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와 폴리아모리에 대해서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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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정신과 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향한 대중의 낙인과 편견을 가장 효과적으로 줄이는 방법은 낙인이나 차별의 대상이 되는 집단 구성원을 직접 만나는 일이다. 내가 편견을 가지고 있는 대상이 내 눈앞에서 스스로의 의미 있는 삶을 소개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간직하고 있던 편견에서 벗어나게 된다.
_ 나종호,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도서출판 아몬드, 20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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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A: 어쩌면 불편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고백할 게 있어.
친구 B: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리에게 너라는 존재는 변하지 않는 걸. 무슨 일인데?
친구 A: 폴리아모리라고 들어봤어? 나는 지금 폴리아모리 관계야. 배우자도 수용했어. 나에게 자기 말고 애인도 있다는 걸.
나: 그럼 배우자도 있고, 애인도 있는 거야? 두 사람도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는 거고?
친구만큼이나 친구의 배우자도 대단하고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기혼자에게 애인이 생겨도 외도나 불륜이 아닐 수 있었다. 상대 배우자의 승인과 이해가 있다면. 사랑은 나눠서 각자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만큼 무한히 커질 수도 있었다.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살고 싶다’는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의 인아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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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런데 어떻게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어? 누군가에게 마음을 쏟고 관계를 유지하는 건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들잖아. 체력이 돼?
친구 A: 그게 폴리아모리의 핵심이야. 다자간 연애라고 하니까 이 사람 저 사람 아무나 만난다고 오해할 수 있는데, 폴리아모리는 서로 간에 솔직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할 수 있어. 더 많은 소통과 감정 접촉이 필요하거든. 애인의 존재 덕분에 배우자와 사이가 더 좋아지고 관계도 돈독해지는 기분도 들어. 아주 가까운 사이에서는 기대감이 큰 만큼 서운함도 느끼게 되잖아. 하지만 한계는 분명히 존재하고. 배우자와 애인이라는 각기 다른 관계에서 한계를 보완받게 되는 것 같아. 결핍의 충족이라고도 할 수 있고. 배우자 입장에서도 나와의 관계에 대한 부담감이 좀 덜어져서인지 더 편안해진 것 같더라고.
체력도 약하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에너지가 소모가 크며 질투심도 많은 나는 폴리아모리는 못할 것 같았다. 나에게는 기존의 일대일 독점적 연애관계가 최선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한 친구와의 우정이 다른 친구와의 우정과는 다른 형태이듯이 동시에 각기 다른 사랑의 형태도 존재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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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인간은 세 종류였고, 한 사람 안에는 두 사람이 붙어 있었다. 남자와 남자가 결합된 사람, 여자와 여자가 결합된 사람, 여자와 남자가 결합된 사람이다. 두 개의 얼굴은 서로 반대 방향을 향했고, 네 개의 눈과 네 개의 귀로 동시에 사방을 보고 들을 수 있었다. 네 개의 팔과 네 개의 다리를 쭉 뻗어서 굴렁쇠처럼 회전하며 자동차처럼 빨리 달릴 수도 있었고, 지금보다 배 이상 똑똑했으며, 힘도 세서 신들에게 도전할 정도였다.
제우스는 대책 회의를 열었고,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인간을 반으로 쪼개기로 한다. 지금 우리 모습처럼 머리는 하나, 팔은 둘이고, 두 발로 걸어 다니게 만드는 것이다. 그럼, 힘과 지혜는 반으로 줄어드는 대신 인간의 수는 배로 늘어나 신들에게 도전하지 못하되 제사는 더 많이 지낼 것이란 이유였다. 둘로 쪼개진 인간은 이전보다 훨씬 약해졌고 느려졌으며, 덜 영리하고 더 멍청해졌다. 무엇보다 이때부터 인간은 잘려 나간 자신의 반쪽을 그리워하고 찾아 나섰다. 혼자 있으면 외롭고 슬퍼하다 잃어버린 반쪽을 만나면 서로 얼싸안고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한 번 잘린 이상 완전히 결합할 순 없었지만 같이 지낼 때만큼은 두 몸이 마치 한 몸이 된 것처럼 기쁘고 행복해했다.
