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을 법과 제도로 묶고 싶지 않아!’ (1)
드라마 여주인공의 사회적 지위는 20년 간 어떻게 변했을까?
가을동화(2000년)부터 검블유(2019년)까지 지금까지 봤거나 알고 있는 로맨스 드라마를 연도별로 정리를 하다 보니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여자 주인공의 직업에 따른 사회적 위치의 변화였다. 지금부터 내가 발견한 시사점을 소개하겠다.
아래는 인기 로맨스 드라마를 5년 단위로 분류한 것이다. 굵은 글씨는 앞선 글에서 드라마 속 주인공의 직업, 결말, 시청률 등을 정리한 드라마 7편이다. (관련 포스트: ‘결혼은 행복하다’는 허상: https://brunch.co.kr/@smilepearlll/38) 아래 내용 중 뒤의 괄호 안은 당시에 화제를 모았던 로맨스 외 사극, 의학, 오피스, 스릴러 등 장르의 드라마이다.
▶ ~2005년: 가을동화(2000), 겨울연가(2002), 천국의 계단(2003), 올인(2003), 파리의 연인(2004), 풀하우스(2004), 불새(2004), 내 이름은 김삼순(2005), (대장금(2003))
▶ 2006~2010년: 연애시대(2006), 환상의 커플(2006), 커피프린스 1호점(2007), 온에어(2008), 그들이 사는 세상(2008), 내조의 여왕(2009), 시크릿 가든(2010), (하얀거탑(2007), 선덕여왕(2009))
▶ 2011~2015년: 신사의 품격(2012), 별에서 온 그대(2013), 상속자들(2013), 나인(2013), 연애의 발견(2014), 밀회(2014), 킬미힐미(2015), (골든타임(2012), 미생(2014))
▶ 2016년~현재: 도깨비(2016), 태양의 후예(2016), 또! 오해영(2016), 부암동 복수자들(2017), 미스터 션사인(2018),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2019), 부부의 세계(2020), (시그널(2016), 굿 와이프(2016), 비밀의 숲)(2017), 스카이캐슬(2018))
■ 남녀 주인공의 20년 간 직업적 변화
2000년에 방영된 <가을동화>에서 은서(송혜교 扮)는 가난 때문에 학업도 포기한 채 호텔에서 룸메이드로 일을 했는데, 2019년에 방영된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에서 배타미(임수정 扮)는 직원 3,000명 이상인 국내 포털 대기업의 임원이다. 20년 만에 로맨스 드라마 속 여주인공의 사회적 위치는 급상승을 했다.
남자 주인공은 20년 전부터 계속 재벌가에서 태어나 글로벌 대기업의 대표 또는 임원을 유지해오고 있다. 재벌 아들이 아니더라도 대체로 부모님의 사회적 지위가 높은 경우가 많아 경제적으로 유복했다. 현재는 실력에 노력까지 겸비를 해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나이에 자신이 설립한 건축사무소 또는 음악 제작사 대표, 성형외과 원장을 하고 있다. 전문직인 의사, 변호사, 드라마 PD 또는 실력 있는 예술가(사진작가, 작곡가 등)는 기본이다. 대체로 고연봉의 직종이다.
■ 2000년~2005년 남녀 주인공의 특징
2005년까지 여자 주인공은 가난하지만 마음씨가 고와서 능력 있는 남자 주인공의 연민을 자극했고, 서로 사랑을 하더라도 신분의 차이가 결혼의 큰 장애물이었다. 주변에서 반대를 하는 상황에 부딪히고, 여자 주인공이 수모까지 받는 상황에 이르면 능력이 되는 남자 주인공의 사랑하는 여자를 지켜야 한다 라는 마음은 더 커져갔다. 그래서 그들은 부메랑을 던지며 ‘사랑은 다시 돌아오는 거야.’(천국의 계단), ‘왜 말을 못 해. 저 남자가 내 사람이다. 저 남자가 내 애인이다. 왜 말을 못 하냐고!’(파리의 연인)를 외쳐댔다.
이들 드라마가 방영이 되던 15~20년 전 나는 중, 고등학생 시기를 거치고 있었다. 우리집을 포함해서 다수의 가정에서 성별에 따른 역할 구분이 명확하던 시기였다. 남자 어른은 돈을 버는 바깥일, 여자 어른은 육아와 가사를 하는 집안일을 전담을 했다. 여성은 경제력이 없었고, 경제활동을 희망을 하더라도 기회가 거의 없거나 매우 좁은 상황이었다. 여성은 집안일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없었고, 남성은 자의든, 타의든 야근, 회식 때문에 늦은 귀가가 잦았으며, 육아는 거의 온전히 여성의 몫이었다. 배우자 간 대화하는 시간도 적었을 것이다.
