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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숙 Oct 21. 2022

인간 유형의 전시장

   -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대하여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사람들의 겉모습으로는 그 사람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는 말일 것이다. 시각은 우리에게 가장 많은 정보를 주는 최고의  감각기관이지만 우리를 가장 착오에 빠뜨리는 기관이기도 하다. 실제로 인생의 희비극은 이렇듯 사람들의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에서 연유하는 경우가 참 많다. 그중에서도 최고봉은 아마 겉으로 드러나는 육체적인 성적 매력과 보이지 않는, 진정한 인간적 가치가 심히 어긋나는 경우이지, 싶다. 

  실제로 우리 엄마도 우리 아버지의 멀쩡한 외모에 반해 결혼했지만 아버지 때문에 평생 힘든 삶을 살다 가셨다. 인정이 많고 통이 큰 엄마는 옷 장사로 돈을 잘 벌었지만 돈이 모이면 그때마다 아버지가 내다 쓰곤 했다. 아무리 깊이 숨겨놓아도 찾아내는 데는 귀신같은 아버지였다. 툭하면 아버지와의 결혼을 후회하곤 했지만, 과연 엄마가 젊은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잘생기고 선량한 호인이었던 아버지를 마다할 수 있었을까, 의심이 된다. 

  또 우리 시어머니도 몇 십 년간을 함께 산, 당신 남편의 속을 죽을 때까지, 아니 지금까지 잘 모르겠더라고 우리들에게 말하곤 했다. 한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사실 한 평생을 살아온, 내 삶의 주체인 나 자신도 스스로를 잘 알고 있다고 말하기 쉽지 않다. 이렇게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과연 남을 얼마나 알겠는가.

   

  하지만 올바른 정보를 교란시키는 외모와 이미지라는 수단에 현혹되지 않고, 그 사람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믿을만한 방법이 하나 있긴 하다. 그건 바로 그 사람의 행동을 통해 그 사람을 가장 많이 지배하는 욕망을 알아내는 길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욕망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크게 보면 다 똑같지만, 섬세하게 보면 다 다르다. 인간을 지배하는 욕망의 수가 그리 많은 건 아니지만, 그 사람이 살아온 과정, 현재 그 사람이 놓여 있는 상황에 따라 의외로 사람마다, 또 한 사람으로서는 시기마다 상당히 다른, 자기만의 삶의 동력인 독특한  욕망을 갖고 있는 법이다. 

  물론 한 인간 안에는 다양한 욕망들이 병존해 있다. 그리고 이때 욕망들은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병렬적으로 존재하기 보다는 일종의 계층구조(hierarchy)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 욕망들은 한 개인의 역사 속에서 축적된 것으로 그때그때마다 그 사람이 취하는, 사유체계나 가치관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다. 따라서 사유체계나 가치관이 변하면 욕망들도 따라 변하곤 한다. 

  또한 인간은 충족시키기 손쉬운 욕망부터 먼저 충족하려 하기 때문에 욕망은 그것이 얼마나 현실적으로, 또는 즉각적으로 실현 가능한가, 아닌가에 따라 끊임없이 우선순위가 변동하기도 한다.  

  이렇듯 한 인간의 인성(personality)을 구성하는 한 측면은 다수의 욕망들의 계층구조로 이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 욕망들의 계층구조 속에 가장 꼭대기에 위치해 있는 욕망을 발견하는 게 현재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된다 하겠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의 타고난, 유전적 기질의 문제다. 우리 인간은 태어날 때 이미 일정한 성향을 갖고 태어나는데, 이러한 성향이 또 그 사람의 욕망에 일정한 방향성과 질적 특성을 부여한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도 우리는 이러한 점들을 재확인 할 수 있다.   


                                                                              *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작품의 스케일이나 질의 측면을 고려했을 때 고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버금갈 만큼 방대하고도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작품의 배경은 1805년 제1차 나폴레옹 전쟁 직전부터 1812년의 대(對)나폴레옹 조국전쟁을 거쳐 자유주의 기운이 러시아 사회를 뒤덮기 시작한 1820년까지의 러시아 역사이고,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도 알렉산드르 1세와 나폴레옹을 비롯한 실제 인물들과 무수한 가공 인물들로 손으로 일일이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나따샤와 안드레이 볼꼰스끼 공작, 그리고 삐에르 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세 사람의 로맨스만으로 이 작품을 압축시켜 놓으면 이 로맨스의 깊이를 제대로 이해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톨스토이가 말하고 싶어 하는, 보석 같은, 다른 이야기들을 많이 놓치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그 많은 등장인물들의 그 숱한 이야기들을 다 다룰 수도 없는 노릇이겠고. 

