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와 폴리아모리에 대해서 ③
5
#
나는 커피를 못 마신다. 커피 향은 좋아하지만 카페인을 섭취하면 가장 큰 고통은 곧바로 수면 장애에 시달려 일상생활에 지장이 크다는 것이다. 그나마 심장이 빨리 뛰는 건 견딜 만하지만 각성된 만큼 에너지 소모가 많기 때문에 금세 지치고 만다. 술도 못 마신다. 주량은 소주 반 잔, 맥주 150~200ml, 와인 한두 모금 정도이다. 술이 인간관계 형성과 유지에서 여전히 중요하게 작동하는 우리나라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건 수많은 기회의 박탈임을 알고 있지만, 늘 이렇게 살아와서 연연해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우유도 못 마신다. 유당 불내증이기 때문이다.
만일 카페에서 카페라테를 마시고 싶다면, 디카페인으로 변경하는 데 500원, 우유를 두유 또는 오트밀로 변경하는 데 500원, 대체로 약 1,000원을 더 지불해야 한다. 이것도 그나마 손님의 취향을 세심하게 고려해 디카페인과 두유를 구비한 카페에 가야 가능하다. 만일 다른 사람과 같은 카페라테를 마시면 어떻게 되느냐고? 수면 장애는 둘째치고 우유의 작용으로 화장실로 직행이다. 일반 카페라테 마시기는 내가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다. 대신 나는 차(tea)를 마시는 취향에 끌리게 되었다.
#
어떤 성별에 끌리는지를 일컫는 성적 지향은 커피와 술, 우유는 못 마시지만 차는 선호하는 것처럼 일종의 '끌림’이라고 생각한다. 커피와 술이 대세인 사회를 살아가며 특히, 사회생활을 할 때는 적잖이 눈치 볼 일도 생기고, 상대가 오해하지 않도록 커피와 술을 안 마시고 차 마시는 취향을 타당화하고 마치 증명하듯이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야 할 때도 있지만, 그럭저럭 살아가는데 큰 지장이 없다. 술과 커피를 못 마시는 정도는 불편하고 서운한 상대방도 아쉬운 대로 용인하는 범주에 들어가니까. 직접적으로 차별받는 상황에 놓이지는 않으니까.
#
‘서로’ 좋아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고, 정서적·육체적 만족감을 얻고 헌신하는 관계가 어떻게 찬성과 반대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까. 사랑이 어떻게 차별이 될 수 있을까. 끌림(취향)이 어떻게 동의와 강요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어떤 사랑을 비정상이고 불법이라고 규정하기엔, 정상이라고 규정된 관계 가운데 서로 존중하지 않고 한쪽이 일방적으로 지배하거나 반대로 끝없이 의존하는 방식으로 지배하려는 비정상적인 사랑이 너무 많다. 남자를 사랑하는지, 여자를 사랑하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불행한 사랑을 끊지 못하고 지속하는 것, 없는 사랑을 있다고 착각하는 것, 제대로 된 사랑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문제 아닐까.
#
그럼에도, (내가) 여전히 동성애를 불편하게 느낀다면 이는 여전히 낯설기 때문일 것이다. 오랜 도덕적 고정관념과 부정적인 편견에 더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
궁극적으로는 내 안의 (희미하지만 어느 한편에 분명히 존재하는) 동성애적인 면모를 강하게 부정한다면, 이는 차별받는 소수자로 전락할까 봐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다수에 속하지 못해서 매사 눈치 보고 차별받고 증명해야 하는 소수자의 인생의 서러움과 고달픔을 (경험하지 않아도) 짐작하고, 인생의 난이도가 높아지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타인의 싫은 모습은 내 가장 약하고 부정하고 싶은 모습을 비추는 거울일 때가 많다는 사실이다.
#
마지막으로 나는 커피를 못 마시지만 커피의 향과 맛을 좋아한다. 가끔 한두 모금 테이스팅만 하는 나를 두고 친구는 커피 기미 상궁이라고 놀린다. 그리고 동성애자인 나의 친구를 사랑한다.
동성애는 치료 대상일까?
오늘날 동성애는 정신질환으로 분류되지 않으며, 따라서 치료의 대상도 아니다. 어떤 성별에 끌리느냐를 일컫는 성적 지향에는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등이 있는데, 이는 성격처럼 개인마다 다른 성향일 뿐이므로 비정상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오래전 동성애는 질병으로 규정하기로 했다. 미국정신의학협회가 펴내는 DSM에서도 3판(DSM-III)까지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인본주의적 접근과 학술적 연구를 바탕으로 1987년 3판의 개정판(DSM-III-R)에서 동성애는 정신질환 분류에서 제외되었다.
여전히 일부에서 ‘전환치료’라는 이름으로 동성애를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동성애는 치료 대상이 아닐뿐더러 의학계에서는 이러한 치료법을 인정하지 않는다. 전환치료 같은 시도는 성소수자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정체성과 내면을 부정해 스트레스를 가중하고 오히려 정신적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
성적 지향과 달리 트렌스젠더와 관련한 정신적 문제는 성별 불쾌감(gender dysphoria)이라는 분류명으로 DSM-5판(DSM-5)에 명시돼 있다. 성별 불쾌감이란 출생시 신체기관으로 정해진 성별과 내면의 성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아 느끼는 불쾌감이나 위화감을 말한다. 주의할 점은 불일치 자체는 질환이 아니며, 그 불일치 때문에 느끼는 불쾌감이 질환이다. 따라서 성별 정정 수술 등으로 양자를 일치시켜 성별 불쾌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괴롭힘을 줄이는 것도 고통을 줄이는 길이다.
원문: 임현규, <만만한 심리학개론(사회평론아카데미, 2022.01.17)> 210쪽
총 3개의 글로 구성했습니다.
3. 어떻게 사랑이 차별이 될 수 있을까 - 현재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