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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Jun 16. 2023

원래 마음 주인에게 죄책감을 돌려주다

온전한 나로서 존재하는 자유를 느끼다

원래 마음 주인들에게 죄책감을 돌려주다


전남편은 처음부터 자신이 나에게 너무 잘해줘서 내가 눈이 높아져 고마움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예민하고 까다로운 자신을 이해하고 맞추려는 노력을 가치 없다고 폄훼하며 배우자에 대한 고마움을 잃은 사람은 정작 본인이었다. 그는 말하지 않은 속마음을 알아채서 헤아려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는 이상주의자였다. 비현실주의적인 그의 기대는 애초에 맞출 수 없는 불가능한 미션이었다.


부모님은 성인으로서 독립해서 살아가려고 발버둥 치는 자식을 용인하지 않았다. 왜 살갑고 다정하게 외롭고 공허한 자신들의 마음을 살펴주지 않느냐며, 성격이 이상하다며 끊임없이 나를 탓했다. 왜 자신들에게 의존하지 않느냐고 유별나다며 가스라이팅을 서슴지 않았다. 자신만의 인생을 꾸려가는 자식을 칭찬하고 격려는 못할 망정 이기적이라고 몰아가며 끝없는 죄책감을 심어주었다. 알코올 의존증 아버지와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라는 엄마의 비상식적인 요구는 이제 그만 말하려고 한다.


내가 부모님께 바란 것은 경제적 지원도, 심리적 보상도 아닌 오로지 그들의 온전한 행복이었다. 지금껏 삶을 알토란 같이 잘 일궈온 만큼 노년에는 아프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인생을 즐기며 행복하게 살기만을 바랐다. 그런데 그들은 다 큰 자식이 곁에 꼭 붙어서 자신들이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고 살아야만 비로소 행복하다고 억지를 부렸다. 자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조종하고 통제할 수 있는 소유물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헛된 마음을 끝끝내 버리지 못하고 있다.


결혼했을 때는 시부모님까지 합세해 왜 자신들의 외롭고 억울한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느냐며 아우성이었다. 내가 없었을 때는 각자 알아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잘 살았을 양반들이 무슨 물귀신처럼 무섭게 들러붙었다. 도리라는 명목으로 선한 마음에 빌붙어 자신들이 껄끄러워서 차마 하지 않던 일들을 나에게 전가해 막무가내로 정서적 결핍을 채우려 들었다. 자신들의 선택으로 말미암은 죄책감을 나에게 일방적으로 떠넘겨 너무나 손쉽게 씻어내려고 하였다.


자식이 없는데도 결혼생활이나 원가족과의 생활은 마치 내 돌봄을 기다리는 자식을 다섯 명은 둔 것 같은 중압감에 짓눌린 시기였다. 어머니와 아버지, 전남편과 전 시부모님까지 정확하게 딱 다섯 명이었다. 퇴고를 하며 이 시기를 떠올리니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숨이 막히는 것만 같다.




어쩌면 그들의 요구와 기대치에 너무 잘 부응해 내가 만든 줄에 나 스스로 묶여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무한정 의존하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일깨우고 키워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이런 말은 참 우습지만 전남편에게도, 부모에게도 모자람 없이 묵묵하게 한결같이 너무 잘해줘서 ‘호의가 계속되니 권리’인 줄 알도록 내버려 둔 건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의존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나의 진정한 소중함을 외면하고, 고마운 마음을 애써 부정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평생을 옥죈 뿌리를 알 수 없던 죄책감과 불편한 감정의 실체를 알게 되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책임감과 죄책감에 명확한 선을 그었다. 전남편, 전 시부모, 부모님이 이기적으로 나에게 떠넘긴 그들 몫의 감정들을 원래 마음의 주인들에게 돌려주었다. 그동안 양어깨와 가슴을 짓누른 과도한 책임감과 죄책감을 내려놓자 비로소 온전한 내 몫의 인생이 또렷이 보였다. 나에게서 정서적 결핍을 넘치도록 채우고자 한 흡혈귀들에게 벗어나자 쓸데없는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내면의 힘과 정신력이 강한 편이지만,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감정 소모가 많은 편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부터 쉽게 지쳐서 곧잘 예민해지고 피로감이 높은 편이라 하루 8시간 이상을 반드시 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피로 해소가 잘 되지 않는데, 요새는 수면 시간을 6~7시간으로 줄여도 끄떡없다.


그동안 온 가족의 정서적 결핍을 채워 달라는 과도한 요구에 얼마나 시달리며 정서적 피로감을 느끼고 에너지를 뺏겼는지 새삼 깨달았다. 이제라도 정신 차려서 마음을 독하게 먹고 정신적 흡혈귀들을 떨구자, 에너지를 오로지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에너지를 내가 쓰고 싶을 때, 쓰고 싶은 곳에 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난생처음 느끼는 가벼운 황홀감과 두근거리는 설렘이었다. 후련하고 자유롭고 여전히 불안한 가운데서도 어느 때보다 편안하고 안락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 충만함과 행복감이 더없이 소중했다. 지금껏 왜 그리 바보 같이 살았나 싶어서 회한을 담은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다시는 가족이든, 연인이든 그 누구라도 마음껏 사랑하되 예전처럼 나 자신을 좀먹는 관계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혼자 있어도, 둘이 같이 있어도, 여럿이 어울리더라도 온전한 나로서 존재하는 것 같은 자유로움을 사랑하기로 했다. 내가 사는 이 세상이 참 아름다워 보였다.



심리에세이 <부모님과 헤어지는 중입니다> 중 '원래 마음 주인들에게 죄책감을 돌려주다'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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