  이 작품의 에센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무수한 곁가지를 쳐내고 먼저 이야기의 뼈대를 구축해야 한다. 다행히 이 방대한 전체 이야기를 한 눈에 꿰뚫게 해주면서도 그 중심이 되는 사랑 이야기도 놓치지 않게 하는, 효과적인 접근 방법이 있다. 그건 바로, 작품 속 중요한 세 집안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하는 길이다.  

  세 집안은 바로 볼꼰스끼 공작 집안, 로스또프 백작 집안, 그리고 바씰리 공작 집안으로,  볼꼰스끼 공작 집안은 공작과 아들 안드레이, 그리고 딸 마리야로, 로스또프 백작 집안은 백작과 백작 부인, 큰 아들 니꼴라이와 딸 나따샤, 그리고 둘째 아들 빼쨔로, 마지막 바씰리 공작 집안은 공작과 딸 엘렌, 그리고 둘째 아들 아나똘리로 (큰 아들은 비중이 작아 생략) 구성되어 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 집안 구성원들은 각자 개성은 물론 다 다르지만, 초록이 동색이듯 서로 묘하게 닮아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이들 각자의 독특한 성격이 전체 이야기의 중심 사건들을 만들어내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그들의 성격이 곧 그들의 운명이 된다.         

  열다섯 번이나 수정을 가하고 수시로 박물관에 들락거리며 기록을 검토하고, 자기 집 서재를 참고 서류로 도배하다시피 하며 창작에 몰두했던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 집필의 어려움을 다음과 같이 토로하고 있다. 

 

  “이제부터 착수하려는 대작 가운데 나오는 여러 사람들에게 일어날 모든 사건을 구상하고 고쳐 생각하고, 그러한 여러 인물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몇 백만의 관계를 고려하고, 그 가운데서 백만분의 일을 골라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필자가 보기에 톨스토이가 이렇듯 힘겨운 일을 성공적으로, 그리고 거뜬히 해낼 수 있었던 건 바로 그가 이 세 집안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성격을 또렷하게 형상화해내고, 그럼으로써 그 각각의 성격에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구축해내고, 이를 통해 새로운 사건들을 하나하나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지 않았나, 싶다.                                             

                                                                             *


    제일 먼저, 볼꼰스끼 공작 집안사람들의 특성은 고귀한 정신성을 겸비한 현실적 합리주의 정신에 있다.  

    예전에 ‘프러시아 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육군 대장이었던, 볼꼰스끼 공작은 빠베르 황제 시대에 자기 영지인 ‘벌거숭이 산’으로 추방되었지만, 새로 즉위한 알렉산드르 1세에 의해 궁정 출입의 허가를 받는다. 하지만 그는 ‘벌거숭이 산’을 떠나지 않고 그곳에서 두문불출, 자기 나름의 생활 방식을 엄격하게 지키며 살고 있다. 모든 인간 악의 근원을 무위와 미신, 그 둘에 있다고 보는 그는 따라서 인간이 지켜야 할 선(善)을 오로지 활동과 지성뿐이라고 생각하는 노인이다. 그는 늘 세계가 돌아가는 정세와 러시아 상황에 대해 촉각을 세우고 열심히 정보를 수집하며, 서재에서 회상록을 집필하고 고등 수학을 연구하며, 그 밖에 정원 가꾸기, 자기 영지의 관리 감독, 그 밖에 딸에게 수학 공부까지 시키는 등 시간을 분(分)까지 나누어 쓸 정도로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한편 그의 아들이자 소설의 주인공인 안드레이 볼꼰스끼 공작은 강인한 정신력과 침착한 태도, 뛰어난 기억력을 구비한 박학다식한 귀족 자제로, 군 업무에 있어서나 농업 경영에 있어서 꼼꼼하고 야무지게 일을 처리하는 현실적인 합리주의자이다. 그는 무엇보다 명예라든가 공공의 복지와 같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훌륭한 것을 추구하기에, 전쟁을 치르고 있는 조국에 도움이 되고자 군에 입대하려고 한다. 대도시의 사교계 생활을 좋아하는 아내와 달리 사교계를 허영과 무위의 집합체이자 보잘 것 없는 일에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는 현재 임신을 한 아내의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다. 임신을 한 아내를 혼자 두고 갈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결국 ‘벌거숭이 산’에 아내를 데려다 놓고 군에 들어간다.  

