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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May 13. 2024

죽을 때까지 대를 이어 황제 폐하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당나라 황제와 세습관료의 정치 관계가 완벽하게 구현된 <소릉>

건릉 등산(?)을 마치고 우리 답사 일행은 4박 5일 동안 전세를 낸 답사 버스에 다시 올라서 건릉에서 멀지 않은 소릉으로 향했다.


당 태종의 무덤 소릉부터 산 전체를 능으로 활용했다.


고종의 아버지이자 당나라를 대표하는 황제인 당 태종의 무덤 ‘소릉(昭陵)’도 마찬가지로 산 전체가 무덤인데, 산을 능으로 삼는 것은 당 태종 때부터 택한 방식이다. 소릉과 그 주변에는 당 태종, 황후와 비빈들, 측근 신하들이 무덤이 전부 조성돼 있다.


소릉 입구의 당 태종 동상


‘우리는 하나’, ‘한 배를 탄 운명 공동체’, ‘살아서도 죽어서도 함께하자……;;;’라는 절대 권력자의 무시무시한 압박과 통제를 의미하는 것 같지만, 신하에게 황제가 필요하듯 황제 또한 신하들이 필요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권력의 균형을 유지했다고 할 수 있다.


당나라의 정치 체제는 황제와 공신, 세습관료가 핵심부를 이룬다. 황제는 절대 권력으로 신하들을 통제하고 견제하는 것 같지만, 황제의 절대권은 실은 소수 권력층의 단결과 유지를 위한 것이다. 황제는 이 소수 권력층에게 대를 이은 권력과 특혜를 보장받는다. 황제와 총신으로 대표되는 소수 권력층은 결코 서로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였다.


소릉은 이처럼 죽을 때까지 대를 이어 황제에게 충성한다는 당나라의 정치체제, 사상과 구조를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다.




능 정상에는 당 태종이 전장에서 타고 다닌 애마 여섯 마리를 부조로 새긴 ‘소릉육준(昭陵六骏)’이 있다. 육준의 이름은 각기 돌궐 또는 페르시아의 말에서 따온 것으로 백제오(白蹄烏), 특륵표(特勒驃), 삽로자(颯露紫), 청추(青騅), 십벌적(什伐赤), 권모과(拳毛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박물관에 소장된 삽로자와 권모과를 제외한 나머지 원본 4점은 시안 비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당 태종의 유명한 신하들의 비문도 많이 남아 있는데, 탁본가들이 자신의 탁본의 가치를 높이고자 탁본 후 비문을 훼손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를 방지하고자 관에서 비석을 수집해서 보존한 곳이 ‘비림’이다. 시안 비림박물관에는 중국 역대 명필의 비문이 숲을 이룬 것만큼 많이 남아 있어 서예가들에게는 성지 같은 곳이다. 비림은 한나라 때부터 최근까지 비석 4천 개를 보관, 전시하고 있는 중국에서 비석이 가장 많은 장소이다.


소릉에서 시안 시내까지는 버스로 약 1시간~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데, 봄볕에 우연히 마주한 새하얀 눈꽃송이 같은 화사한 살구꽃 덕분에 지루함을 달랠 수 있었다. ‘옵션이라’고 강조하는 현지 가이드 님의 격의 없는 농담 덕분에 작게 웃음이 터져 노곤한 졸음이 달아나고 말았다.


소릉에서 시안 가는 버스에서 마주한 새하얀 살구꽃의 향연
소릉에서 시안까지 버스로 편도 1시간~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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