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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잘하는 사람은 없다.

쉴만한물가_20220307

말만 잘하는 사람은 없다.


말만 청산유수다. 사실 이 말은 거침없이 말을 잘하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의미보다 부정적인 의미가 더 부각된 표현이다. 이에 덧대어 말만 하고 행동하지 않거나, 말과 행동이 다른 것까지 연결짓는다. 유교문화가 팽배해서 말을 삼가야 했던 우리 문화에서는 더더욱 이 말의 부정적 뉘앙스가 크다. 하지만 이를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그래서 말이라도 잘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는 얘기를 하려고 한다.


성경에 보면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는 말이 있다. 비둘기가 순결하다는 것은 외형적 요소로는 수긍이 가지만 비둘기 군락지에 쌓인 배설물을 보면 의아해 진다. 이를 차치하고 더 납득이 어려운 것은 뱀이 지혜롭다는 것이다. 인류 타락의 원조로 각인되어 사악하고 교활한 이미지를 가진 뱀이 지혜롭다는 긍정적인 표현은 우리 문화에서는 낯설다. 그래서 이 말을 지혜를 말할 때 인용하긴 하지만 꺼림직 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이 말은 말과 연관되어 있었다.


중동의 문화에서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는 낮 시간은 대개 그늘에 모여 있게 된다. 그런데 그냥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런 이야기들의 밑천은 하루 이틀이면 금새 동이날 것이다. 그래서 뭔가를 계속 이야기 하려면 말하는 사람에게는 많은 경험, 연륜, 지식, 배움등 보고 듣고 담아 있는 것이 많아야 말을 오래 많이 할 수 있다. 그래서 말을 많이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은 지식과 경험이 많다는 것을 반증한다는 것이다. 뱀을 지혜롭다고 표현하는 것은 그렇게 많이 말할 수 있는 혀가 뱀은 두 개나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중동의 문화에서는 뱀을 지혜롭다고 말한다고 한다. 중동의 문화를 모르면 풀리지 않을 얘기였다.


말을 많이 해야 좋은 것은 아니다. 그만큼 실수도 많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잔소리처럼 하나마나한 이야기야 당연히 줄여야 하겠지만, 쓴소리는 그래도 뭔가를 알아야 제대로 할 수 있다. 그래서 때에 맞는 말은 금보다 귀하다고도 한다. 그러니 말이라도 잘하는 것은 안에 담겨 있는 것도 많아야 하고, 그것을 통해 사람과 사건에 대한 분별력도 있고, 지혜가 있어야 대안도 분석도 대안도 제시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런 말이 아닐 땐 금새 듣는 이들이 잔소리인지 쓴소리인지 단소리인지 아닌지 들통이 나게 된다. 알아야 면장도 한다는 옛말이 괜히 생긴게 아닌 것이다.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직업 특성상 늘 그런 말과 글을 매일 써야 하기에 이러한 부분을 매일 절감하고 있다. 뭘 아는게 있어야 보이고, 말귀도 알아먹고, 그리고 내 안에 있는 어떤 것을 글이나 말로 표현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어휘를 사용해 글을 쓰느냐도 그 사람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어떤 말을 하지 않느냐에 따라서도 그 사람의 이면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말과 글에 대한 이해와 의미의 전달은 한층 더 복합적이다. 곧 말과 글에서 단어는 문장이, 문장은 문단이, 문단은 전체 맥락과 주제에 따라서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 그런데 이러한 글을 직접 말로 할 경우에는 더 결정적으로 의미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어조(억양)와 태도이다. 같은 말이라도 어떤 어투와 태도로 하느냐에 따라서 극과 극으로 호불호도, 진위여부도, 의미도 달라지고 자연 글을 통해 전하려는 호소력도 달라진다. 그래서 글로만 그 사람을 알다가 그가 말하는 것을 들어 보면, 이 사람이 말만 잘하는 사람인지, 글만 잘 쓰는 사람인지, 그 사람의 말과 글의 진정성을 가늠해 볼 수 있게 된다.


아마도 말만 잘한다는 부정적 의미는 이러한 어조와 태도에 의해서 그 사람이 언행이 불일치 한 경우가 많아서라고 생각한다. 이런 경우 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한 두 마디만으로는 부족하다. 오랜 시간동안 그의 말과 삶을 되짚어 봐야 그 사람의 진면목을 분별할 수 있게 된다. 어른들이 꼰대가 되느냐 어른이 되느냐 하는 것은 이러한 진면목을 제대로 분별하여 말과 글을 적절히 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물론 하나를 보고 열을 알 수도 있지만 이 또한 그 하나가 실수가 아니라 평소에 몸에 배인 습관일 때 맞는 얘기다. 그러니 말을 잘한다는 것을 마냥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이 말이라도 잘해야 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는 역으로 그가 아는 것과 경험한 것이 많다는 얘기고, 그런 삶에 체적된 지식과 지혜가 분명 있다는 얘기다. 그런 말을 잘한다는 것은 그의 태도가 하루아침에 생긴게 아니라 제대로 익어 있다는 것이고, 이는 곧 그 사람의 인격에도 고스란히 묻어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이들의 설익은 설화가 설왕설래하며 설치고 있다. 글로 사실 뿐 아니라 진실을 전해야 하는 언론은 오래도록 힘과 협박과 결탁에 생존을 위해 발악하다가 진짜로 병들고 왜곡되어 제 역할을 못하고 오히려 불필요한 논쟁을 선동하고 있다. 그런 혼돈 속에서 우리는 한 사람을 지도자 혹은 일꾼으로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있다. 우리는 그런 그들의 말과 글을 분별해야 한다.


그런데 그간 쏟아낸 말과 글의 진위 여부를 우리가 직접 목도한 것이 아니기에 제대로 알 수는 없다. 다만 그의 말과 글에 그 사람의 인격과, 가치관과 세계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전제할 때, 그가 지금 말하는 단어, 어휘, 어조를 비롯하여 그의 태도를 통해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그런 말을 제대로 들을 기회가 많지 않았으나 편파적으로 전해진 것들을 조금만 관심을 갖고 모아서 상식적으로 살펴보면 어느 정도는 분별이 되리라 본다. 그래서 무관심이 문제이지 잘 알 수 없다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


말만 잘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정치인은 말만 잘할 수 없다. 알고 듣고 보고 경험하고 쌓인 지혜가 있어야 말이라도 잘할 수 있다. 그러니 우선 말이라도 잘하는 사람을 알아봐야하고, 그런 말도 제대로 못하는 이라고 한다면 아직 그는 부족함이 있다고 봐야 한다. 혹은 글과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적성을 찾아 봐야 한다. 자신이 설 자리를 아는 것 또한 지혜다.


이제 내일이면 그간 걸어온 말의 여정에 대한 평가가 결정되는 날이다. 정치인은 그의 언행을 지켜본 시민에 의해 호불호가 결정된다. 시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선택한다. 지혜자를 알아보는 것도, 선동에 놀아나는 것도, 진위 여부를 판갈음하는 것도, 시민의 몫이고, 그런 선택의 결과에 대해 감당해야 하는 것도 시민의 몫이다. 말만 잘하는 사람이라 매도하지 않고, 말이라도 잘하는 지혜를 담은 사람을 잘 분별할 수 있길 빈다.


2022년3월7일

20대 대선을 앞둔 평화의길벗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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