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완벽한 조경과 설계를 자랑하는 중국 황제릉
중국에서는 규모 때문에 놀라고 또 놀라는 경우가 많은데, 그 유명한 측천무후와 당 고종이 합장된 ‘건릉(乾陵)’도 마찬가지였다. 무덤에 잠들어 있는 황제를 보호하고 안녕을 기원하는 듯한 양 옆에 늘어선 석상 사이로 잘 포장된 널따란 경사로를 따라 시선을 옮기면 그 뒤로는 웅장한 양산(梁山)이 버티고 있다. 흙을 둥글게 쌓아 올린 봉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산 하나 전체를 통으로 무덤으로 삼고 있다…… 중국의 황제릉 가운데 가장 완벽한 조경과 설계를 자랑한다는 건릉의 첫인상은 경이로움이었다. 시안에서 서북쪽으로 80km 떨어진 고즈넉한 지역에 자리잡은 좌우대칭의 비례와 균형의 원칙이 잘 적용된 광대한 규모의 조화로운 황제릉을 마주하면 ‘우와’라는 감탄사만 연이어 절로 나오고, 차마 말을 잇지 못하게 된다.
건릉은 당나라 황제의 18개 능 가운데 유일하게 도굴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옛날부터 셀 수 없을 만큼의 도굴 시도가 있었지만 전부 실패했다. 건릉의 묘도는 고속도로 공사에 필요한 석재를 구하고자 농민 몇 명이 양산에서 폭파 작업을 하던 중 우연히 발견됐다. 돌에 인공을 가한 흔적이 있고 철까지 붙어 있었던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건릉의 묘도 입구를 돌로 막고 철을 녹여 부어서 돌과 철이 한 덩어리가 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제는 일부 사람이 묘도의 위치를 알고 있지만, 현재의 기술로는 섣부른 발굴이 오히려 능을 훼손할 수 있으므로 그냥 두는 것이 가장 좋은 보존이라는 이유로 당장은 발굴 계획이 없다. 최근 들어 건릉 발굴의 가능성과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지만, 정작 언제 발굴에 착수할지는 알 수 없다.
건릉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잘 닦여 있지만, 마지막 몇십 미터 급경사 구간은 돌밭을 헤집고 온몸으로 올라가야 한다. 표면이 맨질맨질한 돌덩이가 제법 미끄럽고 경사가 험하므로 가급적 등산화를 신기를 권하며, 조심해야 한다. 바로 이 단단히 박힌 바위들 사이 어딘가에 지금은 봉인된 지하궁전으로 향하는 입구가 있겠지? 이 아래에는 또 어떤 광활하고 신비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을까? 산 아래로 펼쳐진 가슴이 확 트이는 드넓은 평야와 구릉 지대를 바라보며 제멋대로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하기에 좋은 공간이었다.
건릉의 입구에는 중국과 조공·책봉 관계에 있는 주변나라의 왕과 신하들을 조각한 61개의 석인상이 있다. 석인상 본인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당나라와 황제의 위대함을 과시하고자 세운 것인데, 현재는 두 명을 제외하고 모두 머리가 잘린 채 몸통만 남아있다. 여기에는 석인상이 민가에 재난을 불러온다며 백성(농민)들이 부쉈다는 이야기부터 이민족이 자신들을 모욕한다며 잘랐다는 설까지 여러 추측이 난무한다. 대지진 때 목이 부러졌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자연재해로 이유를 돌리기에는 너무 머리만 일괄적으로 잘려 있어서 분명히 어떤 인위적인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61개의 석인상 가운데 다른 석인상과 달리 옷의 소매가 매우 넓고, 세 겹의 옷이 층층으로 드리워져 있으며, 손에는 활까지 쥔 독특한 차림새를 한 석인상은 한반도의 의복 양식으로 미루어 우리나라의 삼국시대 인물 가운데 한 명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위의 사진의 좁은 소매에 한겹으로 된 옷을 입고 있는 석인상들과 비교하면 확연한 의상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참고 자료
[이유진의 중국 도읍지 기행-시안] 건릉의 61개 석인상, 본인들은 자랑스러워할까, 주간경향, 2015.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