  안드레이 공작의 여동생 마리야는 비록 얼굴은 오빠처럼 잘 생기진 않았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독실한 믿음을 갖고, 아름다운 눈빛과 그보다 더 고귀한 심성을 간직한 채 아버지를 돌보며 헌신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물론 기독교 신자로서의 마리야를 합리주의자라고 하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그녀는 높은 정신성을 가지고 기독교적인 윤리를 직접 몸으로 실천해 보이는 여성이다.

    

  두 번째로, 로스또프 백작 집안사람들은 냉철한 이성은 상대적으로 부족하지만, 인간에 대한 따뜻한 정을 나누며 사는 순수한 감성주의자들이다.   

  로스또프 백작은 마음씨 좋은 호인으로 수시로 집안에서 만찬을 베풀고, 가족들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등 가족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지만, 아쉽게도 자기 재산 관리 능력이 부족해 자산이 점점 줄어드는데도 불구하고 속수무책인 사람이다. 하지만 이렇듯 따뜻하고 정감 있는 집안 분위기는 백작 부인과 딸, 그리고 두 아들 모두 그들의 타고난 순진무구한 마음, 즉 인간의 본래적인 순정(純情)을 성인이 되어서까지 잘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배경이 된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면 이들은 아버지를 닮아 안타깝게도 하나같이 냉철한 판단보다는 늘 뜨거운 열정이 먼저 앞서 본의 아니게 실수를 하곤 한다.     

  그의 딸이자 소설의 여주인공인 나따샤는 타고난, 풍부하고 섬세한 감성과 삶에 대한 다혈질적인 열정을 아무 구김살 없이 마음껏 펼치며 살아가는 낭만적인 아가씨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처지와 그들의 마음에 대한 센스와 이해력이 뛰어나며 동정심이 많고 정의감도 있어 필요할 때엔 자기희생도 전혀 마다하지 않는 여성이기도 하다.        

  두 아들 니꼴라이와 빼쨔는 성인이 되어가는 길목에서 둘 다 조국과 황제를 위해 기꺼이  자기를 희생하려는 젊은이이다. 이 두 청년의 마음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는, 러시아에 대한 애국심과 황제에 대한 충성심은 청년기의 남자 아이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자기 조국에 대한 순수한 열정의 결정체라 할 수 있겠다. 형인 니꼴라이는 전쟁 중에도 황제 앞에서 그를 위해 죽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공상에 잠기곤 하며, 부모가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형의 뒤를 이어 군에 들어간 빼쨔는 자기의 열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주위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채 용감무쌍하게 적군 깊숙이 뛰어들다가 허무하게 전사하고 만다.    


  마지막으로 바씰리 공작 집안사람들은 아무런 정신성도 윤리성도 없는, 이 시대의 전형적인 속물 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유력한 권세가이자 세련된 사교계 인사인 바씰리 공작은 언제 어디서나 성공의 가능성이 보이기만 하면 자기도 모르게 이에 접근하는 게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귀족이다. 새로운 상황이나 사람을 만나면 저절로 자기에게 유리한 계획이나 생각이 떠오르고, 자기보다 힘이나 돈이 많은 사람들에게 무의식적으로 끌리곤 하는 그에게는 하지만, 늘 골치를 썩이는 자식들이 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큰 아들을 고위 공직 자리에 앉히고, 미모가 뛰어난 딸 엘렌을 부호에게 시집보내고, 말썽꾸러기이자 방탕아인 둘째 아들 아나똘리의 빚을 청산해주어야 한다. 

