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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소운 Aug 23. 2022

환생

초라한 바램

새벽 4시.


가볍게 눈을 뜬다. 피곤하지도 않고, 몸이 무겁지도 않다. 그냥저냥... 꽉 막힌 가슴을 뚫을까 일찌감치 창문을 연다. 밤새 갈비뼈에 걸쳐누워 그렁그렁 함께 잔 고양이도 기지개를 편다. 해도 안떴는데 간식 서랍 앞에 쪼르르 뛰어가 동그란 눈을 굴리며 애교를 떤다. 툭... 몇알 던져주고 가만히 옆에 앉아 할짝거리는 모습을 본다. 새벽부터 횡재다 싶은지 기다란 꼬리로 내 무릎을 툭툭 건들며 아작아작 예쁘게 먹는다. 더 달라는 건지, 고맙다는 건지.. 째끄만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다시 내게 올라와 앉아 동그랗게 자리잡는다.   

  

사랑받는다...


그뿐이다. 금덩이를 먹이는 것도 아니고, 일류 미용사에게 관리를 받는 것도 아니다. 무심히 툭툭 건들여보기도 하고, 깜빡깜빡 천천히 눈을 맞추기도 하고, 엄마는 질색하지만 식탁에 같이 앉아 우유를 나눠 먹기도 한다. 까불다 테이프가 얼굴에 붙어 하이톤으로 낑낑거리며 가위질을 참아내고, 파리 잡겠다고 뛰어올라 방충망을 찢고는 등돌리고 앉아 나름 반성하는 모습도 보인다.


알고 있을까? 사랑받는다는 걸..


우리 고양이는 전생에 '뭐' 였을까... 혹은 '어떤 사람' 이었을까... 환생을 믿지 않는다. 지옥도, 천당도.. 교육 잘 받은 현대인이니만큼, 죽으면 빈 몸만 남고, 영혼도, 정신도, 마음도... 다 사라진다고 믿는다. 오장육부가 멈추고 눈코입이 닫히면, 나는 그때부터 지구의 일부로 돌아갈 뿐이다. 내게는 전생도, 후생도, 업보나 굴레도... 그래서 미련도 두려움도 없다.


또 한분이 가셨다.


90 넘어 건강했다 위로해도, 그만하면 잘 살았다 억지로 담담하려해도, 소중함이 클수록 훌훌 턴다는 게 쉽지않다.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고락을 그저 '평범하다'는 말로 겸허히 받아들이신 그 삶.. 글로 흉내내기 부끄러울 진심의 연속이었다.    


내 글의 많은 부분을 채워주신 분.


단편 소설 <목련 https://brunch.co.kr/@smilekay/98 >과 아직도 한참을 더 다듬어야 할 장편 소설 <사마타 (판권 문제로 삭제) >의 모티브가 되어주셨는데, 우연찮게도 상을 받자마자 돌아가셨다. 출간이나 영상 제작 여부도 불확실하고, 그저 판권만 넘어간 상태라 수상 소식도 전하지 않았기에 더 아쉽고 당황스럽다. 자기 이야기로 돈 벌면 커미션 내라고 껄껄 웃으셨는데.. 지키지 못한 약속이 또 하나 늘었다.


그분의 인생.


일제 강점기의 황해도. 한 겨울 딸 부잣집에 태어나 윗목에 버려졌던 허약한 팔삭동이. 전쟁 통에 아버지와 헤어져 흙파먹고 살았다던 유년기를 지나 남한 남자과 결혼해 삼남매를 키우며, 조카인줄로만 알고 입양했던 네째... 암으로 남편을 먼저보내고 막내마저 뒤따라 투병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죽음과 함께 알게된 비밀.. 혼자만 몰랐던, 그래도 절대 억울하거나 슬프지 않았던, 오히려 행복했고 고마웠다, 끝까지 아이를 안쓰러워 하시던 천사같은 분.


사랑이다.


온동네 꼬마들에게 초코파이 한통씩 크게 쏘시던 커다란 웃음을 기억한다. 곗돈 훔쳐 도망간 사람을 찾아가 십만원 더 쥐어주며 애들은 굶기지 마라 하셨다던 너그러움을 안다. 천원 남으면 천원 다 시주하시던 그 간절함을 이제는 반쯤, 반의 반쯤은 이해한다. 액수가 아니라, 뻐김이 아니라... 무지함이나 맹신이 아니라, 자식 사랑이었음이 이제는 보인다.


환생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한번쯤 속아주겠다. 누군가의 기쁨으로 다시 태어나 평생 사랑받으셨으면 좋겠다. 핍박없이, 가난없이... 두려움, 슬픔, 억울함, 분함 하나 없이.. 그리고 늘 말씀하셨듯이 '글재주'를 가지고 태어나셨으면 더 좋겠다. 오래전, 아마도 2-30년 전에 하셨던 말씀이었다.


"그때 조금만 더 배웠으면 글을 좀 써봤을텐데.. 우리 때는 먹고 사느라 그런 거 할 틈이 없었어. 죽기전에 대충이라도... 요즘 젊은 사람들은 다 잘하니까 나같은 사람이 해봤자 순 엉터리겠지만, 그래도 그동안 이렇게 저렇게 살아왔다... 글로 쓸 수 있으면 어땠을까 싶어.."


기억을 더듬는다.


이제 또 어떤 이야기로 그분을 그려볼까... 지극히 평범한 내 글을 숨쉬게 하는, 그래서 다시 나와 함께 살아가시는... 그랬으면 좋겠다. 내가 아는, 내가 바라는... 참 초라하고 부족한... 내가 만들어 드리는 환생이다.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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