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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Jul 17. 2024

중국 역사를 바꾼 시안사변 그리고 화청지

화청지와 시안사변, 명성궁(도교사원)

■ 화청지와 장한가


화청지(华清池)는 빛나고 맑은 연못이라는 한자처럼 단정하고 아름다운 장소이다. 당 현종과 양귀비가 머물던 별궁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들이 온천을 즐겼다는 해당탕(海棠湯)과 연화탕(蓮花湯) 등이 남아 있다.


양귀비가 사용했다는 해당탕(海棠湯)은 해당화를 닮았다고, 황제가 사용했다는 연화탕(蓮花湯)은 연꽃을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탕에는 바닥을 덮을 정도 크기의 백옥이 있어서 더운 온천수가 차가운 옥을 만나 서서히 식으면 목욕하기 알맞은 온도가 되었다고 한다. 성진탕(星辰湯)은 별을 의미하는 한자에서 짐작할 수 있듯 노천에서 하늘과 별, 달이 보여서 붙여진 이름으로, 당 태종 이세민이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황제가 머물던 곳인 만큼 이외에도 화려하고 규모가 큰 전각과 누각, 회랑, 호수 등이 수려한 여산(리산, 廬山)을 배경으로 짜임새 있게 자리잡고 있으며, 곳곳의 녹음이 우거진 버드나무와 분홍빛 벚꽃, 노란 봄꽃들이 권력의 상징과도 같은 눈부신 화청궁에 운치를 더해주었다. 주(周)나라 때부터 이어진 3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온천 휴양지답게 마음은 맑아지고 고민은 사라지는 무릉도원 같은 곳이다.

버드나무와 벚꽃이 우거진 화청지 풍경


저녁에는 여산과 화청궁을 배경으로 야외 수변에서 장한가 공연(유료)이 펼쳐지는데, (일정상) 직접 관람은 못했지만 여산 전체를 무대로 펼쳐지는 특별한 공연인 만큼 한번 즈음 볼 만하지 않을까 싶다. 장한가(長恨歌)는 당나라 시인 백거이가 지은 서사시로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과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장예모(장이머우) 감독이 연출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현지 가이드님 말씀으로는 그의 제자(?) 또는 그에게 영향을 받은 중국의 또 다른 뛰어난 연출가가 만든 작품이라고 했다(사실이 무엇이든 장예모 풍의 화려한 색감과 섬세한 연출, 남다른 스케일이 특징인 듯).

구룡호에 설치된 무대에서 '장한가' 공연이 펼쳐진다


아름다운 풍경과 건축물을 바라보며 편안하게 산책하기 좋은 관광지이지만, 시안의 다른 특색 있는 문화재와 유적지에 비하면 전 세계 여느 궁이나 궁궐이 그렇듯이 특별한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은 아니다. 화청지를 상징하듯 그리스/로마 풍으로 만든 뜬금없는 양귀비 조각상을 두고 친구는 짝퉁 비너스라고 했는데, 절묘한 비유이다. 그럼에도, 지하철 9호선 화청지 역에서 가까워 대중교통으로 방문하기 좋은 관광지이다.

양귀비 조각상




■ 시안사변과 장개석(장제스)


단순한 관광이 아닌 여행지로써 화청지의 진면목은 중국의 역사, 어쩌면 전 세계와 한국의 역사까지 뒤바꾼 역사적인 사건인 ‘시안사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장개석(장제스, 蔣介石)이 머물렀다는 화청지의 오간청(五間廳),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총알 자국들, 장개석이 도망쳤다 붙잡혔다는 산과 바위틈 등 오늘날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역사적 사건을 마주하자 기분이 묘했다. ‘만일 시안사변 때 장개석이 붙잡히지 않았다면 세계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중국에도 공산당이 아닌 민주정권이 들어섰을까?’, ‘광복 뒤에 한반도가 분단되지 않을 수도 있었을까?’, ‘동북아 정세가 지금만큼 불안정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역사적 가정의 무의미함을 알면서도 전쟁과 갈등, 반목 없는 화해와 평화를 기원하는 가설을 상상해 보게 된다.

오간청 회의실


12.12사변이라고도 부르는 시안사변(西安事變)은 1936년 12월 12일 동북군 총사령관 장학량(장쉐량, 張學良)이 국민당 정권의 총통 장개석을 시안 화청지에서 감금하고, 국공 합작과 항일 투쟁을 요구한 사건이다.


사변이 일어나기 전 국민당의 장개석은 ‘攘外必先安内"(외적을 물리치기에 앞서 내부를 평정해야 한다)’ 즉, 내부의 공산당부터 먼저 평정한 뒤에 외적 일본을 물리친다는 방침을 고수하며 공산당 토벌에 전력투구하고 있었다. 이 기조 아래 국민당의 동북군 총사령관 장학량은 산시성 시안에 주둔하고 있었으나, 장학량은 이미 공산당 류정(류딩, 劉鼎)의 항일에 힘을 모아야 한다는 주장에 설득돼 홍군과 동북군의 정전에 합의한 상황이었다. 장개석은 이런 상황을 전혀 모른 채 공산당 토벌을 독려하러 시안을 방문했고, 1936년 12월 12일 장학량 휘하의 동북군은 장개석을 감금하고 공산당과의 내전 중지와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싸울 것을 요구한다. 이를 계기로 2차 국공 합작이 이뤄지고 항일 민족 통일 전선이 결성된다.