  그의 딸이자 사교계의 꽃인 엘렌은 자기를 보고 황홀해지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허영과 사치의 여인이다. 그녀는 아버지 바씰리 공작과 황태후의 여관(女官)이자 최고 상류 사회의 사교계를 이끄는 안나의 합동 작전으로 갑자기 거대한 유산을 상속받은 삐에르와의 결혼에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남편에 대해 전혀 관심도 애정도 없는 그녀는 남편을 두고 계속 불륜을 저지르다가 나중엔 천연덕스럽게 두 남자와 동시에 연애를 하게 되는데, 결국 그 중 한 사람인 고위관리 노백작의 사주를 받은 게 아닌가, 의심이 되는 독약이 든 음료를 마시다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둘째 아들 아나똘리는 2년 전 그의 연대가 폴란드에 주둔하고 있을 때, 그다지 부유하지 않은 어느 폴란드 지주의 딸과 결혼하지만, 곧 그 아내를 버리고 장인에게 정기적으로 돈을 보낸다는 약속 아래 독신자의 자유를 얻는다. 또한 해마다 도박으로 2만 루불이나 되는 빚을 지고 그 빚을 아버지에게 떠넘긴 채, 언제나 명랑, 쾌활하게 살아가는 미남자이다. 

  그가 늘 밝고 자신만만하게 살아가는 건 마치 오리가 항상 물에서 살도록 만들어진 것처럼, 자기는 당연히 연 3만 루불의 수입으로 생활하고 항상 사회의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도록 하느님에 의해서 창조되었다고 스스로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는 자기의 지위와 자기 자신에 대해 항상 만족하고 있는데, 애석하게도 자기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 성품이다. 노름도 출세도 명예도 비웃고, 인색한 편도 아닌 그가 좋아하는 유일한 일은 인생을 즐기는 것과 여자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빠뜨려서는 안 될 인물은 또 다른 주인공인 삐에르이다. 

  삐에르는 항상 꿈을 쫓고,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을 알고 싶어 하는 공상가로, 안드레이 공작과는 달리 실제적인 일들에 대해서는 관심도, 능력도 별로 없는 지식인이다. 

  뚱뚱하고 키도 보통보다 큰 그는 이제 막 외국에서 교육을 받고 돌아와 사교계에 입문하지만, 황태후의 여관인 안나가 눈을 찌푸릴 정도로 사교계에 서투르기만 하다. 그는 응접실에 들어오는 요령도, 물러날 때 남겨야할 재치 있는 인사도 할 줄 모르는데다가 상대방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않고 곁을 떠나거나, 자기한테서 떠나야할 상대방을 자기 이야기로 붙잡아 두는 등 안나의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하지만 대부호인 베주호프 백작의 사생아인 삐에르가 갑자기 발생한 백작의 사망으로 엄청난 유산을 받게 되자 삐에르는 한순간 사교계의 관심의 초점이 된다. 바씰리 공작과 가까운 사이인 안나는 파티에서 삐에르를 가슴이 깊이 파인 드레스를 입은 엘렌 가까이 앉혀 놓음으로써 그녀의 육체에 그의 시선을 결박시켜 놓는데 성공한다. 이어 바씰리 공작은 자기 집에서 연회를 열어 엘렌과 삐에르 둘만 방에 남겨놓는다. 아무리 애타게 기다려도 소식이 없자, 바씰리 공작은 인상을 쓰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드디어 큰 발걸음을 내딛는다. 바씰리 공작은 삐에르에게 성큼 다가가 다짜고짜 결혼을 축하한다고 악수를 한다. 

  이렇게 마음에도 없이 주위 사람들에게 이끌려 엘렌과 결혼하게 된 삐에르.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가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곧이어 아내가 돌로호프와 내연의 관계에 있다는 걸 자기만 모르고 누구나 다 알고 있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 경찰서장을 곰에 잡아매서 물속에 던지거나 역마차의 말을 권총으로 쏘아 죽이던 돌로호프의 과거 행적을 떠올리며 그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삐에르. 하지만 결투장에서 돌로호프에게 먼저 총을 쏜 삐에르는 다행히 총알이 빗겨간 걸 보고 안심하면서 동시에 남을 죽이려고 한, 자신의 행위에 충격을 받는다. 절망 속에서 아내에게 헤어지자고 하지만, 만약에 자기에게 재산을 준다면 헤어지겠다는 아내에게 격노하며 집을 나온다. 

  한편 바씰리 공작은 이번엔 골치 덩어리인 둘째 아들 아나똘리 문제를 해결하러 집을 나선다. 아나똘리를 권세 있고 돈 많은 볼꼰스끼 공작의 딸 마리야와 맺어주기 위해 ‘벌거숭이 산’을 찾아가는데, 그 속셈을 다 알아챈 볼꼰스끼 노공작의 냉대를 받고 그만 뜻을 접는다.