[참고] 김헌, <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을유문화사, 2022.03)>, 546~5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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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피 투게더(왕가위, 1997)> 속 보영과 아휘에서 아빠와 엄마를 보았다. 충동적이고 제멋대로이며 돌봄 받는 것이 필요할 때 아휘를 찾는 보영, 잔소리하고 밀어내고 떨어지라고 윽박지르면서도 보영을 받아들이고 마는 아휘. 추운 겨울, 자기가 강행한 산책 때문에 감기로 몇 날 며칠 앓아누워 고생하는 아휘에게 ‘일어날 수 있냐며, 배가 고프다고’ 그러니까 양심도 없이 밥 해달라는 보영. ‘니가 그러고도 인간이냐’라며 핏대 높여 삿대질하면서도 결국 온몸에 담요를 두르고 꾸역꾸역 볶음밥을 요리하고 마는 아휘. 대책 없이 일만 벌이는 이기적인 아버지와 속이 썩어가면서도 현실적인 해결사로 나설 수밖에 없는 어머니, 너무나도 익숙한 구도가 아닌가. 나는 <해피 투게더>에서 집착과 돌봄, 육체적 쾌락을 사랑이라고 착각해 회피하고 집착하는, 지극히 흔한 사랑에 미숙한 커플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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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이 친구 A는 결혼을 포함한 다른 낭만적 관계는 모두 정리하고, 현재는 동성 연인 한 사람과 (법적인 구속력은 없지만)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오래 알고 지냈지만 친구 A가 지금처럼 행복하고 충만하고 안정적으로, 비로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 같은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함’이라는 헌신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이 커플에게서 처음으로 배우고 있다. 나를 사랑하는 것이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고,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 곧 나를 사랑하는 것이 되는 온전하고 평등하며 진실한 관계의 존재를 현실에서 마주하고 있다. ‘이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다고?’ 싶을 만큼 매일 서로를 위하고 헌신하는 마음을 실천하는 이 부부에게 부럽고 샘이 날 지경이었다. 그리스로마신화에서 말하는 나의 쪼개진 반쪽도 세상 어딘가에 진짜로 존재한다고 믿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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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구의 사랑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상대에게 솔직하고, 인생의 변화가 두렵더라도 기꺼이 용기 내 선택에 따른 책임을 감내하고, 누구보다 사랑에 적극적이고 삶에 충실한 결과가 지금의 충만한 사랑이다. 깊고 깊은 내외적 갈등과 불안, 고민을 거친 끝에 이뤄낸 눈부신 성취였다. 사랑을 이해하고 좀 더 나은 사랑을 하고 싶어서 사랑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 나로서는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의 괴리에서 겸허해지고, 사랑을 제대로 알기까지는 멀었단 생각이 들 뿐이다.
폴리아모리 Polyamory
Poly는 그리스어로 '많은', amor는 라틴어로 '사랑'을 의미하며, 폴리아모리는 모든 파트너의 동의를 바탕으로 한 번에 둘 이상의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욕구 또는 수행을 뜻한다. 폴리아모리는 다양한 형태의 비·일부일처제, 비독적, 비배타적인 성적·낭만적 관계를 가리키는 포괄적인 용어로 쓰인다. 세간의 오해와 달리 폴리아모리는 기본적으로 사랑, 친밀감, 충실함, 정직, 신뢰, 평등, 소통 등의 가치를 주요하게 여기고 적극적으로 다룬다. 순전히 성적인 관계가 아니라 더 포괄적인 사랑의 방식이라는 점에서 다른 형태의 비독점, 비배타적 관계와 구별된다.
*친구 A가 현재 일대일 낭만적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해서 폴리아모리스트가 아니지는 않다. 폴리아모리는 독점적 연애 관계를 고집하지 않을 뿐, 일대일 연애 관계를 맺기도 한다.
[원문] 정예인, <최선의 사랑(글항아리, 2024.07.1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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