이 시기에 방영된 드라마 속 재벌가 남주인공은 돈이 많고 능력이 있고 심지어 순수하고 순박한 매력을 지닌 한 명의 여성(바로 ‘나’)만을 생각하고 끔찍이 잘해준다. 여성이 자신의 노력이나 자의로는 계층 상승은 거의 불가능한 시대적 분위기에서 이들은 여성들의 이룰 수 없는 꿈을 충족시키고 대리만족을 안겨주었던 것은 아닐까.
■ 2006년 이후 남녀 주인공의 특징
2006년부터는 비련의 여주인공, 억울한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바보 아니면 천사라고 생각이 될 정도로 착하고 굳세고 씩씩한 여성의 모습은 점차 자취를 감춘다. 대신, 항상 아름다워야 하며, 세상의 오해에도 변명하지 말고 자신의 주관을 숨겨야 하는 여배우(온에어, 별에서 온 그대)나 집안의 경제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재벌 아들과 결혼을 한 재벌가 사모님(부암동 복수자들,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으로 등장을 한다. 남자 주인공의 흔한 직업인 재벌가 아들과 비교했을 때, 여자 주인공은 권력이 없으며, 재벌가 사모님의 고민은 여전히 가부장제의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 드라마 속에서 그들은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의 중심이 되기 위해 이혼으로 가부장제의 영향을 벗어났다.
2011년 전후로는 남녀 주인공이 사회적으로 비슷한 인정을 받는 직업을 지닌 것으로 설정이 되기도 했다. 같은 회사 드라마 PD(그들이 사는 세상), 대학 교수와 유명 배우(별에서 온 그대), 군인 장교와 의사(태양의 후예), 음향감독과 회사원(또! 오해영) 등이다. 그러나 다수의 로맨스 드라마에서 여전히 남자 주인공이 사회적 지위와 급여가 더 높은 직업군에 속해 있었다. 건축사무소 대표와 교사(신사의 품격), 성형외과 원장과 가구 공방 대표(연애의 발견), 건설사 대표와 가구 공방 대표(연애의 발견) 등이다. 밑도 끝도 없이 재벌 아들과 일반 서민(상속자들), 부자 도깨비와 여고생(도깨비)처럼 원래부터 남자 주인공만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부(富)를 축적 또는 획득한 설정은 최근까지도 여전했다.
■ 여자 주인공의 지위가 더 높았던 경우
여성이 사회적으로 지위가 더 높았던 경우는 <밀회>, <미스터 션샤인> 정도인데, 밀회에서 여주인공인 오혜원(김희애 扮)은 40세, 남주인공 이선재(유아인 扮)는 20세로 혜원은 선재보다 스무 살이 많았고, 그만큼 사회 경험도 많았다. 기혼자 혜원이 피아노 천재 선재와 음악적 교감을 하고 위험한 사랑을 하는 내용이라 이들의 관계는 여타 다른 로맨스 드라마처럼 일반적인 연인 관계는 아니었다. 구한말을 배경으로 한 <미스터 션샤인>에서 고애신(김태리 扮)은 고귀한 사대부 여성이고, 최유진(이병헌 扮)은 천한 노비의 자식이다. 그러나 유진 초이는 천신만고 끝에 20세기 초 떠오르는 패권국이었던 미국 해병대 대위로 조선에 돌아온다. 결코, 그가 고애신보다 낮은 신분이라고 할 수 없다.
여성이 독보적으로 사회적 성취를 이룬 경우는 로맨스 드라마 속 인물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대장금>이나 <선덕여왕>과 같은 사극에서 다뤄졌다. 그러나 이들은 현대에 살고 있지 않으며 과거 속 특출 났던 인물일 뿐이다.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
[다음 글] ‘내 사랑을 법과 제도로 묶고 싶지 않아!’ (2)
: 당당하게 비혼을 선언하는 드라마 속 인물들
https://brunch.co.kr/@smilepearlll/43
- 로맨스 드라마에서 발견한 공통점을 토대로 현대 사회에서 성별 간에 시사하는 점, 최근 드라마의 변화된 경향을 분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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