  

  한편 군에 입대한 안드레이가 전사했다는 통지를 받고 반신반의하는 볼꼰스끼 공작 가족들. 드디어 안드레이 공작 부인이 막 아기를 해산하려고 하고 있는데, 안드레이 공작이 눈이 쌓인 모피 코트를 입고 나타난다. 하지만 남편 앞에서 아들을 순산하고 목숨을 잃고 마는 공작 부인. 안드레이는 자기가 아내에게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었다고 자책한다. 이제 ‘벌거숭이 산’ 근처에 있는, 독립된 자기 영지에 건물을 짓고 학교와 병원 건축, 농업 경영 등에 몰두하는 안드레이. 

  한편 아내와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감을 갖고 기차에 탄 삐에르는 그 안에서 한 인상적인 노인을 알게 되고 그에게 영향을 받아 프리메이슨 (평등과 형제애 등 인간의 도덕적 완성을 목표로 하는 종교 비밀결사 단체)에 가입하게 된다. 이어 자기 영지를 둘러본 삐에르는 안드레이를 만나보러 ‘벌거숭이 산’에 들린다. 그곳에서 예전의 활기를 잃고 우울하게 살고 있는 안드레이를 보며 안타까워하는 삐에르. 하지만 안드레이는 믿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친구인 삐에르의 긍정적인 이야기를 듣고 미약하게나마 그에게서 선한 영향을 받는다. 

  일 년 후, 겨우내 고립된 생활을 영위했던 안드레이는 새로운 봄을 맞이하여 이제 막 다시 소생하는 자연에 감탄하는데, 이 지역의 귀족 단장인 로스또프 백작을 만날 일이 있어 그의 저택을 향하게 된다. 거의 도착할 무렵 안드레이는 자기가 탄 마차 옆을 크게 웃으며 달려가는 나따샤의 쾌활한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는데, 그날 밤 백작의 저택에서 하루 밤을 묵게 된 안드레이는 잠이 안 와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연다. 이때 위층 창문 밖으로 흘러나오는 뜻밖의 목소리에 놀라는데, 

 

  “쏘냐, 이토록 아름다운 밤에 어떻게 잘 수 있어?”

 

  어둡고 조용한 밤, 나따샤가 쏘냐 (나따샤와 한 집에 살고 있는, 먼 친척으로 나따샤의 가장 가까운 친구임)에게 건네는, 들뜬 듯 탄식하는 소리를 듣자, 안드레이는 아까 낮에 보았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상한 설레임을 느낀다.

 

  한편 다시 빼쩨르부르그에 돌아온 삐에르는 프리메이슨의 중심인물이 되어 활동하지만, 프리메이슨 사람들의 생각이 자기와 달라 점차 불만을 느끼는데, 아내가 보낸 참회의 편지와 장모의 간절한 부탁으로 아내와 재결합하게 된다. 하지만 또다시 시작된, 사교계에서의 아내의 불성실한 행실 때문에 우울증이 도지는 삐에르. 

  때마침 우연히 아버지와 이곳 무도회에 처음 참가하게 된 나따샤는 안드레이와 춤을 추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점점 더 그녀에게서 생명력이 넘치는 매력을 느끼는 안드레이는 결국 청혼을 결심한다. 서둘러 아버지 볼꼰스끼 노공작에게 결혼 승낙을 구하지만, 자기 가문보다 재산이나 명예가 뒤떨어지는 로스또프 집안 딸과 결혼하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노공작은 안드레이에게 일 년 간 외국에 갔다 오면 결혼을 승낙하겠노라고 말한다. 크게 실망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안드레이.   

  안드레이는 이 소식을 나따샤와 로스또프 백작 부부에게 알리고 외국으로 떠난다. 잔뜩 사랑과 꿈에 부풀었던 나따샤는 갑자기 돌변한 상황에 당혹스러워 한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침울해 하는 나따샤. 아버지와 함께 미래의 시부모가 될, 볼꼰스끼 공작 저택을 방문해보지만 환영을 받지 못한다. 그런데 이 와중에 참석하게 된 오페라 극장에서 나따샤는 아나똘리의 집요한 눈길을 받게 되고, 다른 연회에서 또다시 그녀에게 접근한 아나똘리는 더 없이 부드럽고 뜨거운 시선을 던지며 다음과 같이 사랑고백을 한다.