1936년 12월 12일 새벽, 화청지 오간청에서 머물던 장개석은 난데없는 총소리에 잠옷 바람으로 얼른 뒤쪽 산으로 도망친다. 장학량은 여산 일대를 샅샅이 수색한 끝에 오전 9시경 오간청에서 약 500m 떨어진 바위틈에서 그를 찾아내 체포한다. 체포 당시, 장개석은 손은 가시에 찔려 피가 흐르고, 맨발에 다리까지 다쳐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고 전해진다. 장개석이 피신했다는 좁고 험한 바위틈은 보통 사람이 올라가서 숨어있을 만한 공간이 결코 아니다. 아마도 목숨이 경각에 달려 찰나의 불안과 공포마저 뛰어넘은 극도로 절박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초인적인 힘이 발휘된 것이 아닐까 싶다.

시안사변 때 장개석이 숨었다는 바위틈


장개석은 처음에는 국공 합작을 단호히 거절했으나, 남경(난징)에 있던 부인 송미령(쑹메이링, 宋美齡)이 도착해 장개석을 설득하여 공산당대표와 2차 국공 합작(국민당정부와 공산당이 협력)이 성사되었고, 12월 24일 석방된다.

장개석과 송미령


한편, 시안사변의 주역인 장학량은 이후 순순히 붙잡혀 장개석을 감금한 혐의로 국민당 정부에게 10년 간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출감 후 1949년에 타이완으로 끌려가 1991년까지 가택에 연금된다. 공산당은 그를 '민족의 영웅, 최고의 공신', 국민당은 '역사의 죄인'으로 평가한다. 장개석이 숨어 있다가 잡힌 바위 근처에는 시안사변을 기념하는 '병간정(兵諫亭)'이라는 정자가 세워져 있다. 간(諫)이란 신하가 군주의 잘못을 바로잡도록 간언 한다는 의미인데, 앞에 병(兵)이 붙어서 윗사람에게 무력을 행사해 요구사항을 따르도록 한다는 것으로, 혁명이나 쿠데타를 의미하는 정변(政變)이라는 말은 붙지 않는다.

병간정과 장개석이 피신했다는 바위


당시 중국 대륙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시안사변은 국민당과 공산당의 운명을 가르는, 중국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분수령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국민당의 초공작전(공산당 토벌 작전)으로 공산당은 거의 궤멸되고 겨우겨우 극소수의 세력을 부지했는데, 열세에 있던 공산당은 시안사변을 기회로 기사회생해 전열을 정비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벌어진 국공 내전에서 공산당은 국민당을 몰아내고 결과적으로 우위를 점해 공산주의를 이념으로 하는 오늘날의 중화인민공화국이 탄생한다. 기존의 중화민국 정부는 알다시피 타이완(대만)으로 이전한다. 시안사변은 이처럼 세계사의 물줄기가 바뀐 중대한 사건이다.




■ 도교와 명성궁


도교사원 내부


마지막으로 화청지에서 여산 케이블카를 타고 유명한 도교사원인 명성궁도 갈 수 있다. 유교와 불교가 성행한 우리나라에서 도교는 익숙하지 않은데, 중국은 도교가 불교와 양대산맥을 이룬다고 할 만큼 도교사원의 위상이 높다고 한다. 도교라고 하면 신선, 무위자연, 무릉도원, 노자, 도덕경, 도사, 민간신앙, 무협지?? 등이 떠오르는데, 중국에서 도교와 도교사원은 예로부터 문화적/정서적/민족적 통합을 이루는 중요한 기반이자 역할을 한 듯하다. 임 박사님께서 도교가 중국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의미 등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는데, 도교 자체가 너무 낯설다 보니 이 이상으로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내 이해의 한계를 국어사전의 ‘도교’의 정의를 덧붙이는 것으로 보완하며 화청지 기행문은 마치려고 한다.



도교 道敎

[종교 일반] 무위자연설을 근간으로 하는 중국의 다신적 종교. 황제(黃帝)와 노자를 신격화한 태상 노군을 숭배하며, 노장 철학을 받아들이고 여기에 음양오행설과 신선 사상을 더하여 불로장생을 추구하였는데, 후한 말기 때 장도릉(張道陵)에 의해 그 종교적인 틀이 갖추어져 중국의 민간 습속에 큰 영향을 미쳤다.




참고자료

중국학 위키백과 > 서안사변

중국연구원 연구교수 이유진, [중국 역사와 문화의 이모저모 22] 시안사변의 전말, 연세대학교 중국연구원, 2023.01.01

바실리 블라디미로비치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중국의 미래를 결정한 시안사변, 서울신문, 2019.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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