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랑, 나를 잡아줄 수 있을까?

<영화 속 사랑> 블루 발렌타인 (Blue Valentine)

by 비소향

불현듯 찾아온 사랑은 위험하다. '불현듯'이란 단어는 온전히 그 사람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기도 전에 이미 그 사람의 장점만 보이게 되어 그 사람이 가진 치명점을 가려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불현듯 찾아온 사랑은 우리 삶을 송두리 체 뒤 흔들기도 하고, 더 나아가 조금은 무모해 보이는 선택도 감행하게 한다. 혼자선 하지 못하는 이지만, 그 사람과 함께라면 현실의 어떤 어려움도 다 이겨낼 수 있을 만큼 강해진 것 같기도 하고, 지금 이 순 두려울 것이 없이 느껴지기도 한다.

우린 그것을 '너와의' 사랑 때문이라 생각하며 너와 함께라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 생각하며 서로의 인생에 영원한 동반자가 될 것을 약속하기도 한다. 미처 그 사람을 제대로 바라보기도 전에 인생에 중대한 선택을 해버린 두 사람은 불꽃축제가 끝나고 나면 화려했던 시간 이상으로 관계가 더 어두워지기도 한다.

영화 <블루 발렌타인>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두 남녀의 불꽃같던 시간들을 조명한다.

(영화의 줄거리는 초록색으로 되어 있으니 영화를 보실 분들은 넘어가시길..)

여느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것 같은 여주인공 신디(미쉘 윌리엄스)는 사실 가부장적인 아빠의 모습에 염증을 느끼며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여대생이다. 자신의 그런 결핍 때문인지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꿈꾸며 여러 남자를 만지만 이를 온전히 충족해주는 남자를 만나진 못한다. 오히려 그런 만남이 지속될수록 몸과 마음만 상처 입을 뿐이다. 그러던 그녀 앞에 딘(라이언 고슬링)이 나타난다.

신디가 의사라는 미래를 꿈꾸며 하루하루 살아간다면, 딘은 이삿짐센터에서 일하며 현재의 행복에 충실한 삶을 이어간다. '불현듯' 다가온 딘의 명랑함과 순수함이 좋았던 신디는 그에게 마음을 뺏겨 버리고, 딘이 신디의 전남친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것을 계기로 두 사람은 급격히 가까워진다.


행복할 것 같던 두 사람의 시간 속에 신디가 전남친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며 두 사람의 감정은 급격히 요동친다. 아이를 지우려고도 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던 신디를 딘은 말없이 안으며 그의 인생에 예정이 없던 결혼을 감행한다.

문제는 신디에겐 화목하지 않은 가정이라도 있었지만, 딘에겐 그런 가정 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엄마가 어릴 적 집을 나가버렸다는 사실만으로도 딘의 유년시절을 짐작할 수 있었다. 결혼을 하고 싶지 않다던 딘의 모습은 어쩌면 자신 또한 그런 가정을 만들게 될까봐 두려웠는지도 다.

그런 그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그녀와 결혼을 선택한 건 오로지 그녀를 위한 사랑 때문이었다.

밝은 빛과 블루 빛이 대비되는 신디와 딘의 과거와 현재
시작할 땐 행복한 모습만 보이지만, 행복한 과정안에 얼마나 많은 인내와 희생이 필요한지 우린 알지 못했다.


영화는 밝은 빛의 과거와 블루빛의 현재를 오가며 두 사람의 감정을 담아낸다. 아이는 너무 밝게 잘 자랐지만, 신디와 딘은 자신들의 아이처럼 그렇게 밝게 지내지 못한다. (특히 신디는..)

신디는 의사의 꿈을 포기한 체 간호사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지만 딘은 여전히 결혼 전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다. 결혼 전 쓰지 않던 선글라스와 항상 입에 문 담배는 현실도피와 자기중심이 매우 강하단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신디를 사랑한다. 그 어떤 희생도 수반되지 않는 자신만의 사랑을 강요한 체.


기르던 강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기분전환이 필요했던 딘은 다음날 당직이 있는 신디를 억지로 데리고 모텔로 향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이를 계기로 더 극으로 치닫는다.

딘은 결혼을 하고 나서도 결혼 전 사랑만이 가득한 상태에 머물길 원했고, 신디는 그런 딘의 모습에서 염증을 느낀다..


(영화의 결말은 직접 확인하시길..)




두 사람은 처음 그 순간처럼 행복할 순 없었을까?

영화 속 딘은 따뜻하지만 철없는 남자의 모습으로, 신디는 지극히 현실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비춰지지만 내 눈에 비친 두 사람은 모두 현실적이지도 따뜻하지도 않았다. 신디는 화목하지 않은 가정, 준비되지 않은 임신, 불확실한 나날 속에 불현듯 찾아온 남자 딘과 도피하듯 결혼을 선택하였고 결혼생활을 하며 점차 보이지 않던 현실의 무게와 벽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현실적인 게 아닌 현실의 무게를 뒤늦게 감당하려고 하니 그제서야 힘이 든 것이다.

딘은 그녀를 사랑하기에 예정에도 없던 결혼을 감행하고, 딸 프랭키와도 언제나 친구처럼 함께하지만 그에게서 가장의 모습은 전혀 찾을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한 결혼이라 하더라도 그가 선택한 삶이었고, 자신이 죽을 만큼 사랑한 신디와의 일상이기에 조금은 더 (신디가 원하는 모습으로) 충실해야 했다. 문제는 딘이 그런 화목한 가정의 모습을 배우지도.. 경험하지도.. 그리고 노력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불꽃처럼 타올랐던 시간이 지나고 두 사람에게 남은 건 식어버린 재뿐이었다. 타오른 빛이 너무 강렬해 그땐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축제가 끝난 후 서로에게 보인 것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두 사람은 서로 너무 달랐기에 함께하면 안 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불현듯' 찾아온 이 사랑이 불안전한 나를 잡아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두 사람의 선택이 애초에 잘못된 것이었는지 모른다.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기 위해 선택한 결혼이지만,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원했던 모습을 기대할 수 없었다. 그건 우리의 결혼생활도 마찬가지다.

서로에게 기대한 부분이 너무 크면 분명 그 크기만큼 실망도 함께 찾아온다. 사랑이 성숙하려면 우리 개개인이 조금은 더 독립적이어야 하고, 상대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기보단 상대가 필요한 부분을 먼저 채워줘야 한다는 것을.. 또 결혼이라는 과정이 행복한 일상 속 서로 감내해야 하는 힘겨운 나날도 있음을 우린 알아야 한다.


이 사람이... 이 사랑이 날 잡아줄 거란 믿음 말고, 내가 하는 사랑이 날 더 단단히 붙잡고 우리가 함께하는 결혼생활을 좀 더 행복하게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두 사람 모두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영화는 내게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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