  “나는 미치도록, 미치도록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그토록 매력적이라고 해서, 내가 나쁜 것은 아니잖습니까?”


  얼떨결에 그의 키스까지 받게 된 나따샤는 엄청난 혼란에 휩싸인다. 급기야 그를 사랑하고 있다고 확신하게 된 나따샤는 자기와 함께 외국으로 도피를 하자는 아나똘리의 편지 (이 계획은 애초에 그의 친구 돌로호프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를 받게 된다. 하지만 막 집을 떠나려는 찰라, 쏘냐의 의심과 추궁으로 결국 그 계획이 탄로 나고 만다. 

  한편 삐에르는 그저 습관적으로 다시 사교계와 클럽에 드나들며 자기 혐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나따샤에 관한 소식을 듣게 되자 아나똘리를 만나 혼쭐을 내주며 당장 이 도시를 떠나라고 명령한다. 처음엔 아나똘리의 과거 행적을 믿지 않던 나따샤. 삐에르를 통해 더 이상 아나똘리라는 인물의 삐뚤어진 인간성을 부정할 수 없게 되자 치욕과 불명예의 구렁텅이 속에 빠져버린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크게 병을 앓는 나따샤. 로스또프 백작의 간곡한 부탁을 받고 나따샤를 만난 삐에르는 이제 자기에겐 모든 것이 다 끝났다는 나따샤의 절망적인 말을 듣는다. 삐에르는 그녀에게 절대 그렇지 않다, 만약에 자기가 이 세상에서 최고 미남이고 머리가 좋고 뛰어난 인간이라면, 그리고 자유로운 몸이라면 당장 무릎을 꿇고 당신의 사랑을 구할 거라고 말한다. 실로 오랜만에 감사와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나따샤. 삐에르도 한동안 자기 가슴을 진정하지 못한다.       


  한편 결국 나따샤와 아나똘리가 사랑의 도피 행각을 하려 했다는 추문을 알게 된 안드레이는 이런 시시한 남자 때문에 자기가 불행에 빠졌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한다. 아나똘리에게 결투를 신청하려 하지만 그는 이미 군대로 떠나버린 상태인데. 이때 마침 꾸뚜조프 총사령관의 부름을 받은 안드레이는 아나똘리도 만날 겸 전투지로 찾아가지만 그를 만나지 못한다. 결국 안드레이는 모든 것을 잊고 단순하게 군 업무에 집중함으로써 애써 마음의 평정을 얻으려 한다.  

  한편 삶의 의욕을 잃고 방황하는 나따샤는 기도생활을 통해 차츰 심리적 안정을 취하는데. 자기가 나따샤를 사랑한다는 걸 깨달은 삐에르는 다신 로스또프네를 방문하지 않으리라 마음먹는다. 모스크바에 침입하기 시작한 프랑스 군을 보고 모스크바를 떠나는 삐에르. 격전지인 보로지노 전투 현장에 와 전쟁의 참혹함을 몸소 체험하면서 영웅 나폴레옹을 환멸하게 된다.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온 삐에르. 여기저기 불에 타고 있는, 모두가 떠나버린 유령의 도시 모스크바를 목도한다. 마침내 나폴레옹을 죽이려고 결심을 하고 권총과 농민복을 준비해 집을 떠난다. 어느 불타고 있는 집안으로 뛰어들어가 잃어버린 딸아이를 부모에게 찾아주려다 프랑스 군인에 의해 방화범으로 몰려 독방에 수용된다. 그리고 그곳 감방에서 우연히 뽈라똔이라는 농부를 만나는데, 그에게서 원만하고 영원불변한 소박함과 진리의 화신이라 할,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한다.   

  한편 가장 치열했던 전장에서 포탄을 맞고 쓰러진 안드레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숱한 추억과 사념에 휩싸인다. 차츰 명예라는 자기의 헛된 미망에서 벗어나면서 다른 이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느끼는 안드레이. 하지만 자기 삶이 이제 끝났다는 걸 깨닫는다. 

  한편 우왕좌왕 끝에 결국 모스크바를 떠나기로 결심한 로스또프네 가족들. 마차로 이동하다가 한 마을에 머물게 되는데, 그곳에서 부상병들을 실은 마차 속 안드레이를 발견하게 된 나따샤는 안드레이과 극적으로 상봉한다. 눈물로 용서를 비는 나따샤. 그리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두 사람. 결국 나따샤의 품안에서 숨을 거두는 안드레이.

