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안의 전체적인 인상
도시로서의 시안의 전체적인 인상은 ‘인위적인’, ‘개성 부족’이다. 어느 도시 못지않게 갖출 건 다 갖추고(웬만한 세계적인 식품, 의료 등의 브랜드도 거의 다 입점돼 있는 듯 보인다), 잘 정비돼 있으며, 높고 거대하고 깨끗한 새로 지은 건물이 즐비하지만 정이 가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정부의 주도로 치밀한 전략과 계산 아래 빈틈없이 조성된 ‘초거대 무결점 계획 신도시’의 무미건조한 위용을 시안 어디서나 느낄 수 있었다.
셴양 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임 박사님은 ‘(몇 년 사이에) 공항에 이런 식당이 다 생겼단 말이야?’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세계 여느 공항에서 흔히 볼 법한 평범한 식당 하나에도 놀랄 만큼 시안은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인프라가 매우 부족한 낙후된 지역이었다고 짐작할 수 있었다.
시안은 중국의 완전한 내륙에 위치하고 있는데, 물 부족과 황사 문제 등을 해결하고자 인공비와 인공눈을 동원해 환경적으로 살기 좋은 곳으로 조성하고자 정부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또한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의 고향이라는 점을 내세워 집중적으로 적극적인 개발을 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구축하는 데 시안이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실크로드의 기점이라는 상징성을 정치적으로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시안은 ‘고향 외교’에 최적의 장소다.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習仲勛)이 바로 시안에서 66킬로미터 떨어진 푸핑(富平)현 출신 인 덕분에 시진핑은 자신의 고향을 ‘시안’으로 소개하며 고향 외교술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 2014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이슬람 카리모프(Islam Karimov)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들른 곳이 시안이다. 2013년 시진핑은 카리모프의 고향인 사마르칸트 테무진(칭기즈 칸) 가족역사박물관에 들른 적이 있다. 당시 카리모프가 박물관에 전시된 고대 실크로드 지도를 보며 “사마르칸트는 테무진 시기의 수도이자 고대 실크로드의 중추였고 내 고향”이라고 말하자 시진핑은 지도의 오른쪽 부분을 가리키면서 “여기가 시안인데 실크로드의 기점이자 내 고향”이라고 했다.
_이유진, <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메디치미디어, 2018.04)> 중에서
하지만 도시로서의 시안에 큰 매력을 못 느낀 것은 서울이라는 역사와 전통, 현대가 공존하고 있는 전성기의 메트로폴리스에 익숙한 다분히 도시민의 관점이다. 1,300만 명이 살고 있는 중국의 대표 도시 시안은 (특히, 경제적으로 윤택한) 거주민으로서는 (매우) 살기 좋고 편한 곳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깨끗하고 질서 정연하며 사람들도 친절한 도시에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가이드 님은 실제로 시안 사람들은 ‘문화 도시’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높다고 했다. 중국 100년의 역사를 보려면 상하이를 가고, 500년의 역사를 알고 싶으면 베이징을 가며, 1000년의 역사가 궁금하다면 시안(장안)을 가라는 말처럼, 답사 내내 실감했듯이 시안에 살다 보면 많은 중국인들이 한 번 즈음 가 보고 싶은 도시에 살고 있다는 자긍심이 절로 생겨날 것 같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시안에서 오래 거주한 가이드 님이 시안을 소개하는 말과 표정에서도 그 긍지가 묻어나고 있었다.
도시민으로서 시안에서 누릴 수 있는 어지간한 것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서울에서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당장은 시안이라는 도시를 다시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마치 새하얀 도화지 같은 신도시가 세월의 더께가 입혀지면 무슨 색채를 띠게 될지, 어떤 정체성을 갖게 될지 앞으로 변화할 미래가 궁금하다. 더 살고 싶고 살기 좋은 곳으로 발전할지, 도시화의 온갖 부작용으로 골머리를 앓으며 퇴보했을지, 5년 뒤, 10년 뒤에 다시 가서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다. 그때는 시안의 여러 서점(책방)과 북카페도 들르고 싶다.
참고 자료
이유진, <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메디치미디어, 201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