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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Jun 17. 2023

부모님과 여전히 거리를 두는 중입니다

<부모님과 헤어지는 중입니다> 에필로그

부모님과 여전히 거리를 두는 중입니다

부모님과 여전히 거리를 두는 중입니다


“이번 주는 어떠셨어요?”


심리상담을 시작하는 선생님의 가벼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언젠가부터 난감했다. “잘 지내고 있어요”, “그럭저럭 지내고 있어요”라고 답변하고서 막상 상담이 끝날 즈음에 울지 않은 날이 드물기 때문이다. 나는 잘 지내고 있는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나는 과연 괜찮은가. 이 또한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밥 먹고 잠자고 일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일상생활은 어렸을 때부터 독립적으로 생활했듯이 익숙한 대로 잘해 나가고 있다. 괜찮은 것 이상으로 일상에서는 만족하며 성취감이나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그런데 원가족을 떠올리거나 그들과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도저히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할 수만은 없는,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부채감이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여전히 남아 있다. 상담에서 웃으면서 크고 작은 근황을 말하다가 무의식에 자리 잡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다 보면 결국 눈물짓는 상황을 반복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독자 여러분께서 좀 전에 읽은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감정을 담은 글의 초고는 지난해 여름에 작성했다. 나도 그때는 괜찮은 줄 알았는데, 상처를 치유하고 오랜 억압으로 마음속 깊숙이 각인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그리 간단치는 않은 것 같다. 부모는 나 자신의 근원이고 가족은 인간관계의 출발이다. 부모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들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관계를 재정립하는 과정이 손쉽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할 일이다.


괜찮은 것 같았는데 다시 불쑥 트라우마가 떠올라서 고통스럽다가 다시 잠잠해지기를 반복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치유의 과정이다. 상처가 깊을수록 회복의 시간이 더딘 것은 당연하다. 감정적 고통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조급함을 버리자 역설적이게도 마음속 상처에 딱지가 앉고 나날이 아물고 있다고 느낀다. 내 안의 약간 어긋나고 조각나 있던 어른 자아와 어린 자아가 비로소 하나로 통합되고 있는 것 같다. 조만간 상담 선생님의 한 주 동안의 감정을 묻는 질문에 분열된 감정을 두고 고민하지 않고, 현재의 내 실제 감정에 가까운 좀 더 분명한 대답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올해 2월에 25주년 기념으로 재개봉한 영화 「타이타닉」을 극장에서 3D로 봤다. 이미 서른 번도 넘게 본 좋아하는 영화인데, 이번에는 로즈와 잭의 절절하고 낭만적인 사랑이 아니라 독립적인 로즈와 의존적인 엄마의 관계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 엄마: 아버지가 남긴 빚을 우리 이름값으로 막고 있어. 우리에겐 그 이름밖에 없어. 널 이해 못 하겠구나. 하클리 가문은 훌륭해. 우리도 살아남을 수 있어.
- 로즈: 왜 제게 그런 짐을 주세요?
- 엄마: 넌 왜 그리 이기적이니?
- 로즈: 제가 이기적이라고요?
- 엄마: (울먹이며) 내가 재봉사로 일하는 걸 보고 싶니? 그걸 원하는 거야? 우리 물건이 경매에 넘어가는 걸 보고 싶어? 우리 추억을 날려버리고 싶니?
- 로즈: 불공평해요.
- 엄마: 그야 당연하지. 우린 여자니까. 여자에게 선택권은 없단다.


체면을 너무 중시하고 사고(思考)는 편협하며 현실 감각은 떨어지고 위선적인 로즈의 엄마는 마치 내 엄마를 보는 것 같았다. 로즈의 엄마가 로즈를 사랑하지 않거나 행복하지 않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자식을 불만족스러운 현실을 구제할 대리자나 도구로 여기는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자신의 가치관을 따르지 않는 자식에게 ‘이기적’이라며 죄책감을 자극하는 가스라이팅도 서슴지 않는다. 처지를 비관하며 ‘내가 재봉사로 일하는 걸 보고 싶니?’라고 울먹이는 부모에게 ‘네, 재봉사로 일해야 한다면 하셔야죠. 못할 건 또 뭐예요?’라고 냉정하게 말할 수 있는 자식이 얼마나 될까.


로즈는 엄마의 정신적 억압에서 벗어나 조금씩 변하면서도, 오랫동안 몸에 밴 엄마를 향한 의무감과 일말의 죄책감을 완전히 떨치지는 못하는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엄마의 더 이상 용납하기에는 한계를 넘어버린 허세에 절은 위선적인 밑바닥을 보고는 냉철한 현실 감각을 깨친다. ‘굿바이, 마더’라는 짧은 작별 인사를 끝으로 미련 한 점 없이 엄마를 등지고 뒤돌아서 비로소 온전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 마침내 엄마에게 완전히 벗어나 인생의 키를 오롯이 자신이 쥐고 자기라는 배의 선장이 돼 인생이라는 망망대해를 제대로 항해하게 된다.


우리는 좀 더 쉽게, 좀 더 일찍 ‘굿바이, 마더’, ‘굿바이, 파더’라고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자신의 인생이 열릴 테니까.



심리에세이 <부모님과 헤어지는 중입니다> 중 '에필로그'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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