   

  안드레이를 보내고 나서 혼이 빠진 듯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따샤는 갑자기 날라 온 빼쨔의 사망 소식을 듣고 쓰러진 엄마를 전심전력으로 위로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다시 기운을 되찾는다. 한편 러시아를 버리고 퇴각하는 프랑스 군인들의 무방비한 상태 덕분에 간신히 도망쳐 나온 삐에르는 아내가 사망했음을 알게 되고 나따샤를 통해 안드레이의 마지막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는 그녀를 위로하는 삐에르.

  

  “우리는 익숙해진 길에서 내던져지면 만사는 끝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지만, 실은 거기서 새롭고 훌륭한 일이 시작됩니다. 목숨이 있는 동안은 행복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것도 없어요.”

  “아닙니다, 아닙니다. 내가 이렇게 살고 있고 또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포로 생활을 통해 자신의 내면이 한 단계 단단해진 것을 느끼는 삐에르. 드디어 나타샤와의 청혼을 결심한다.


                                                                               *


  거칠게나마 소설의 줄거리를 정리해 보았다. 줄거리를 꼼꼼하게 잘 살펴보면 우리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 마디마디에 등장인물들의 독특한 개성이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인지할 수 있다. 각기 다른 등장인물들의 장점과 단점이 특수한 상황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리고 다른 인물들의 특성과 만나 어떻게 새로운 국면을 전개시켜 나가는지를 주목해 보면 더 재미있게 전체 이야기를 꿰뚫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전쟁과 평화>속에 구현된 이야기가 얼마나 개연성이 높은 내러티브인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늘 꿈을 쫓는 공상적 기질의 삐에르는 자기 주위의 실제적인 일에 둔감하기에 바씰리 공작과 안나의 교활한 공작(工作)을 감지하지 못하고 얼떨결에 사랑하지도 않는 엘렌과 결혼을 함으로써 온갖 수모와 치욕을 겪게 되지만, 인생의 궁극적 목적을 탐구하는 성향으로 인해 집을 떠나 프리메이슨에 가입도 하고 전장에 직접 참가해 전쟁의 참혹함과 영웅의 허상을 깨닫기도 한다. 또 프랑스군에 점령돼 모두가 떠나버린 모스크바가 불에 타는 유령의 도시로 화하자 나폴레옹을 죽이려 집을 나서지만, 우연히 목격한 화재 현장에서 아이를 구하려 뛰어들다가 포로가 되는데, 오히려 감방에서 만난 뽈라똔이라는 농부를 통해 자기가 추구하던, 심원한 정신적 성숙을 이루게 된다. 

  현실적 합리주의자인 안드레이는 현실적인 명예를 추구해 군에 입대해 아내를 잃고 절망에 빠지지만, 아버지의 명으로 나따샤까지 잃게 되자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아나똘리를 만나러 다시 전쟁터로 간다. 하지만 그를 만나지는 못하고 누구보다 용감하게 앞장 서 싸우다가 명예롭게 전사하게 되는데. 죽음 앞에서 비로소 세속적인 명예의 헛됨을 깨닫고 삶의 궁극적 의미를 발견한다. 

  낭만적 열정주의자인 나따샤는 삶에 대한 생명력 넘치는 열정을 갖고 살다가 안드레이를 기다려야 하는 일 년이라는 기간을 견디지 못하고, 아나똘리의 미친 듯한 사랑의 고백 앞에서 그만 냉철한 판단을 잃고 만다. 이후 그녀가 견뎌야 할 엄청난 수모와 고통이 이 한 순간의 착각에서 비롯됐음을 생각하면 어이가 없지만, 젊은 그녀의 다혈질적인 기질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녀의 순정은 죽음 앞에 놓인 안드레이에 대한 사랑으로 다시 살아나고, 혼신을 다해 간호하던 나따샤는 결국 그에게서 용서를 받는다. 

  마지막으로 그때그때마다 자기의 세속적이고 육체적인 욕망에 따라 살아가는, 엘렌과 아나똘리는 자기들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떠한 결과를 낳을지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도 끝내 반성할 줄 모른다는 점에서 동일한 DNA를 보여준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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