, 회복이 어렵습니다."
"죽는다는.. 말씀이신가요?"
"판명 되면요. 아직은 아니구요, 이런 환자분 같은 경우는 보통, 폐혈증이 먼저 오고, 바로 뒤따라서 장기부전이 올 가능성이 커요. 폐혈증도 사망률이 거의 40퍼센트 가까이 되기 때문에, 만약 그렇게 판단이 되면, 저희가 다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일단은 심장이 좀 회복이 되어야, 다른 곳들에 산소 공급도 원활해지고, 염증 가능성도 낮아지는데, 지금 봐서는 인공 호흡기에 상당 부분 의존하셔야 하고, 가족들도 조금은 각오를 하고 계셔야 할 것같습니다..."
지율이 진우의 잠바를 당겨 덮으며 다시 눈을 감는다. 인사를 하고 뒤돌아서던 의사가 다시 걸어와 묻는다.
"보통 포르말린은, 냄새가 독해서 진짜로 저렇게 마시기가 힘들거든요? 뭐하시는 분들입니까?"
"저희요?"
"아니 환자분도 그렇고... 그 많은 방법 중에 하필 그 독한 걸 마셨는지, 보호자 분들도 눈하나 깜짝 안하고 제 정신으로 듣고 있지.. 다른 분들하고는 좀 달라서요. 특히 이렇게 누워서 주무시면서 설명 들으시는 분은 처음 봐요."
의사와 빤히 눈을 마주보던 지율이 억지로 일어나 앉는다. 부시럭거리며 주머니에서 경찰 배지를 꺼내 보여준다. 의사가 그제서야 알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린다.
"아... 다른데서.. 더한 것도, 많이 보시겠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좀 솔직하게 말씀 드릴게요. 저 분이요, 상태가 많이 안 좋으셔서, 고압 산소 치료를 해 본 다음에, 중환자실로 옮기겠습니다. 보통은 가스 흡입에 많이 쓰는데, 피부하고 내부 조직까지 산소를 강제로라도 주입하고, 세균 억제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니까요."
다시한번 지율을 본다.
".. 오래는 아니구, 하루정도 계셔 보면서, 경과 살피겠습니다. 만약에 지금보다 더 나빠지면, 그때되면, 연명치료를 포기하는 방법도 있지만, 다 잘 아실테니까, 더이상은 말씀 들리지 않겠습니다.. 궁금하신거 있으세요?"
"만약에 상태가 좋아진다면, 의식은 언제쯤 돌아올까요?"
진우가 묻는다.
"글쎄요, 하루이틀 내로는 아닐겁니다. 그리고 돌아와도, 기관지가 많이 손상되어서 당장 말을 한다거나, 그렇지는 못해요. 가족.. 맞으시죠? 직계...?"
"아, 저기... 여동생입니다. 두 사람 다 미혼이니까, 직계죠."
"예, 알겠습니다. 보호자분 동의가 필요한 것들이 좀 있어서요.. 그럼, 이만.."
"수고하셨습니다.. 감사..?"
벌써 멀찌감치 사라진 의사를 보며 진우가 중얼거린다.
"의사한테는 뭐라고 인사해? 벌떡 살아났어야 감사합니다, 하지.. 죽을지도 모른다는데 수고하셨습니다도 이상하고.."
"왜 거짓말해? 동생 아닌데.. 법적으로도 아니고 실제로도 아니고.. "
"지금 그게 중요해?"
".... 사진 보자."
지율이 머리를 기댄다. 도저히 감정을 읽을수가 없다..
"괜찮겠어? 내가 먼저 읽어 보고, 말로 해줄까?"
"됐어. 방금 의사 말 들었잖아. 더한 것도 많이 본다고.."
"거봐, 사람된 척이라도 좀 하라니까.. 얼마나 인정머리 없어 보였으면..."
농담으로 긴장을 풀어본다. 조심조심 눈치를 살피며, 사진 파일을 연다. 일기장, 편지... 한장한장 확대해 가며 읽어 내려간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