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저릿한 사랑이 주는 위로

#41 <소설 속 사랑>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by 비소향

손끝으로 느껴지는 추위 때문일까.

고민(만) 많아져 가는 나이 때문일까.

무엇 때문인지 모르게 마음이 헛헛했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 흥이 나게 술잔을 부딪혀도..

J양과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아도..

러닝머신 위를 아무리 달려보아도..

헛헛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반복되는 일과 일상은 헛헛해진 마음을 당최 다른 곳으로 집중시킬 수 없었다. 뚜렷한 목표도.. 즐거운 일상도 없는 요즘의 난 생기를 잃다.

알고 있었다. 지금의 헛헛한 이 마음은 앞서 언급한 일상과 행동들로는 지워지지 않는단 사실을.

그럼에도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아무 생각 없이 위의 것들을 하는뿐이었다.


평소와 다르게 한 일이라곤 소설을 읽은 것이다.

그것도 생전 읽지 않았던 연애소설을.

아무 생각 없이 몰입할 수 있는 생소한 무언 필요했다.


30대 초중반. 적당히 쓸쓸하고 마음 한 자락 조용히 접어버린 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천천히, 조금 느리게 그리고 싶었습니다. 인물마다 약점과 단점도 많았지만, 하루하루 평범한 일상 속에서 그들의 감정이 흘러가는 길을 크게 상관 안 하고 따라가 보고 싶었습니다.
흔해빠진 것이 사랑이고, 어쩔땐 그 사랑이란 게 참 부질없어서 환멸이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사랑해보기로 하는 것’이 사서함에서 그리고 싶었던 사랑법이었습니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작가의 말

사당역 어느 서점에서 마주한 작가의 말이 내겐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연애소설을 읽어 내려갔다.



그냥 아슬아슬하게 평화롭고 행복했다. 그래서 가끔은 왠지 모르게 불안하기도 했고, ‘넌 그게 문제야, 행복한데 왜 불안해?’하고 한가람 리포터가 답답해한 적이 있었지만, 그건 진솔로서도 설명하기 힘든 일이었다. 타고난 성격 탓이겠거니 생각할 뿐....

아슬아슬하게 평화롭고 행복하다는 진솔의 모습은 현재의 30대를 살아가는 내 모습이었다. 타고난 성격 탓에 행복을 온전히 만끽하지 못하고 행복 뒤에 다가올 그 무엇 때문에 불안과 걱정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내 모습에 어쩌면 난 답답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태생이 그런 것이라고 눈감아버리기엔 너무나 큰 이 결격사유를 어떻게 해야 조금은 바꿀 수 있을까.


“사람이 말이디... 제 나이 서른을 넘으면, 고쳐서 쓸 수가 없는 거이다. 고쳐지디 않아요..”
진솔은 말없이 듣고 있었다.
“보태서 써야 한다. 내래, 저 사람을 보태서 쓴다... 이렇게 생각하라우. 저눔이 못 갖고 있는 부분을 내래 보태줘서리 쓴다... 이렇게 말이디...”

남자 주인공 건의 할아버지가 여자 주인공 진솔에게 무심히 전하는 이 한마디에 난 잠시 책을 덮었다.

책을 덮은 건 할아버지의 말에 공감이 되어서기도 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 이렇게 혜안 가득한 말을 해줄 어른이 있다는 것. 두 사람의 생각과 시각으론 보지 못하는 그 무엇인가를 담백하게 전해줄 수 있는 어른이... 어쩌면 꼭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만일 그런 어른이 없을 때 (평생 함께하기로 한)두 사람 사이의 다툼과 이별의 모습은 조금은 다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당신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내 전부는 아니에요.
그래서도 안 되고, 감정을 서둘러서 결론 내릴 필요 없다는 거 알았고... 늘 눈앞에 두고 봐야 할 필요도 없는 거예요.
솔직하게 말할게요. 사람이 사람을 아무리 사랑해도, 때로는 그 사랑을 위해 죽을 수도 있어도... 그래도 어느 순간은 내리는 눈이나 바람이나, 담 밑에 피는 꽃이나... 그런 게 더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거.
그게 사랑보다 더 천국처럼 보일 때가 있다는 거. 나 그거 느끼거든요?"

좀 서글펐지만 진솔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

"당신하고 설령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많이 슬프고 쓸쓸하겠지만 또 남아 있는 것들이 있어요.
그래서 사랑은 지나가는 봄볕인 거고, 세상 끝까지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라고 한다면... 그건 너무 힘든 고통이니까 난 사절하고 싶거든요."

30대의 사랑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만큼 헌신적이지도, 절절하지도 못하다.

바쁘다는 그 사람 대신 지나가다 우연히 읽게 된 책이 위로가 될 수 있고,

그 사람과 이별을 해도 아무렇지 않게 출근해야 할 일터가 있고,

술을 진탕 마시고 잊을만큼 호기롭지도 못할 수 있다.


이별하고도 우린 남아있는 것과 일상을 지켜야 한다. 그래서 진솔의 말처럼 세상 끝까지 당신을 사랑할 거란 약속은 헛된 것이라는 걸 30대를 살고 있는 우린 알고 있다.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만큼 자신도 지켜야 하기에 조금은 덜 사랑하고 덜 아파할 수 있는 모습으로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 속에서 만난 사랑과 다르게 소설 속 사랑은 마음이 먹먹하거나 공감되는 구절에선 잠시 멈춰 설 수 있었다.

라디오 작가인 공진솔과 PD인 이건.

이건의 대학 동기인 박애리와 이선우의 사랑의 모습 저릿했다.

작가의 끝에서 맺어지고 이별하는 가상의 인연이라는 알면서도 문장 속 그들의 이야기는 달달하면서 서글펐다.


서글펐기에 위로가 되었다.

내 사랑만 힘들다 느껴지고, 주변의 그 어떤 사람의 말도 자신에게 위로가 되지 않을 때, 우린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타인의 경험에 빗댄 위로는

타인의 경험과 아무 상관없는 내게 그 어떤 위로가 될 수 없는 것이기에 홀로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결국 내게 닥친 문제는 스스로 답을 찾고 해결해가야 한다.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우린 혼자 생각하고 위로받고 자신의 믿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얻어야 한다.


평소 해보지 않았던 일들을 해봄으로써

조금은 다르게 생각하고 위로받고 행동할 용기를 얻는 것...

어쩌면 그런 과정들이 지금의 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연애소설을 읽고 그 안의 문장들로 조금의 위로를 받은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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