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늑대 떼와 강렬한 폭포수
충격적인 <실크로드 쇼>를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 강렬한 한 장면의 충격이 가시지 않아서 집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갑자기 난데없는 헛웃음을 터드리곤 할 정도로 평생 절대 잊을 수 없는 공연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직관적으로 ‘실크로드 쇼’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엄밀하게는 <(서안) 낙타 방울의 전설(西安驼铃传奇, Legend of the Camel Bell)>이라는 제목의 1시간가량 펼쳐지는 공연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당나라의 주인공이 낙타를 이끌고 고향을 떠나 험난한 실크로드를 따라 우여곡절 끝에 로마에 도착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재회하며, 당나라(중국)의 문화가 번영한다는 이야기다.
공연은 한마디로 ‘눈부시게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뻔해서 진부하고, 몰개성해 매력이 없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겉모습은 세상 누구보다 아름다운데 내면이 성숙하지 못해서(자아가 분화를 덜 해서) 주고받은 대화 몇 마디에 어떤 사람인지 다 파악돼 버리고, 이야기를 이어갈수록 지루해서 더 궁금하지 않은 사람을 마주친 기분이었다.
이러한 몰개성을 대규모 물량 공세와 몇몇의 충격적인 이벤트로 보완(?), 극복(?) 하고자 했는데, 예술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무딘 감각에 너무 감동????? 해서 감정이 복받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약 7~8세기를 살고 있는 당나라 주인공이 마침내 도착한 고대 로마에서 18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화사하고 풍성한 로코코 양식의 드레스와 남미의 삼바 축제에서 입을 법한 화려한 삼바 복장을 한 연기자(무용단)들이 등장한 건 이 공연에서는 사소한 옥의 티에 불과했다. 며칠 동안 중국을 둘러보고 경험하며 분위기를 감지하기로는 공연의 실크로드 일행이 인형이나 모형이 아니라 실제 낙타를 끌고 등장할 것이라고도 예상했다.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주인공이 용감하게 실크로드의 늑대 지대를 통과할 때 벌어졌다. 주인공 일행은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 늑대 지대를 반드시 통과해야만 했는데, 무대에서 갑자기 수십 마리의 ‘진짜’ 늑대 떼가 객석을 향해 무섭게 돌진하더니 몇 초 동안 객석을 휘젓고는 순식간에 다시 무대 뒤로 사라졌다…… 진짜 늑대인지 아니면 늑대를 닮은 대형견인지는 모르겠으나, 얼마나 고된 훈련을 받았는지 수십 마리 늑대 떼가 마치 군기가 바짝 잡힌 군인처럼 일사불란하게 정해진 루트를 따라 신속하게 튀어나와 객석 사이를 재빠르게 달리더니 다시 무대 위로 복귀했다.
아무리 훈련을 받았다지만 맹견이 갑자기 객석 사이로 돌진하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혹시라도 사람에게 달려들까 봐 섬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 주인공이 느끼는 두려움을 관객이 고스란히 체험하기를 바라는 극적 장치이겠지만,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라면 아무리 예술이라지만 공식적으로 제제하기도 전에 안전상의 이유로 관객이 먼저 문제를 제기하고 언론에 이슈화 돼 공연 주최자는 부주의함을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맹견들이 공연에서 본능을 억제하고 몇십 초 동안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연기하고자 얼마나 고통스러운 훈련을 견뎌야 했을지 머릿속에 그려졌다. 돌고래쇼도 사라지는 추세이고, 반려견이 유모차를 타고 다니며, 반려동물 유치원과 장례식, 미용 산업 등이 확산하고, 길고양이의 먹이를 챙겨주고, 한 세대 뒤에는 사문화될 식용 개고기도 법으로 금지하는 마당에, 동물 인권이 중요시되고 있는 우리나라라면 절대 불가능한 공연이지 않을까 싶었다. 늑대 탈을 쓴 배우의 몸짓 연기와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음악과 조명 등으로 얼마든지 극적인 효과를 연출할 수 있는데도, 생동감을 전하고자 고도로 훈련시킨 실제 늑대 수십 마리를 공연에 투입해 안전줄도 없이 객석에 난입하도록 했다? 아마도 동물보호단체에서 벌써 들고일어나서 한바탕 난리가 나지 않았을까. 인터넷에서도 전 세계인(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공연에서 동물학대를 홍보하는 꼴 아니냐며 수치스럽다는 질타가 이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두 번째는 늑대 떼의 충격보다는 덜했지만 역시나 강렬한 경험이었다. 주인공 일행은 교역을 마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운 좋게 불경을 찾아 서쪽으로 여행을 하던 현장법사 일행을 만난다. 그들은 바미안 석굴에 들러서 부처님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기도를 하는데, 이번에는 갑자기 부처님 불상 양옆으로 거대한 실제 폭포를 방불케 하는 엄청난 양의 물이 한번에 쏟아져 내렸다. 장마철이 지났을 때 거센 물줄기를 토해내며 장대한 위용을 뽐내는 실제 폭포를 옮겨왔다는 착각이 들만큼 어마어마한 규모의 당황스러운 물쇼였다.
나는 무대와 거리가 제법 떨어진 중간 정도의 좌석에서 관람을 했는데, 몇 초 동안 얼마나 많은 양의 물이 쏟아져 내렸는지 나까지도 얼굴에 물이 튀어서 공연을 보다 말고 가방에서 주섬주섬 손수건을 찾아서 얼굴을 닦아야 했다. 무대와 가까운 앞쪽 좌석에서는 난데없는 비(?)를 피해 우산을 꺼내 펼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주인공 일행의 기도를 듣고 하늘에서 상서로운 비를 내려 성수로 불순물(먼지)을 씻어내고, 행운을 가져다주고자 한 부처님의 감명 깊은 뜻을 관객들도 실감하기를 바라는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물량을 앞세운 과도한 연출로 공연의 흐름이 끊기고 객석에서 소동이 일어난 것만은 확실했다. 예술은 자유라지만 이야기의 맥락과도 다소 동떨어진 채 순전히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자 이렇게까지 물을 낭비해도 되는 건지 당혹스럽고 불편했다.
우리나라도 소프트웨어(의식)가 하드웨어(물질)에 뒤쳐지는 경우를 자주 느끼는데, 중국은 우리나라보다도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간극이 훨씬 큰 것 같다. 물질은 2024년보다도 더 앞서가고 있는데, 의식은 우리나라의 1960년대~1980년대에 머무르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잦아서 곤혹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웅장하고 화려한 하드웨어에 사람들의 의식과 가치관인 소프트웨어가 쫓아오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은 실크로드쇼는 시안이라는 신도시가 풍기는 전체적인 인상과도 완벽하게 겹치고 있었다.
도시로서의 시안의 전체적인 인상은 ‘인위적인’, ‘개성 부족’이다. 어느 도시 못지않게 갖출 건 다 갖추고(웬만한 세계적인 식품, 의료 등의 브랜드도 거의 다 입점돼 있는 듯 보인다), 잘 정비돼 있으며, 높고 거대하고 깨끗한 새로 지은 건물이 즐비하지만 정이 가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정부의 주도로 치밀한 전략과 계산 아래 빈틈없이 조성된 ‘초거대 무결점 계획 신도시’의 무미건조한 위용을 시안 어디서나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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